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진짜 인생
하필 그날, 아들 학원 시간이 저녁 시간으로 미뤄졌다. 연주회는 5시, 학원은 7시!
공연장에서 아버지의 연주까지 듣고 6시 30분에 나가면 학원 수업도 괜찮을 것 같아 아이를 데리고 갔다. 몇 년을 그렇게 엄마의 눈칫밥을 먹으며 배웠는데, 이제 연주회를 하다니 철부지 아들 연주회에 온 느낌이기도 했다. 다소 긴장한 얼굴로 앉아계신 아버지께 꽃다발을 전해드리자 얼굴이 활짝 폈다.
그가 악기를 연주하기까지 참 많은 과정이 있었다.
이 늙은 나이에 뭐 하러 악기를 배우냐! 나이 먹어 돈 쓸 일만 한다는 엄마의 잔소리를 등 뒤로 배운 악기다. 악기 가격 만만치 않다. 그동안 모은 용돈으로 엄마 몰래 낙원상가를 가셨다. 하고 싶은 것은 꼭 하는 성격이라 그 누구도 아버지의 취미 생활을 말리지 못했다.
못마땅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엄마는 가끔 푸념을 늘어놓으셨다. 그럴 때마다
"에이, 엄마. 병원에 누워 있는 것보다 낫지. 건강하고 재밌게 살면 얼마나 좋아. 이것도 복이야. 엄마 요즘은 백세시대잖아. 이제 좀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
엄마는 참 생활력이 강한 분이셨다. 1960년대, 사업을 하며 남의 힘을 빌리는 것은 누구보다 싫어했다. 충무로 또순이라고 불리며 엄마는 강하게 살아냈다.
젊은 시절 엄마 사진을 보면 미니스커트에 단정하게 묶은 긴 머리, 나팔바지에 풍성한 복고풍 머리가 참 세련됐다. 옷에 관심이 많아 직접 디자인하고 공장을 두었던 엄마를 따라다니면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 형형 색색의 단추와 옷감을 보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녀의 젊은 시절은 취미 생활을 가질 시간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일을 그만두고 나니 갑자기 우울증이 찾아왔다. 그녀만의 해결책으로 불교 대학을 다니셨고, 학창 시절 아침마다 들리는 불교 방송으로 엄마의 기상시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가 유달리 좋아하는 것은 스카프와 양산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나마 쉽게 살 수 있는 그녀의 작은 사치였다. 그녀의 취미는 구에서 미용 기술 자격증을 취득해 봉사로 어르신들 머리를 잘라주는 것이었다. 미용실을 가는 대신 봉사자에게 자신의 머리도 맡길 수 있는 일석이조였다.
몇 년 전에는 갖은 수술을 견뎌야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답답하고 화가 났다. 왜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 거지? 누구를 위하는 삶보다 얄미울 정도로 자신의 삶을 챙겼으면 싶었다. 결국 이렇게 밖에 안될 거면서.. 그런 엄마의 곁에서 간호를 하는 와중에도 아빠는 수첩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다양한 취미 생활은 일상이 무료할 때 써먹을 수 있는 수단이 된 것이었다.
지금 내 나이에 부모님 시절을 생각해 봤다. 일상생활에 더 집중하기 위해 아버지는 취미 생활을 가졌던 것이었고, 어머니는 한 푼씩 모으느라 여행을 줄이고 취미 생활은 없는 조금 건조한 생활을 하셨다. 어떤 삶이 옳다고 할 수 없지만, 어쩄건 그 시절을 잘 견디고 그들만의 또 다른 리그를 보내고 있다.
연주회를 참석한 후 남편이 말했다.
" 나 요즘 회사에서 스트레스 진짜 많았는데, 주말에는 나도 악기 배워볼까? "
자신 삶은 없다고 생각했었던 그가 노후를 보내는 그들의 생활 방식을 통해 삶에 활력을 느낀 것 같았다. 취미 생활은 단순히 돈 낭비가 아니라 지금 삶을 더 긍정적으로 살 수 있는 수단이며 제2의 직업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제부터 진짜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