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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Aug 25. 2021

영화 리뷰 <히든피겨스, 2017>

차별과 편견을 극복한 세 여자들 이야기


천재성에는 인종이 없고
강인함에는 남녀가 없으며
용기에는 한계가 없다.



영화 <히든 피겨스>는 이 문구에 매료되어 보게 된 영화이다.

'1960년대', '흑인', '여성'. 그야말로 차별의 끝을 보여주는 세 단어들이다. 1960년대까지 미국은 '인종분리정책'을 실시했다. 백인과 유색인종의 대우는 극과 극이었다. 차별은 공공 도서관, 버스, 화장실 등 어디에나 존재했다. <히든 피겨스>에서는 그러한 장면을 끊임 없이 보여준다. 아마 영화에서 가장 많이 보여준 단어는 'Colored Only'일 것이다. 영화 초반 백인 남성 경찰은 세 흑인 여성들이 NASA로 출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말한다. "파격적인 채용이로군!"

차별을 겪는 사람과 차별을 겪지 않는 사람은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간다. 그리고 그 차이는 차별을 당하는 사람만 더 가혹하게 느끼는 법이다. 백인 여성 상사인 비비안 미첼은 말한다. "당신에게 악의가 있는건 아니에요." 도로시 본은 대답한다. "알아요.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겠죠." 개인적으로 가장 울컥한 장면이자, 통쾌했던 장면이다. 사람은 딱 자기가 아는 만큼 보고, 자기가 겪는 만큼 생각한다. 차별을 행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게 차별이라는 것을 알고도 행하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자기가 살아온 환경에 적응을 하고 습관적으로 행하다 보면 그게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차별만 있는건 아니다. 그게 차별이고 그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해지는 차별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히든 피겨스>에는 악한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거의 판타지라고 생각했다. 흑인 여성은 정말로 극한 계층이다. 흑인 남성에게도 무시를 당하고 백인 여성에게도 차별을 당한다. 백인 남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영화에서 짐 존슨과 비비안 미첼, 그리고 백인 남성인 알 해리슨과 폴 스태포드 모두 결국에는 그녀들에게 평등한 대우를 해주는 식으로 마무리 된다. 가장 영화스러운 요소가 아닌가 싶다.


그래도 나는 이 영화가 너무 좋다. 세 주인공들의 삶에 대한 유쾌하면서도 짠한 태도도, 불만에 그치지 않고 변화를 일으켜낸 행동도, 그녀들을 지지해주고 도와준 주변 인물들도 정말 좋았다. 실제로 현실에서 인종차별은 더 잔인하고 더 가슴 아프고 더 끔찍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단지 나약하고 별 볼 일 없는 존재들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좋았다.








여성 엔지니어를 꿈꾸는 메리 잭슨, 전산팀의 수학 천재 캐서린 존슨, 그리고 리더십 있고 프로그램에 능한 도로시 본. 이 세 캐릭터의 조합은 완벽했다. 정말 멋있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수학을 공부하고 계리사를 꿈꾸는 나의 입장에서 캐서린 존슨이 계산기를 두드리고 칠판에 수학 문제 풀이를 적어 내려가는 모습은 거의 영웅과도 같았다. 미흡한 글솜씨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이 들었다. 전산원이라는 이유로 보고서에 이름을 적어내지 못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회의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남들이 못 푼 문제를 풀어내고 남들이 대답하지 못한 것을 거침 없이 말하는 모습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메리 잭슨 또한 애착이 가는 캐릭터였다. 이 영화를 보면서 딱 한 번 눈물이 난 장면이 있는데, 메리 잭슨이 재판에서 승소하고 법정을 나서면 "yes!!! yes!!!" 하며 소리 지르는 장면이었다. 감히 그 심정을 추측조차 해볼 수 없다. 스스로 쟁취해낸 권리를 누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메리 잭슨이 판사를 설득하는 장면은 언젠가 꼭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장면이다.


"네가 백인 남자였다면 엔지니어를 꿈꿨을까?" "그럴 필요도 없죠. 이미 됐을 테니까."


"그 누구도 메리 잭슨의 꿈을 막을 수 없어. 세상도, 나도."


알 해리슨. 이 영화의 가장 판타지 같은 캐릭터이다. 가장 큰 통쾌함을 제공하지만 그만큼 가장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다. 해리슨은 NASA를 특별한 공간으로 생각한다. NASA에서는 모두가 같은 색 오줌을 눈다. 이 곳 NASA에서는 여성도 회의에 참여할 수 있다.


미국항공우주국 NASA는 최첨단 기술로 우주 개발을 이루는 기관이다. 소련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그만큼 절박하고 변화에 민감하다. 그러한 시대적 배경이 있었기에 차별을 격파하는 것이 그나마 가능했던게 아닌가 싶다. 그런 면에서는 조금 씁쓸했다. 가장 변화에 민감한 기관에서도 Colored Only는 오랫동안 존재했다. 즉, 일반적인 공간에서도 일반인들도 차별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더 큰 변화와 혁명을 필요로 한다. 내가 살아가는 현재에도 수많은 차별이 존재한다. 차별 받는 사람이 그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면 차별 받지 않는 사람은 그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유난 떤다.", "오바 한다."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앞에서도 말했듯, 차별은 당하는 사람에게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고 오만한 존재이다. 내가 겪지 않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한다. 내가 누군가를 차별하는지, 내가 누군가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 끊임 없이 생각해야 한다. 생각을 멈추면 그냥 멍청이가 되어 버린다.



<히든 피겨스>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요 근래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멍청하게 살지 말자. 그리고 멋진 사람이 되자. 무기력하고 힘든 요즘 생활에 큰 힘이 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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