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 INFP의 혼자 사는 이야기_2
3년 만에 직관을 다녀왔다고 하면, 팬심이 엄청난 야구팬은 아니구나 할지도 모르겠다. 홈경기는 물론 원정 경기도 직관을 다니고, 놓친 경기는 재방송이라도 꼭 챙겨보고, 팀 선수는 1군이나 2군 가릴 것 없이 전력을 줄줄 외우고 있는 팬에 비하면 열정이 덜해 보일 수는 있으나 마음만은 무려 20년을 넘게 이어온 진심이다.
내 두산, 내 베어스.
물론 나도, 모든 야구팬들이 그렇듯 정규이닝 기준 9회가 진행되는 3시간 남짓 온탕과 냉탕을 미친 듯이 오간다. 온탕에 들어간 몸이 채 뜨거워지기도 전에 냉수마찰을 하기도 하고, 내가 있는 게 냉탕이구나 느끼기도 전에 뜨거움에 절여지기도 한다.
툭 치면 튀어나오는 “해체해”라는 말. 그렇다고 정말 해체하길 바라는 건 아니다. 뜨거운 내 마음에 견줄 만큼 뜨거운 경기력을 보여줬으면 좋겠으나 그렇지 못한 상황이 안타깝고, 또 그런 상황이 어쩌다 한 번이면 사람이 하는 일이 어떻게 늘 마음만큼 되겠냐며 쓴웃음 짓고 말겠으나 나도 모르게 이 팀이 프로 리그에서 강등이 된 건가 싶은 모습을 보여주는 순간이 가끔보다 조금 더 많으니 그러는 것이다. 어떤 팬이 내 팀의 해체를 바라겠는가. 팬들이 말하는 “해체해”는 “해체(를 해도 모자란 경기력을 보여줘서 사람을 열받게) 해”의 줄임말이 되겠다.
처음 야구를 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언니가 데려간 잠실구장에서였다. 마침 그 날의 경기가 잠실더비(잠실 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쓰는 두산베어스와 LG트윈스의 경기)였고, 마침 나는 두산 팬인 언니를 따라 두산 팬석에 앉았으며, 마침 그날 두산이 그들의 별명인 허슬두에 걸맞은 경기 내용을 보여주며 승리를 했다. 야구에 빠지기에 더 없이 완벽한 날이었다.
가끔은 언니를 원망하기도 한다. 왜 내게 야구 같은 것을 알게 해서 이 고통에 시달리게 하는가. 몰랐으면 저 작은 공 하나에 내 심장을 싣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럼 내 심장이 그 공을 따라 공중을 날고 흙바닥에 처박히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목표를 잃고 애먼 곳에 나뒹구는 일도 없었을 것인데.
야구 팬들은 소박하다. 선수에게 잘생기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요, 성인군자와 같이 인류의 귀감이 될만한 인성까지 바라는 것도 아니다. 요리사에게 의술을 바라듯 노래를 잘하라거나 춤을 잘 추라거나 그림을 잘 그리라는 것도 아니다. ‘프로’가 붙은 리그에서 뛰는 선수이니 그에 걸맞은 실력을 보여주길 원하는 것이다. "기대해주십쇼" 했으니 기대에 응하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것이고 "응원해주십쇼" 했으니 응원이 무색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매일 같이 실력을 뽐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으나, 베테랑 배우의 NG처럼 간혹의 실수는 인간미로 보듬어줄 의향도 충분히 있다.
그런데 그들은 왜 그럴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야구를 놓지 못하나.
생각해보니 야구라는 것 자체가 그렇다. 누군가 야구의 매력을 묻는 질문에 답한 것처럼 “공이 아니라 사람이 들어와야 점수가 나는 스포츠”라서. 그러니까, 공보다 더 빨리 베이스를 밟는 사람이 기회를 얻고, 공보다 더 빨리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점수를 얻게 되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공보다 사람'들'이다. 수비를 맡은 팀에게는 공을 던지는 사람과 던진 공을 받는 사람, 날아간 공을 잡을 사람이 누구인가가 중요하다. 공격을 맡은 팀에게는 공을 치는 사람과 다음 베이스까지 내달릴 사람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경기가 시작해서 끝나는 매 순간이 그렇다. 경중을 따질 수 없이 모든 사람'들'이 1점의 점수를 넘어 하나의 경기를 고루 지배한다.
