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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 Sep 21. 2024

하루하루 살다 보면 14

각 잡고 추석 1

    8월 중순에 있던 제삿날이었다. 

  " 야야, 추석에 쓸 건어 하고 조기는  언제 사러 가것노?"

  한창 전을 부치는 중에 하신 어머님 말씀이었다.'다리가 아파서 못 걷겠다며 '앞으로는 네가  장 다 봐라' 한 지도 몇 번이나 되었다. 하지만 막상 때가 되면 직접 장에 가서 제수용품을 를 때면 생기가  났었다. 그런데 하도 더워서 나서기 불편할 테니 이번 추석부터 정말 나 혼자 장을 봐야 할지도 모를 것 같아 배에다 힘주고 각 잡을 요량이었다. 그런데 한 달 넘게 남은 추석을 벌써부터 읊고 계신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해 송편은 맞추겠다고 하니 한 가지  걱정은 덜었다 싶었다.


  일찌감치 파마까지 한 어머님께선 언제 장에 갈 거냐는 전화를 수시로 다. 그리하여  장날 읍내로 가서 건어물과 조기를 샀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기도 전 어머니께선  또다시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살 걱정을 했. 무려 한 달은 족히 기다려야 하는 추석이 어머니께는  더디기만 하니 듣는 가족들도 참 난감했다.

  예년 같으면 다른 제수용품도 미리 봐 두긴 했다. 그런데 지난여름이 어디 보통의 날씨였나 말이다. 어머님의 걱정과 달리 9월이누그러지겠거니 한 날씨가 매양 같아 어쩔 수  없이 미루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제사장보기 외출을 기다리는 것이  어머님 스스로도 지쳐가고 있었다.

  '힘들어서 걷겠나?' 하는 어머님을 차에 태우고 읍내로 달렸다.  37도의 날씨여도 에어컨을 켜니 집에서와는 달리 어머님께서 별말씀이 없었다.

   날씨야 덥건 말건 평소 즐겨 먹던 냉면 대신 시킨 갈비탕을 생각보다 잘 드셨다. 기분이 좋아진 어머님은 계산도 선뜻하시는 것이었다. 그다음 원래 목적지인 마트로 가니 시원했다. 어머님은 식곤증으로 어지럽다며 잠시 의자에 앉아 쉬는가 싶더니 이내 지팡이를 짚고 내 뒤에 바싹 붙어 따라다니고 있었다.

  "야야, 막상 오긴 했는데 살게 없네. 고기도 아직 이르고 과일도 사놓긴 쫌 빠르제?"

  "그렇지요? 어머니, 아직 장 볼 때는 안 된 것 같네 예, 여기 잘 생긴 배나 사 갈까 예?" 그랬다. 제수용품 사는 것은 배 하나에 그쳤다. 하지만 내내 애태우던 어머님이나 날씨가 더워서인지 입맛이 뚝 떨어져 몸무게마저 줄고 있던 내게도 외출의 목적은 충분히 채웠던 것이다.  

   두 번을 나서도 추석준비는 여전히 미완성이었다. 언제든 어머님께선 내게 전화를 걸  핑계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어쩌면 이번에도 각 잡기는 애당초 글러 버렸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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