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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프피 Jan 24. 2023

경계를 경계하기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 책⑩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 편식을 안 하려고 나름의 노력을 하는데 그러면서 조금은 친해진 게 과학의 영역이다. 물론 양심적으로, 방금 읽은 과학서의 30퍼센트 이상의 문장을 이해하는가 묻는다면 3퍼센트는 할 걸? 아마도? 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단어가 중요한 건 영어만이 아니라 모든 언어가 그렇다. 우리말도 아는 단어가 많아야 그럴 듯하게 말할 수 있고 깊이 생각할 수 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건 물고기를 낚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뭐가 낚일지 모르지만 일단 낚아보는 거다. 낚아서 알아내야지. 그게 어떤 물고기인가-

공교롭게도 이 책의 제목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이고, 이건 어떤 은유가 아니며 말 그대로 우리가 어류라고 아는 종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뜻이지만 말이다.

과학에 전율을 느끼는 건 그것이 인간의 한계를 발견할 때다. 이 책은 '어류란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류로 분류해놓은 것들은 실은 서로 너무나도 다르며, 그들 각각은 오히려 다른 종들과 한 데에 분류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건 사실이다. 아니, 사실이란다. 이미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그걸 알고 있고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데? 한다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선을 넘나들 필요가 없다.

선을 넘나들기. 선이 있지 않음을 깨닫기. 궁극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 범주, 경계라는 것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그 커튼들 너머, 우리가 자연 위에 그려놓은 선들 너머를 간절히 보고 싶었다. 다윈이 거기 있을 거라 약속했던 땅, 분기학자들이 볼 수 있었던 땅. 어류는 존재하지 않으며 자연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경계가 없고 더 풍요로운, 아무런 기준선도 그어지지 않은 그곳을.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에서




정리하자면, 인간의 한계를 발견하고도 그것을 딱히 한계라 여기지 않고 묵묵히 고갤 끄덕인 다음 또 다른 할 일을 하는 과학을 마주할 때마다 전율을 느낀다. 그리고 생각한다.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학문은 과학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 할 것도 없이, '그러면 이어서' 하는 움직임들. 인간적인데. 가장 연약한 주제에 여태 살아남은 인간들의, 어찌보면 의연하고 어찌보면 단순한 면을 닮았다.

"왜?"라는 질문이 과학의 시작이 된다더라. 그러나 못지 않게 "그렇구나."하는 태도도 과학의 어떤 역할을 하지 않을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 우리가 그동안 어류라고 분류한 것들은(그 외 모든, 인간이 인간의 기준에 따라 분류한 생물의 종들이 그러하지만) 사실 한 데에 묶어두기엔 다른 점이 너무 많고, 그건 오히려 다른 종으로 분류한 것들과 공통점이 더 많기 때문에. 그렇구나.

차이를, 아니, 차이가 아닌 그저 자연이 그러한 것임을 그러한 것으로 아는 태도.

과학은 생각보다 훨씬 철학적인 학문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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