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설명이 요구되는 관계

by 강희수

어떤 관계에서는 설명이 필요해지는 순간이 있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된다.

“요즘 왜 그래?”“무슨 일 있어?”“괜찮다며?”

이 질문들은 관심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하나의 전제가 있다.


이전의 기능은 유지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질문들은 상태를 묻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점검하는 질문이다. 설명은 이때부터 관계의 통화 수단이 된다. 왜 못 하는지, 왜 늦어지는지, 왜 예전과 다른지. 설명을 하면 관계는 잠시 안도한다. 아직 관계가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안도는 이해에서 오지 않는다. 관리 가능성에서 온다. 설명은 사람을 이해하게 만들지 않는다. 사람을 예측 가능하게 만든다. 그래서 설명을 잘할수록 관계는 편해진다.


언제까지 힘든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다음에는 가능한지. 이 정보들이 쌓이면 관계는 다시 사람에게 기대기 시작한다. 설명은 권한을 주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권한을 넘겨주는 행위다.


설명하는 사람은 자신의 상태에 대한결정권을 조금씩 내어준다. 아직 괜찮은지, 이 정도면 되는지, 이제 다시 해야 하는지. 이 판단을 관계가 대신하게 된다. 그래서 설명이 요구되는 관계에서는 이상한 역전이 일어난다. 힘든 사람이 더 설득해야 하고, 멈추려는 사람이 더 논리적이어야 한다. 설명이 부족하면 의지가 없다고 평가받고, 설명이 길어 지면변명으로 읽힌다.


어느 쪽이 든 사람은 불리하다.


왜냐하면 이 관계는 설명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능을 회수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명은 결코 충분해지지 않는다. 설명이 충분해지는 순간은단 하나뿐이다. 관계가 원하는 답을 얻었을 때다.

“그럼 다시 할 수 있겠네.” “조금만 더 참으면 되겠네.” “곧 원래대로 돌아오겠네.” 이때 설명은 관계를 살린 것이 아니라, 구조를 복구한 것이다.


설명이 요구되는 관계는 본질적으로 불균형하다. 누군가는 설명해 야만 남을 수 있고, 누군가는 설명을 요구하는 위치에 있다. 이 구조에서 설명을 멈추는 행위는 대화의 중단이 아니다. 권한의 회수다.


그래서 설명을 멈추면 관계는 즉각 반응한다. 차갑다, 벽을 쌓았다, 대화가 안 된다는 말들이 따라온다. 그러나 이 반응은 관계가 상처받았다는 뜻이 아니다. 관계가 사람을 통해 관리하던 기능을 잃었다는 뜻이다.


이 장의 결론은 분명하다.

설명이 요구되는 순간, 관계는 이미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신뢰는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신뢰는 상태를 존중한다. 설명이 관계의 조건이 될 때, 사람은 점점 자기 상태보다 관계의 요구를 먼저 고려하게 된다. 그리고 그 선택이 반복되면 사람은 결국 자기 자리를 잃는다.


이 책은 설명을 거부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묻는다. 이 설명은 나를 이해시키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나를 다시 움직이기 위한 것인가. 이 질문이 생기는 순간, 설명은 더 이상자동으로 나오지 않는다.


다음 장에 서는 설명을 멈춘 뒤관계가 사람을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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