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의 피로가 덜 가셨는지 평상시보다 더 늦게까지 곤하게 자고 있는데 남편이 신발도 벗지 않고 마루까지 올라와서 문을 벌컥 열었다.
엉거주춤 일어나 작업복을 찾아 걸쳤다. 장화를 착용 한 채 착유실로 갔더니 젖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보겠다고 삐거덕대는 소리가 예서제서 들렸다. 어떤 소는 마른풀을 씹고 혹은 사료를 먹느라 바빴다.
그런 젖소들 사이에서 남편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소리만치고 있는 것이었다.
"빨리 와서 줄 당기라고"
한우와 달리 젖소는 송아지가 큰 편으로 자연분만이 어려워서 대부분 사람이 도와야 가능하다. 하여 목장주는 산달이 가까워오는 젖소가 있으면 거의 매일 상태를 살핀다. 그러다나 분만이 시작되면 송아지 다리를 찾아서 밧줄로 묶고 소가 진통하는 동시에 잡아당겨준다. 이때도 단순히 한 사람의 힘으로 부족하니 가까운 건물 기둥에다 걸고 도르래를 이용하면 힘을 더 받는다. 대부분은 남편 혼자서도 가능하던 그 일이었는데 이번경우는 달랐다.
내 힘이래야 까짓것이니 더 붙었다고 해도 소가 스스로 힘을 주지 않을 땐 밧줄이 끄덕도 안 했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태어난 송아지는 정말다른 송아지에 비해 한 달은 자란듯했다. 그래도 다행히 숨은 쉬고 있었다.
그다음 이번에는 직접 손으로 초유를 짜야했다. 그제야 살펴본 어미소는 덩치도 컸다. 한동안 낑낑대며 간신히 한통을 채웠다.
갓 짠 우유를 들고 송아지에게 갔더니 다행스럽게도눈을 꿈뻑이며발버둥 치고 있었다. 꽉 다문 입을 잘 벌리고서겨우 한 컵정도 먹였다.
그러노라니 얼추 한 시간 넘게 평소보다 일찍 활동한 것이다.초유를 먹인 뒤에 다리도 풀 겸 밭으로 향했다. 밭둑에 서 있는 뽕나무아래로 거무티티한 것이 그새 익어서 떨어진 오디였다. 몇 개 따먹은 뒤 혹시나 하고 도라지가 심긴 곳에 갔더니 전날보다 싹 올라온 게 더 보였다. 그런데 잡초는 더 많고 컸다. 냅다 앉아서 풀 뽑기를 시도했다. 그러다가 아침식사시간이 될 때까지 뽑고 또 뽑았다.
아침 식후에는 텃밭에서 잠깐 고춧대를 묶었다.바람이 부니까 뿌리가 튼튼하지 못한 몇 포기가 옆으로 기우뚱하게 서 있었다.
삼십여분 그 일을 한 후 차를 몰고 해설사 활동을 하기 위해 성주읍성으로 갔다. 4월 말에 오픈한 안내소였기에 아직은 발걸음이 뜸했다. 실제로 해설을 요구하는 대신 간간이 성주지도를 들고 가는 분들은 계셨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였지만 맨발 걷기도 했다. 점심은 어머님댁에서 먹고 다시 안내소에 도착해선 음악을 들으며 책을 조금 읽었다. 저녁에 있는 문학회 공부를위해서다.
살다 보니 하고픈 것은 고사하고 반드시 해야 할 일도 하나 제대로 못 쳐내서 쩔쩔매며 살아왔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이날처럼 하루에도 몇 번이나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도 한다. 하루하루가 눈물 나게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