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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프피 Jun 13. 2023

에바 호프, 이름값 하는 여자

이야기를 이야기하다-뮤지컬③ <호프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




절망의 이야기

희망(Hope)의 이야기   

고로 인생의 이야기다.

스스로를 '어느 동네에나 있는 미친 여자'라 말하는 주인공 에바 호프. 그 말은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다. 어느 나라 어느 동네 어느 집에나 있는 인생.



벗어나고 싶다던 너는 머물러 있고
벗어나고 싶다던 너는 머물러 잇다
길 위에 선 나그네

그에게 세상은 언제나 밤, 언제나 겨울
무겁게 내린 눈 속 오랜 날을 혼자 서있었네
내내 그곳에

뮤지컬 <호프>, '나그네' 중에서




이건 '절망이 바닥날 때까지 절망한, 집을 떠난 나그네'의 이야기다. 하지만 극을 본 사람이라면 알듯 절망에게 도망치고자 집을 떠난 나그네 호프는 결국 집으로, 엄마 마리에게로, 그리고 그 모든 것과 동일한 원고에게로 돌아온다. 그리고 머문다. K의 말처럼 벗어나고 싶다 말하는 너(호프)는 머문다.

절망이 바닥날 때까지 절망한 인생의 다음 시퀀스가 죽음, 즉 완전한 결말이란 법은 없더라. 그걸 바로 마리와 호프가 보여줬는데 해진 절망의 튀어나온 실밥을 꼭 붙잡고 버티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영위하고 싶은 삶, 아니 영위라는 표현도 거창한, 그렇게라도 버티고 싶은 삶.

고집스럽고 독한 노인네 호프는 인생이 권태로운 것처럼 굴지만 실은 누구보다 살고 싶은 것이다. 다만, 오롯한 삶을 가져본 적이 없던지라 자신에게 유일했던 것을 곧 삶 그 자체라 여기는 것이다. 엄마인 마리가 그러했고, 엄마인 마리가 목숨처럼 여겼던 원고 역시 그러했던 것.


숨소리 하나 꺼진 밤, 이름 하나 사라진 밤
까맣고 까만 이 밤에 난 살아서

그래도 난 살아서 집에 돌아가고 싶어

뮤지컬 <호프>, '다윗의 별' 중에서




어떤 생은 눈물을 동력 삼아 굴러가기도 한다, 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런 섭리를 쓰고도 스스로 감탄했던 게 부끄러워졌다. 눈물뿐이랴. 절망을 절망하며 동력을 얻는 삶도 있다.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있다.

나 또한 그랬다. '철든다'는 말이 때 이르던 시절부터 해왔던 부모의 보호자 역할이, 그들의 떠남으로 끝나게 되었을 때, 공허했다. 막막했다. 허탈했고. 당황스러웠다. 불 꺼진 병원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새벽을 보냈던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인생, 관심 같지 않는 일상'이 깨끗한 절단면을 만들며 끊어지자 멍청해졌다.

말 그대로 그건 인생이고 일상이었으니까.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시궁창, 낡은 텐트, 전쟁터여도 그게 곧 나였기에.

울게 하고 서럽게 한 이 이야기가 그러나 멋진 이유는, 호프가 결국 벗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호프는 벗어나지 않았다. 호프의 말처럼 원고는 곧 호프 자신이었고, 인생이었다. 그런 호프가 원고를 세상에게 선물했다는 것은, 호프가 어디로부터 벗어난 것이 아니라 원래 자신의 것인 큰 도화지의 한 구석을 세상이 끼어들 수 있게 허락한 것일 뿐이다. 그 구석을 포함한 적잖은 부분이, 호프에게서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는 원고, K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놓는다 해서 놓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버렸다 해서 버려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게 나쁜 건 아니다. 그냥 '내버려 두면' 되는 것이다. 그럼 그건 과잉되지도 않고 결핍되지도 않은 채 내게 머물 수 있다. 물론 어렵다. 어찌 보면 그게 제일 어렵다. 나와 나를 이루는 것 사이에 적절한 간극을 유지하기, 그게 어려워 우린 절망하고 낙담하고 처절해지고 서러워지고 외로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렇게 살아가는 이유. 살아내는 이유. 절망하는 것도 절망하다 낡아버리는 것도 모두 '나'이기 때문에.

신은 인간이 버틸 수 있을 만큼의 고통만 준다고 한다. 근데 가만 보니 아닌 것 같다. 만약 고통이라는 게 어디서 절로 생겨나 오는 게 아니라 정말 신의 설계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신은 인간에게 '죽어라'하고 고통을 주고, 니가 이러고도 버티냐며 괴롭히는데 인간이 잘도 버텨내는 것이다. 신과 인간의 기싸움. 그러나 늘 이기는 건 인간. 그래서 신보다 인간이 훨씬 대단하고 엄청나다. 신화보다 인간의 이야기가 더 짜릿하고 아름답고 멋지고 서글프고 기특하다.

과거 호프부터 지금의 호프까지, 삶을 비관하며 울부짖는 절규의 끝엔 묵음으로 "~이라도"가 붙었다. 시궁창 같은 인생, 창피하고 낡은, 이런 꼬라지, 사기당한, 배신당한, 마녀, 미친 여자.

포탄의 연기로 하늘이 까맣게 덮여 낮이 오지 않아도, 인간이 질린 봄이 아주 떠나 내내 겨울이라도, 가진 건 낡은 텐트와 누더기 같은 옷과 살이 튀어나온 우산뿐이라도 살고 싶은 여자. 그래서 그의 이름은 HOPE다.

생의 말미, 일흔여덟이 돼서가 아니라 실은 일흔여덟 해의 모든 순간순간마다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던 여자. 다만 그걸, 조금 늦게 알아차린 여자.




첫째, 당신이 상속받은 재산은 에바 호프뿐이다
둘째, 당신의 인생은 그 누구에게도 팔아넘길 수 없다
셋째, 당신은 누구보다 당신을 잘 지켜줘야 한다
넷째, 당신은 떠날 수 있고
다섯, 다시 돌아갈 수 있다
다만 당신이 돌아갈 곳은 반드시 너 자신이 되어야만 한다

이것으로 에바 호프의 인생은 에바 호프에게 되돌려 주기로 판결한다

뮤지컬 <호프>, '판결' 중에서




그런 에바 호프가, 에바 호프의 완전한 일부가 된 K가 해주는 말이라서 자꾸 눈물이 고인다.

넌 수고했다. 넌 충분하다. 넌 살아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절망을 동력 삼아 살아가는 이에게, 무엇보다 스스로의 희망이나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이야기. 뮤지컬 <호프: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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