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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 Oct 22. 2024

하루하루 살다 보면 15

각 잡고 추석 2

  꺾일 것 같지 않은 무더위 속에도 날은 뿌득 뿌득 가서  드디어 추석이 가까워졌다.

  추석 제수용 장보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채  말 그대로 대목이 되었다.


  "어머님, 마트에 장 보러 같이 가실래요?"

평상시처럼 운을 뗐건만 왜인지 반응이 시큰둥했다.

  기다리는 것이 지쳐서 피로감이 누적된 것인지 그만 못 가시겠다는 것이다. 하는 수없어 퇴근길에 혼자 마트에 갔다.

  어머님 스타일대로라면 과일 따로 고기 따로 단골 가게가 있지만 추석 전날과 당일 저녁 메뉴까지 고려해서  모두 사버렸다.

   고사리와 도라지는 이틀 전에  어머님께서 불려서 삶아 놓았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음식을 해야 할 전날이 되었다. 예고된 날씨는 이미 한여름이라 순서를 잘 정해야 했다.

    부침개와 나물은 뒤로 미루고 돼지고기를 삶고 꼬지는 꿰어서 다시 냉장고에 넣었다.

박은 해부해서 썬 뒤 창가에 두었다. 그다음 점심 메뉴로 매운탕을 끓였다. 시부모님과 먼저 먹은 점심은 땀 뻘뻘 흘리면서도 괜찮았다.

   스무 명쯤 되는 가족들인데 일할 동서들도 평소보다 늦게 오더니 점심을 죄다 거르는 거였다. 먹을만하다는 평은 두 어른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 후 차례로 음식을 하고 저녁메뉴로는 소고깃국을 끓였다.

  한쪽에는 건어를 찌고 나물 볶느라 정신없는데 국을 두 번이나 끓여내니 부엌이 후끈후끈했다. 그래도 저녁상은 입맛대로 몇 사람이 더 합류해서 그럴듯했다.

  늦게 온 우리 집 아이들은 따로 저희들끼리 고기를 굽다 보니 남은 국이 두 냄비 가득 되었다. 전마저 평상시보다 양이 더 많아졌다.

  땀께나 흘려가며 동서들과 준비를 마쳤다.

다 했겠거니 하고 쉬었건만 자다 생각해 보니 콩나물국을 끓여 놓지 않아 당일 아침 서둘렀다.

  전날에 이어  이른 아침에 또다시 탕국까지 두 솥이다 보니 여전히 부엌은 후끈했다. 추석차례가 지나고 뒷정리할 때는 조카들이 거들고 딸들이 설거지를 했다. 서둘러 다 마무리된 뒤에 동서들과 같이 집을 나서서 큰 카페로 갔다. 그곳에서 더위가 한고비 넘어갈 때까지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다가 돌아와서 늦은 점심 상을 차렸다.

  그때는 전날 끓인 국도 다시 데워서 가족들 입맛대로 먹었다. 남은 음식들은 상할까 봐 다시 끓이고 냉장고에 넣느라 좀 부산했지만 탈은 없었다. 37도가 넘는 날씨에도 시댁 대가족과 함께한 명절 1박 2일은 그렇게 무사히 끝이 났다.

  동서네 가족들이 하나 둘 떠나고 나니 시어른 두 분께서 애썼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기대 이상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되고 또 칭찬까지 듣고 나니 나름 뿌듯했다.

 


  작은 각도 그저 기싸움이나 폼에서 나오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땀과 정성이 들어가야만 나오는 결과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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