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수혈을 하다니? 나 수혈이 필요할 정도로 아픈 거야?
작년 12월의 어느 류마티스 내과 외래 진료날이다. 소변 검사에서 단백뇨가 발견되었다. 지난번 검사보다 단백뇨 수치가 더 높아졌다. 교수님께서 그동안 몸이 많이 붓지 않았었냐고 여쭤보시면서 입원해서 신장조직검사를 해봐야겠다고 말씀하셨다.
처음 입원할 때만 해도 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다.
얼마나 몸 관리를 소홀히 했으면 루푸스를 진단받은 지 6개월 만에 루푸스(자가면역질환)가 신장을 공격했을까...
식단 조절 때문일까? 스트레스 때문일까? 너무 몸을 무리한 탓인가?
그런데 입원한 바로 다음 날 아침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오늘 신장조직검사 하셔야 하는데 수혈이 필요하셔서 이따가 수혈하러 올게요."
"네? 수혈이요?"
간호사분께서 가볍게 지나가는듯한 말투로 (? 그렇게 말씀하진 않으셨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그렇게 들렸다ㅜ) 말씀하셔서 너무 놀랐지만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되물어봤다.
"네, 환자분 어제 혈액 검사 결과에서 빈혈이 너무 심하셔서 의사 선생님께서 수혈이 필요할 것 같다고 하셨어요."
얼마나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게 나왔으면 수혈을 받아야 하는 정도 일까.. 그제야 나는 휴대폰 어플을 켜고 어제 혈액 검사한 결과 수치를 확인했다.
수치는 7.7
그동안 외래진료를 받으면서 한 번도 나온 적 없던 최저 수치였다. (나 입원할만한 몸상태 인가 보다..) 그 뒤로 다른 간호사 선생님도 수혈을 하면서 한 번 더 설명해주셔서 알게 되었는데, 신장조직검사를 하면서 조직의 일부를 떼어내면 신장 주변에 혈관에 많아 피를 많이 흘리기 때문에 그 부분도 고려하여 수혈을 받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나는 수혈을 받아야 할 만큼 지금 몸상태가 많이 악화되었구나..
전혈 400ml 한 팩을 수혈받았지만, 다음 날 아침 혈액 검사 결과 수치는 8.3이 나왔다.
(수혈까지 받았지만 겨우 8.3이 나왔다..) 그렇게 한 번의 수혈을 더 받아야만 했다.
(루푸스 환자들은 대게 빈혈을 동반한다. 나는 현재 루푸스 활성도가 높아 빈혈이 심한 편이다. 교수님께서 내 수치를 보시고 나는 철 결핍성 빈혈은 아니고, 루푸스로 인한 빈혈이라고 하셨다. 즉, 철분제를 복용한다고 해서 빈혈이 해결되지 않는다..)
수혈을 받는 것은 사실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2번이나 수혈을 받아야만 하는 내 몸상태를 생각하니, 내가 너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이 한층 더 우울해졌다. 내가 생각했던 수혈은,, 나보다 훨씬 더 아픈 환자들이 받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렇게 아픈가? 많이 심각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친정 엄마가 걱정할까 봐 차마 털어놓지는 못하고 결국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두 번이나 수혈받았다. 빈혈이 너무 심하대"
결국 또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헐 언니 수혈도 받았어?.. 언니 근데 형부도 알아? 형부는 매 번 헌혈 자주 하잖아."
"아니, 걱정할까 봐 그냥 말 안 했는데,,"
"그래도 형부가 알면, 본인이 하는 헌혈에 대해서 좀 더 뿌듯하지 않을까? 언니처럼 아픈 환자들을 돕는 일이잖아."
나는 그때서야 아차 싶었다.
남편은 20대 때부터 꾸준히 특별한 일이 없는 한 2주에 한 번 꼬박 헌혈의 집을 방문하고 있다. 사실 솔직한 마음으로 연애시절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땐, 남편이 대단하다는 생각보다는 이렇게 자주 피를 뽑아도 괜찮을까? 너무 피를 자주 뽑아서 오히려 오빠 건강이 상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었다. 결혼을 해서도 이렇게 자주 피를 뽑는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한 편이었다. 학창 시절 헌혈을 하면 초코파이를 주곤 했던 기억이 있다. 단체로 체중을 측정하고 통과되는 사람 중에 헌혈 희망자만 헌혈을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항상 아슬아슬하게 체중 미달로 한 번도 헌혈을 경험해보지 못했었다. 이제 와서 창피한 고백이지만 그래서 더 헌혈에 무지했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동생과 통화하는 도중에 그런 남편을 떠올리니, 알 수 없는 기분과 함께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렀다. 병동 복도에 서서 그렇게 누가 볼세라 눈물을 닦아내기 바빴다. 그때의 감정을 다시 돌이켜서 생각해 봤다. 그때 내 눈물의 의미는 뭐였을까?
남편은 매 번 꾸준히 헌혈을 하는데, 아내는 수혈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니..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부끄럽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남편이 너무나 대단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그 사실을 너무 몰라준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던 것 같다.
내가 직접 몸이 아파서 경험을 해보니 황금 같은 토요일에 꾸준히 시간을 내어 헌혈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에게 수혈을 해주신 분들도 남편처럼 이렇게 시간을 내어 헌혈을 해주셨을 것을 생각하니
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제야 나는 남편의 헌혈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입원해있는 동안 또 한 번 다짐을 했다.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정말 열심히 몸과 마음을 관리해서 꼭 다시 건강해져야겠다고.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남편에게 말해준 적은 없었는데,,
사람 살리는 봉사활동을 이렇게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고 꼭 말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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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을 진단받고 주치의에게 들은 내용, 공부한 내용, 기억나는 내용을 토대로 작성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의학적인 정보들도 적힌 글이라 조금은 조심스러운 마음도 있습니다. 혹시나 잘못된 정보가 있을 경우 알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