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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스이 Aug 21. 2021

육룡이 나르샤? 날아간 용은 없었다

뒤늦은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리뷰

/SBS

0.

50부를 모두 본방사수하고 저 엔딩 영상이 흐르던 순간 들었던 생각 - 껍데기는 아무리 화려해도 껍데기일 뿐이구나.


무사 누구, 백성 누구, 태조 누구 화려하게 뻥뻥뻥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런 연출에 걸맞는 활약은 했는지. 가상 인물들이야 놔두고, 최소한 실존인물들은 그 '육룡'이라는 거창한 이름값을 했는지. 이 드라마가 원래 작가 분들이 원하던 모습으로 끝이 나긴 했는지. 그 모든게 의문스럽던 나로선, 저 엔딩이 참 덧없었다. 그래, 웅장한 음악에 자막 크게 박으면 멋지기야 하지.


1.

단언컨대, 이 드라마의 정점은 고려제라블 때였음. 정도전과 이방원이 만들어나갈 기나긴 애증의 시작이 된 그 시퀀스가.


백성들을 위하여 지배층에게 저항했던 청년 정도전과, 한창 피끓는 나이에 청춘의 이상과도 같은 그 모습을 목격했던 이방원. 그토록 강하다 믿었던 아버지는 권력에 고개를 숙였지만, 칼 한자루 없음에도 당당히 '거악'에 맞서 싸우는 정도전을 보고, 이방원이 주저없이 '최강의 사나이'라는 찬사를 보내며 그를 우상으로 품던 순간. 그러나 더없이 희망적인 그 인연의 시작이 얼마나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질지 알고 있는 시청층으로선 복잡한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실로 영리한 연출이었다.


/SBS


더불어, 이 시퀀스에선 "젊은이들의 싸움을 늙은 것들이 결정할 수 없다"고 외친 정도전조차도, 정작 자기는 편하게 노래만 부르고, 자신의 연설에 경도된 젊은 유생과 백성들을 진압병 막는 고기방패로 썼다는 모순을 통해, 지금은 저항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결국 자신의 이상을 위해 타인을 이용할 뿐이며, 그런 사람이 지배 계급이 되면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암시 - 즉, 민본의 가치로 혁명했던 정도전이 말년에 요동 정벌이라는 폭주로 나아가다 스러진 그 이중성을 함께 보여줬다는 점에서 + 그게 이방원이 장차 자신의 잔트가르와 갈등하게 될 지점이겠다는 점에서, 또 한번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킨 부분이었지만 응아니야.


2.

'거악' 고려를 방벌하라 - 는 포스터 문구도, 솔직히 난 그게 이중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을거라 여겼다. "그래, 여말은 '거악'이었다. 하지만 그 거악을 방벌한 너희는 과연 악이 아닌가?" 그 질문이 드라마의 진정한 시작이 될 줄 알았음. 그래서 여말파트는 빨리 넘어가고, 선초 파트의 분량이 많길 바랐다.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구하자는 순수한 뜻으로 모인 육룡의 모임이 건국 후 권력의 단맛에 취해 변하거나, 의견 차이로 인해 갈등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으니까.


서로의 이유를 이해하지만, 결코 인정할 수는 없기에 벌어지는 그 갈등들. 그렇게 한솥밥을 먹고 함께 싸웠던 동료들이,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자마자 다시금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원수가 되는 그 비극이야말로, 내가 보고 싶었던 이야기이자 이 드라마의 '거악'이 가리키는 진정한 대상이라 생각했다. 요컨대, 사실 방벌해야할 거악은 고려라는 껍데기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권력욕이고, 거기서 각자의 입장이 나뉘면서 갈등이 발생하리라 기대했던 것.


더욱이, 정통사극에서 묘사하는 제 1차 왕자의 난이 그냥 권력층의 싸움이었다면, 육룡은 권력층에 더해 백성 간의 갈등까지 묘사되는 만큼 더욱 비극적이었을테니까. 그리되면 아랫것들은 끝내 윗것들의 노리개가 될 수 밖에 없다던 뿌나 이방지의 회고도 더욱 절절하게 들렸으리라.


/SBS

가령, 이방지와 무휼이 싸웠던 이유도, 단순히 그들이 정도전과 이방원의 호위무사였기 때문만이 아니라, 백성이었기에 권력을 잡자마자 변하는 이들에게 반감을 표한 이방지와, 백성이었기에 간신히 잡은 출세의 기회를 놓치기 싫은 무휼의 가치관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그런 갈등으로 표현되길 원했음. 그러면 뿌나의 세종 시대에 왜 이방지는 방랑을 했고, 왜 무휼은 임금의 호위무사가 되었는지, 서로의 삶이 왜 그렇게 갈렸는지도 설명이 더욱 잘 되니까.


이렇게 권력층은 물론이고, 백성들끼리도 입장이 갈리는걸 보여줄 수 있다는게 육룡만이 가진 장점이었다. 그냥 단순히 잘사는 백성이 아니라, 권력의 최심부에 진입해본 백성들. 그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어떻게 갈등하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거기에 권력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들어가면 어떤 파국이 탄생하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어쩌면 드라마 정도전보다도 더욱 사람 냄새나는 유일한 여말선초 드라마가 될 수 있었는데, 결론은 그런거 없음ㅋ


3.

주역이 너무 많으면 드라마가 산으로 간다는 대표적인 사례. 주역 개개인에게 그들만의 스토리를 부여하는건 좋은데, 그것도 작가 역량에 달린 문제. 다시 말해, 내 역량이 그 정도는 아니다 싶으면 쳐낼건 과감하게 쳐내는게 맞는듯. 정도전, 이성계 아니, 정도전 하나만 다룬다 해도 3화는 뽑아야할텐데, 그런 인물이 육룡 여섯에, 거기다 작가진 욕심으로 무명이니 척사광이니 다 넣으려드니 체할 수 밖에.


그렇다고 분량 배분을 그만큼 잘 했냐면 그것도 아님. 네임드 캐릭터들 첫 등장 때 엔딩 크레딧에 커다란 자막 띄우면서 거창하게 연출해주는데, 정작 걔들이 하는 일이 없음. 하륜은 아예 공기가 되었고, 정도전은 내가 또 놓쳤구나~ 하면서 허당이 되고 무휼은 거의 종막 직전에야 용짤이 뜰만큼 별 활약도 없었는데, 어째어째 나라 건국은 하는게 이 드라마의 개그 포인트.


요약하자면, 육룡이라는 호칭에 걸맞는 역할을 한 사람이 손에 꼽거나, 아무도 없다는게 이 드라마의 제일 큰 문제점.


4.

사료에 충실해야 하기에, 딱 그 정도의 한계점이 생길 수 밖에 없는게 정통사극이라면, 비교적 다양한 관점을 다룰 수 있다는게 퓨전 사극의 장점일 것이다.


여말선초라는 혁명의 역사에 '백성'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면 어땠을까 - 라는 관점과 시도 자체는 정말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아쉬운건 그걸 풀어나가는 방식. 가상 인물을 살리자니 실존 인물이 죽고, 또 실존 인물을 살리자니 드라마 정도전 짭이 될것 같고, 뭐 이런식으로 작가진도 여러가지 고민이 많았겠지만, 결국 그런게 전부 역량 문제가 아닌가 싶다. 결론적으로 이 드라마는 전부 이도저도 아니게 끝남.


여하튼, 드라마 정도전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육룡이 채워주길 바랐던 입장에서, 참 아쉬웠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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