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이야기하다 - 책(16) 김형숙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
내가 자라는 데에 쓰인 것들. 그 3분의 1은 둘째 이모의 몫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3분의 1 중에는 이모부의 애정도 있다. 그냥 있는 것도 아니고 꽤 선명하게.
초등학교 1학년 때였나. (세월이 가물가물하게 만들었다) 둘째 이모의 집은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바로 뒤에 있는 빌라였다. 학교에서도 빌라가 보이고, 빌라에서도 학교가 보이는 곳.
학교를 마치자마자 나를 데리러 온 아빠의 손을 잡고 이모의 집에 갔다. 나를 번쩍 안아들면, 어른보다 높아진 눈높이에 철모르는 재미와 신기함을 느끼게 해주던 이모부는, 마지막 숨을 위한 기력만 붙든 채 누워있었다.
내가 처음 경험한 죽음이었다. 무서운 줄도 몰랐다. 무서움을 포함한 모든 것을 몰랐던 나이. 이모가 다니는 교회 교인들의 찬송가 소리가 너무 커서, 심장이 두근거리기만 했다.
내가 학교에 간 사이, 엄마는 마지막 숨을 뱉었다.
아빠는 수학시험을 치르는 우리 반 교실에 겨울바람으로 들려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나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아빠에게 물려받은 가장 흔한 성 씨는 나에게 제일 앞줄, 제일 끝자리를 주었으니까.
겨울의 파주는 추위가 생생했던 탓일까. 맑은 공기에 하늘이 유독 파랬던 탓일까. 아빠의 죽음은 세월에 비해 몇몇 장면이 선연하다.
학교를 마치자마자 이모에게 연락을 받았고, 돌아가셨다는 말은 남의 이야기처럼 고막을 겉돌았다. 그럼에도 수학 시험을 치르고(일찌감치 수포자라 대충 찍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 내 자리에서 바로 보이는 관악부 연습실 앞 느티나무가 흔들리는 걸 왜 가만히 쳐다보게 되었었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갓 태어난 조카들을 보느라 진이 빠진 언니, 상주 역할을 하는 형부를 대신해 눈길을 걸어 행정복지센터에 다녀왔다. 상복 위에 두꺼운 겨울 점퍼를 입고. 빛이 부서지는 눈 밭을 지나. 아빠의 사망신고를 하러.
친척들, 별 의미 없는 동네 어른들이 모여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내 거취를 의논하고 있을 때, 그 사이에서 언니는 나를 보고 있었다. 잠을 설쳐 피곤한 얼굴과 온전히 슬퍼하지 못해 부어버린 몸 가득 향내를 묻힌 채. 그런 언니를 마주했을 때 마치 거울을 보는 듯했다.
사람들이 더 자주, 자연스럽게
생의 마지막 순간과 죽음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 김형숙,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 중에서
내가 살며 피부로 겪은 죽음들이다. 엄마를 보내는 화장장에서 피어나는 연기를 보며, 고작 항아리 하나에 담길 만큼으로 줄어든 한 사람의 반백 년 넘는 삶을 보며, 나는 무엇을 느꼈었지.
허망.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없어도 되는 건가 싶은 당혹스러움. 고작 3일을 모여 슬퍼하는 것으로 그와 함께한 시간 전부를 퉁치는 게 맞는 방법인가.
잘 죽는 방법을 종종 생각한다. 죽는 입장에서 고통을 안 느끼고 덜 무섭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건, 나를 보내고 남을 사람들과 잘 인사하는 방법이다. 장례를 잘 치르면 되지, 하는 말로 답이 될 고민 말고. 장례는 이미 죽은 내가 알 바가 아니니까.
이 귀한 숨의 진짜 마지막을 투자할 만큼 잘 된 인사, 그걸 고민하는 것이다. 사는 우리는 이따금씩 너무 좋은 순간을 만나면 “이대로 죽어도 좋아”라는 말을 한다. 그 말이 말뿐이지 않을 순간이 나의 마지막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환자의 소생 가능성이 없을 때 의료진은 가망이 없다고 말한다. 가망은 가능성이 있는 희망을 말한다. 죽음은 살 희망이 없음을 넘어, 더 이상의 절망도 없음까지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희망과 절망이 번갈아가며 차지했던 생의 자리에 평안과 안녕을 영구히 깃들게 하는 일. 죽음을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