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나 vs 타인이 아는 나

by Suno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 삶을 사셨던, 배우 이순재 님의 별세 소식을 듣고

누군가에게 삶을 마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사람들은 그를 배우로서 변화에 능동적이었으며 끝까지 배우로서 현역이었던 멋있는 분이었다고 말했다.

내가 듣기엔 참 멋진 말인데, 그분은 이 평가를 어떻게 생각할까.

부디, 타인이 기억하는 그분이 그분 맘에도 들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분의 명복을 빌어본다.




SNS에 나를 보여주는 시대.

남들이 이런 멋진 모습으로 나를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 거기에 있다.


하루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 겉옷을 벗어내고 화장을 걷어낸 뒤 거울에 스치는 나를 보았을 때,

내가 느끼는 나의 괴리.

나는 어떤 모습의 나를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걸까?

어쩌면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는 '나'는 오히려 겉옷을 벗고 화장을 걷어낸 '내'가 말하고 싶은 나일 것이다.


낯선 자리에서 낯섦을 떨치려 많은 말을 뿌리고 집에 돌아왔을 때

밖에서 내가 보여준 건 진짜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때의 내 공허함을 안아줄 이가 내게 있는가?

꾸미지 않은 내 언어와 나의 모습을 보여줄 사람이 있는가?

인간의 원초적 외로움은 어쩌면 여기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결국은 '관계'의 문제로 회귀한다.

어디까지를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으로 관계 맺으며,

누구와 어디까지 내 모습을 다 털어놓을 것인가.

어렵다. 매번 항상 어려운 질문이다.

두렵다. 매번, 진짜 나를 보여주는 건 두렵다.


그러니 나에게 '관계'란

익숙한 친밀함과 고독함 사이 어딘가에 공허가 둥둥 떠있는 것.

불 꺼진 드레스룸에서 외출복을 갈아입고 나오는 내 모습에

나의 실존이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가? 그렇다고 하면 좀 더 외로울 거 같다)


나의 삶도 언젠가 끝이 난다.

그때에,

나를 안다는 누군가의 말이 내가 지향한 나와 괴리가 크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때를 상상하는 일은 쓸쓸하지만,

삶의 유한함을 생각할 때엔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고민하고 나아지는 날들의 연속성이 좋은 삶을 만들 것이라 믿는다.

나의 고뇌도 나의 삶을 사랑하는 증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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