그 사건은 나의 몇 퍼센트를 이루고 있을까?

학교폭력

by 제이

최대한 덜어내지 않아도 되는 글을 쓰고 싶다. 검토하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들여다보는 게 피곤할까 봐. 언젠가 해야 하는 일처럼 숙제로 남아있는 기분이라서 쓴다.


이런 글을 쓰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비슷한 고민을 했다.

방어기제 없이, 설명하거나 정당화하려는 노력 없이 있는 그대로 쓸 수 있을까? 변명을 쓰고 싶은 게 아니라 돌아보고 분석해보고 싶은 건데. 겪은 사람도 나고, 분석하는 사람도 나고, 스스로 보호하려는 사람도 나이다 보니 쉽지가 않았다. 불가능하다는 것이 맞겠지만, 내가 아니면 누가 써주진 않아서.




중학교 2학년 1학기? 학교폭력이라는 용어보다 왕따로 더 많이 불렸다. 집단 따돌림 속에 일 년 정도 보냈다. 구체적인 사건은 이제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몇 가지 기억나는 건 고등학교 진학 후에 건너 건너 들려오는 가해자들의 머쓱한 사과와 비겁함에 지겹다고 생각했던 것 정도. 고향이 지방 소도시이다 보니 원치 않아도 알게 된다. 여러 소식들이 들려오고 거를 수 있는 장치가 별로 없다.


이런 사건 뒤로 방어적인 성격이 되었다. 고등학생 때는 피해자 포지션을 이용하기도 했다. 쟤랑은 왜 안 친하냐 물어보면 겪었던 일을 넌지시 전하고 조심하라 일러주었다. 공교롭게도 가해자와 내가 같은 학교에 가게 되어서 최소한의 방어라고 생각했었다. 안 해도 되는 말을 일부러 했으니... 얼굴색 하나 안 바뀌고 거짓말하는 가해자에게 맞서다 보니 그 정도는 그냥 하게 되었다.


얘들도 머리가 커져서인지, 한편으로는 더 유치하고 교묘한 이간질을 했었지만 대놓고 괴롭히는 건 쪽팔려했다. 나도 그랬다. 더 미숙한 폭력을 겪어본 바, 그런 장면에 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건 말건 거기선 그게 가십이고 재미였다. 몇 살 더 먹어 체면이란게 생긴 건지, 유치함의 영역 밖에서 성숙하고 착한 사람이 되려는 건지.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곧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내가 제일 머저리 같다고 생각했다. 사건은 공중으로 흩어져 버렸는데 혼자 그 흔적 위에서 배배 꼬여 피해자 같은 행동을 한다고.


곧 아무것도 상관 없어졌다. 그냥 아무 생각 않기로 했다. 새로운, 나와 잘 맞는 친구를 사귀었고, 평탄한 고교생활을 하고 싶을 뿐이었다. 표현하려 할수록 거창해지지만 사실은 그저 그런, 별거 아닌 인간의 폭력성 어쩌고 그 비슷한 걸 확인하고 나니까 이제는 사람 사이에 큰일이라는 게 없어졌다. 사람은 중요하지만 중요하지 않았고, 이상한 모순 속에서 최소한의 인간관계에 몰입했다. 나중에는 (겉보기에) 무던해 보이는 점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는 과거에 힘들었던 경험을 잊고 싶지 않았던 시기를 지났다. 잊는다니? 자기 자신에 대한 배신처럼 느껴졌었다. 글로 적고 보니 민망하지만, 그 당시의 나를 터부시하는 기분이 들었다. 소설이었다면 복수를 다짐했겠다. 녹록지 않다. 부정적 감정을 가지는건 소진이 빠르다.


내가 졸업하고 몇 달 후 대구에서 한 학생이 자살했다. 울면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장면이 온갖 뉴스에 올랐고, 아버지의 인터뷰가 송출되었다. 그 뒤로 학폭위가 생기고 왕따 대신 학교 폭력이라는 말이 생겼던 걸로 기억한다.




5년 넘게 걸렸으니 잊어버렸다는 표현은 좀 어설프다. 야금야금, 파도에 쓸려 나가듯이 없어졌다. 그러다 대학에 입학했다. 전공이 관련계열이다 보니 정신/심리 관련 지식도 배웠다. 수업시간에 강의실에 앉은 채로 깨달았다. 무방비 상태에 쏟아져 들어오는 심리학 서적에는 몇 구절, 몇 문장으로 청소년기 내 모든 방어기제와 성격적 결함, 불안정한 애착, 병명까지 정리되어 있었다.


나름 차곡차곡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의심을 블록 쌓듯 정리해 두었었는데, 전문 지식들이 잘 벼려진 칼로 그 덩어리들을 다시 자르고 붙였다. 피투성이 벌거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어쨌든 고등학생 때 PTSD 증상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특히 시간이 느리게 가는듯한 느낌, 집중력과 기억력 감소, 플래시백을 자주 겪었었다. 공부하려고 앉아 있어도 마음대로 안되니 점수는 바닥이었고 성적으로 부모님과 자주 싸웠다.


내가 어떻게 중학교를 다녔는지 1 퍼센트도 모른 채, 나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대면하는 건 너무 힘들었다. 반대쪽에선 끊임없이 설명을 요구했지만, 나는 설명할 수 없었다. 사랑은 삶이랑 아무 연관도 없고 부모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난 혼자였다! 여하튼, 대학에 다닌 일은 그 수업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