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하고 싶은 일상에서 탈출구를 찾던 중 브런치 작가 수업을 알게 되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일이 많아 짬짬이 준비해서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짬이 쉽게 나지 않아 밤시간을 이용해야 했다. 조용한 밤 토독 두들기는 키보드 타격감이 은근 매력적이었다. 금방 새벽 3시가 되고 아침 일찍 아이 등교 시키고 슬슬 감기는 눈을 부여잡고 일을 해야 했다. 살이 많이 쪄 퉁퉁 부운 다리는 이미 내 의지와 달리 침대에 고스란히 포개 있었다.
오후 1시! 알람이 울렸다. 30분 후면 아이들이 올 시간이다. 설거지 통에는 그릇이 쌓여있고, 녹고 있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처럼 물건들이 재활용 봉투를 넘어 멜롱하고 있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레깅스 바지를 입은 채 튀어 나갔다.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았다. 머피의 법칙은 꼭 이때 적용한다. 인맥도 별로 없는 내가 윗집 옆동 아는 사람을 다 만났다. 웬 간 해서는 레깅스 바지를 입고 나가지 안 않았는데, 설마가 나를 절망에 빠트렸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아무렇지 않게 추워서 옷깃을 여민 듯 냉큼 인사하고 튀었다. 늠나 창피했다. 사실 레깅스가 아니라 운동복이 나의 살을 못 이겨 레깅스가 된 사례다.
아우! 정말!
집에 들어와서 소파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 짧은 거리에 비해 거친 숨을 거르고 있었다. 꼬맹이들이 오려면 앞으로 15분! 후다닥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를 감아 단정하게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방에 들어갔다. 방은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커피잔이 3잔이나 있었다. 내가 언제 이렇게 많이 마셨지?
나도 모르게 카페인 섭취가 한도량을 넘어 가슴이 뛰기까지 했다. 눈은 침침하고! 흰머리가 희끗희끗 보였다. 젠장! 나 정말 늙었나 봐. 이젠 밤엔 일찍 자야지!
저녁 준비하고 설거지 하다 보면 금방 10시가 된다. 남편은 저녁으로 와인을 한 잔, 아니 한 병을 마신다. 밥은 10초 뚝딱 먹지만 와인을 걸치면 두세 시간 TV시청을 하며 하루 피곤을 푼다. 나는 먼저 방에 들어왔다. 밤세기 싫으니까. 나 늙고 싶지 않아서 노안 되고 싶지 않아서.
브런치 주제가 사춘기라 작가로서 합격을 했어도 당당하게 말을 하지 못하는 이 마음 그대는 알랑가몰라. 남편한테 카톡을 보냈다.
나: 오빠 브런치 알아? 나 거기 작가됐다~
남편: 어? 그래.. 잘했네.
끝이다. 이게 전부다. THE END! 누구는 가족 사랑 듬뿍 받으며 축하를 받았다는데, 뜨뜨 미지근한 반응이라 기분이 별로였다. 하물며 저녁약속까지 하고 오는 남편이 못마땅하기까지 했다. 의욕저하,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데 마땅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나의 작가 입문은 허무하게 지나갔다.
며칠 지나 아들에게 은근슬쩍 말했다.
나 : 짱구야~ 엄마 브런치 작가됐다.
아들: 에이.. 거짓말하지 마~
그래, 나 집에서 이런 대접받는 여자다. 딸을 낳았다면 다른 반응일 거라 생각하고 싶다.
우울했다. 주변에 보이는 책을 집어 들었다. '혼자서도 별인 너에게' 나태주 시집이다.
내가 나를 칭찬함
오늘도 흰구름을 나는
흰구름이 아니라고 억지로
우기지 않았음
오늘도 풀꽃을 만나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
얼굴 돌려 외면하지 않았음
이것이 오늘 내가 나를 진정
칭찬해주고 싶은 항목임
당신도 부디 당신 자신을
칭찬해 주시기 바란다.
그래, 까짓 거 자축하면 되지. 거실 베란다로 가서 간식통을 뒤졌다. 한가득 품에 간식을 안고 나가려다 유리창에 비친 우주하마와 눈이 마주쳤다. 한참을 쳐다봤다.
무등산 수박! 코끼리 다리!
남편 말이 생각났다. 입맛이 없어졌다. 나도 한때는 170cm 키에 S라인이었다고! 관리 못한 내 모습에 더 초라해졌다. 다시 마음을 잡았다. 그래, 나 무슨 일을 하든 전문가가 되겠어. 꼭 성공해서 내가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하면서 멋지게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