또, 그게 작은 공 때문이라는 것. 주먹만 한 공 하나에 뒤쳐지는 바람에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쫓겨나는 사람도 있고, 그 공이 아주 돌아올 수 없게 멀리멀리 보내버리는 사람도 있다. 덩치가 문짝만 한 사람들과 만 단위의 관중들이 그 주먹만 한 공 하나에 쾌재를 부르기도 하고 허공에 육두문자를 내뱉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수가 되기에 유리할 조건이 딱히 뚜렷하지 않다는 것 또한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덩치가 작으니 힘이 달리면 홈런 타자에 적합하지 않을 뿐, 야구는 단타로 만들어낸 안타가 필요한 순간이 매우 많으며 빠른 발로 1점 이상의 득점 상황을 만들 선수 또한 매우 중요하다. 더불어 몸이 날렵하면 수비 범위가 넓은 외야 곳곳을 누빌 수도 있다. 투수의 경우는 어떤가. 빠른 공을 던지지 못한다면 제구로 ‘보고도 못 치는 공’을 만들 수 있다. 야구는 빠른 공을 던지고 세게 치면 그만이라는 말로는 1%도 설명될 수 없는, 무수한 경우의 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야구는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다. 거포 타자들의 안타와 홈런으로 화려한 승리를 얻을 수도 있고, 날렵하고 영리한 주자가 발로 만드는 점수를 얻을 수도 있다. 투수는 빠르고 묵직한 공으로 타자의 배트를 묶어둘 수도 있고, 스트라이크존에 아슬아슬하게 걸치는 공이나 뱀처럼 꿈틀대며 들어오는 공을 던져 타자가 맞힐 수 없는 공을 던질 수도 있다. 잔잔하게 이어지던 경기도 스윙 한 번에 불이 붙을 수 있고, 패색이 짙었던 경기가 5분도 안되는 단숨에 엄청난 집중력으로 역전이 돼버릴 수도 있다.
그러니 야구가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이다. 이러니 사람이 야구에 미치는 것이다.
그저께 지고 “해체해”를 외치던 나는 어제의 승리로 “사랑해”를 외쳤고, 오늘의 경기는 ‘어제 이겼으니 오늘은 지겠지’라는 마음 절반과 ‘어제 이겼으니 오늘도 이기자’라는 마음 절반을, 훠궈의 백탕과 홍탕처럼 고루 찍먹하고 있다. 그리고 ‘지겠지’라는 마음의 말미에는 기대하지 않을 것이지만 꼭 심기일전해서 이겼으면 좋겠다든가, 이길 거라고 믿으면 지는 게 이 팀의 특성이니 질 거라고 예상하면 이기겠거니 생각하는, 이러나저러나 승리를 향한 갈망이 있다.
야구에 괴로워하는 나를 목격한 지인들은 “근데 왜 야구를 좋아해?”라고 묻는다. 설명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사랑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하루종일 시간을 준다면 쉬지 않고 말할 수 있기도 하다. 야구가 어떤 것이길래 지치면서도 다시금 힘을 내 사랑하는지를.
오늘, 이기자. 물론 오늘 지더라도 화요일이 되면 언제 좌절했냐는 듯 응원할 테지만 그 응원은 그때의 것이지 오늘의 것이 아니다. 오늘은 오늘의 몫을 다 해 꼭 이기도록 하자. 매일 이길 수 없는 게 스포츠지만 매일 이기기 위해 싸우는 우리가 되도록 하자고, 선수도 아니면서 선수보다 더 결연하게 다짐하는 최강 10번 타자는 오늘도 자발적 고난의 길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