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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프피 Jul 27. 2024

굿나잇, 형제여. 굿나잇.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 뮤지컬(5) 하데스타운

3년을 기다린 <하데스타운>의 완전한 귀환을 마음 다해 반긴다. 대극장 극을 주로 보는 관객에겐 그중 다소 작게 느껴질 샤롯데시어터의 아늑한 무대를 빈틈없이 채운, 모든 순간의 절정들. 빨간 꽃의 노래는 여전히 애틋했고 왕국은 쇠냄새가 사무치게 빛나고 있었다.





3년 전, 초연에서 순전히 극의 재미만 느꼈었다면 이번 재연을 통해서는 극의 깊이를 느꼈다. 이 캐캐묵은 사랑 노래를 가지고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가를 고민해 볼 수 있었다. 그렇게끔 만든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조형균의 오르페우스라 말하겠다.

미련하고 순진하고 순수하고 연약한 오르페우스. 바보 같은 오르페우스. 그런 오르페우스를 차마 미워할 수 없는 건, 무용함에 기대어 잡는 뜬구름을 알아서다. 무용함의 가치를 알아서, 뜬구름을 보는 눈과 뻗는 손은 나에게도 있기 때문이다.


3년 전과 변함없는 극의 재미를 주도한 건 역시나 강홍석의 헤르메스. 그의 사랑스러움, 재치, 노련함, 유연함, 또 자주 내비치는 오르페우스를 향한 걱정과 연민. 특히 그게 너무 좋았다. 오르페우스를 바라보는 시선.

헤르메스가 오르페우스에게 노래를 불러보라고 할 때,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할 때, 겁먹지 말고 너의 몫을 해내라고 할 때. 그의 자애로움이 텁텁한 하데스타운의 공기와는 다른 결로 빛을 냈다. 더 아름다워진 강홍석의 헤르메스가 가장 반가웠다. 아무래도 나는 그를 가장 기다렸지 싶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를 보낼 것인가. 골치 아픈 고민 속 운명의 세 여신에게 평정심을 빼앗긴 하데스. 거칠 것 없어 보이던 지하의 왕, 죽음의 지배자에게서 단단한 족쇄가 드러났다. 결국 그 역시 운명 앞에선 ‘머리를 숙여’야 하는 것이었다.


머리칼 몇 가닥일지라도 ‘운명’과 얽혀있는데, 신이 인간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모든 결정 앞에 운명을 명분 삼는 이들이라면 무슨 자격으로 인간의 우위에 선단 말인가.

신이 자신과 닮은 형상으로 인간을 만든 것인지, ‘운명’으로 빚어진 형상 중 목소리가 조금 더 크고 용기를 조금 더 먼저 낸 자가 신이라는 닉네임을 얻게 된 것인지, 알게 뭔가. 아주 오래된 이야기에 ”왜“라는 물음은 통하지 않는데.


신이라는 건 이미 사용 중인 닉네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다.






사람은 넘어지고, 굳이 다시 일어난다. 그 바람에 또 넘어지고 일어나고, 어김없이 넘어진다. 일어나기 위해 넘어지는지, 넘어지기 위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을 때까지 반복하는 일. 살아가는 것. 부르는 노래.


노래의 끝과 시작의 연결점에서 우리는 더 나아진다. 더 나은 사람, 더 나은 사랑, 더 나은 형편, 더 나은 생각과 마음. 더 나은 선택을 얻는다. 우리의 나아짐이 더딘 이유는, 우리 몫의 나아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무수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나아지고 있음을 알지 못하면서도, 마치 잘 아는 것처럼 군다. 알지 못하면서 희망하고 보지 못하면서 애를 쓴다. 그렇게 뒷걸음치다가 뭐라도 밟은 격으로 어쨌거나 나아지고 만다.



내가 갈게 기다려
내 발걸음 소리가 저 벽을 타고 울려 북소리처럼
난 혼자가 아냐
내 노래를 모두가 따라 부르네
I'm coming

- 뮤지컬 <하데스타운>, 'wait for me' 중에서



검댕을 칠하고도 검어지지 않은 오르페우스가 겨울을 지나면서도 시들지 않은 꽃을 들고 부르던 노래.

이제 그 노래의 가창자는 우리다. 뮤즈의 아들도 아니고 신의 가호도 받지 못하는 우리. 극 속의 코러스처럼, 자꾸만 잊어버리고 외면하고 고개 숙이고 굴복하는 우리. 그러나 우리의 노래만큼은 나아가, 이다음의 우리를 향한다.


기다려줘. 내가 갈게. 이다음의 나. 이다음의 세상. 이다음의 우리. 너를 찾을 거야.


그러니 굿나잇, 형제여. 우리는 내일도 모레도 노래를 불러야 하기에. 당신 한 사람의 목소리가 없으면 이 노래는 완전하지 않을 것이기에. 지겨운 낮을 지나온 형제여. 부디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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