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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하 Aug 30. 2021

외로움의 물성

침전하던 심장을 기억하며

내가 겪었던 적지 않은 경험들 중 일시적인 끌림과 진심으로 좋아했던 것들을 구분하기 위해 ‘그때 당시 상대의 모든 네거티브와 언행, 태도, 상황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었는가?’라는 기준으로 판단해보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경험의 상대는 ‘인상 깊게 읽은 책’과 같이 나의 가치관과 성격 형성에 꽤나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그 상대들 중 나와 깊은 상호작용을 공유한 사람은 없었다. 내 진심은 일방적이었고, 상대의 진심과 알맞지 않았다. 나의 진심은 상대에게는 가벼운 유희였을 수도, 짊어지기 싫은 부담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관계들의 끝은, 나만 희미하게 이어져 오던 관계의 끈을 끊어내면 되는 것이었기에, 내가 뻐근해진 가슴의 중력을 받아내고 뭐가 먼저일지 모를 눈물을 참아내는 식으로 그 불화를 받아들이고 단념하면 끝을 볼 수 있었다.  한 번도 홀가분한 기분이 든 적이 없다. 난 표현하지 않았고 모든 감정들은 침잠했다. 감정들이 바닥에 모두 가라앉을 때까지 버티는 과정은 가혹한 체벌을 받는 것 같았다. 코 끝을 아리게 만드는 비릿한 짠내와 가슴 위에 육중한 돌을 올려놓은 듯한 한없이 꺼지는 중력이 그 가혹한 체벌의 일부였다.  그 아픔을 꾹 참고 견디는 과정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더 이상 화가 나지 않는다.  더 이상 상대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기대가 없어서 놀라지도 않고 실망하지도 않는다.  모든 관계는 나의 의지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고 상대의 ‘감정’에 따라 언제든 끝날 수 있다.  그 관계가 긴 휴지를 갖든 종결이 되든 난 아쉬움과 애매함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아쉬움과 애매함을 만족과 확신으로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눈물은 맺힐 뿐 흐르지 않는다.  무미건조하다.  왜인지 나는 얼마 전 나의 친구가 연인과 헤어져서 우는 것을 보고 부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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