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의 시간, 야만의 시대
2022년 4월 7일,
유엔총회 특별회의에서 한 안건이 가결됩니다.
러시아의 유엔인권이사회 제명 결의를 위한 안건.
회의장의 이어지는 박수소리 아래, 러시아 대표들은 퇴장하였고, 이어지는 기자회견을 통해 러시아는 유엔인권이사회 탈퇴를 선언합니다.
직접적인 동기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북서부의 작은 마을, 부차(Bucha) 에서 벌어진 민간인을 상대로 한 대규모의 학살행위 때문이었습니다.
이틀 전인 4월 5일,
우크라이나의 젤린스키 대통령은 영상으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연설을 합니다.
아울러 우크라이나가 그동안 모아 온 러시아의
잔학 행위에 대한 증거들을 공개하였죠.
유엔회의장에서 상영된 영상정보들이 보여준 내용은 참혹했습니다.
길을 지나가다 총격을 받는 민간인들,
손이 뒤로 묶인 채 저항도 못하고 죽어간 사람들,
구덩이 옆에 가득 쌓인 시신들...
몇 분 안 되는 영상 만으로도
국제사회가 분노하기에는 충분했죠.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명백한 범죄현장을 목격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유엔을 향해 젤린스키 대통령은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세계는 부차에서 일어난 일을 마주해야 합니다.
그들(러시아군)은 우리를 약탈하고 노예로 삼고,
이곳(유엔)에서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
국제법의 시대는 끝났습니까?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
유엔은 문을 닫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유엔을 문 닫을 준비를 하고 계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당장 행동하세요.
거부권이 (유엔의) 사망을 가져오지 않도록
개혁해야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누군가를 혼낸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작게는 길 위에 지나가는 꼬마를 혼내다가, 부모와 시비가 붙어 뉴스에 나오는 그런 내용들도 심심찮게 우리는 만나기도 하죠.
조금 크게는 음...
용감한 시민들이 절도범을 잡아 경찰서로 끌고 갔다가 혼나서(사법권도 없는 당신들이 왜 범인을 과잉진압(?) 해서 잡아왔냐 이런 ), 돌아온 경우도 있었답니다 (이건 실화예요 ㅎㅎㅎ, 제가 아시는 분들이 겪은 일이라 ^^;;; ).
하물며, 국가의 경우는 더욱 힘들답니다.
이는 전에 말씀드린 '주권' 이라는 국가의 절대권리를 존중해야 하기도 하고, 현실적으로는 '거부권' 이라는 막강한 방어권이 있기 때문이죠
조금은 김 빠지고 답답한 이런 국제사회 시스템.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관대한 국제사회에서 쎄게 선을 넘는 일이 생겨납니다. 그것도 유럽의 한복판에서 말이죠.
1990년,
가뜩이나 많은 민족들이 이념으로 묶여있던 6개 공화국의 연합체, 유고연방(구 유고슬라비아)은 구소련의 붕괴로 혼란하기만 합니다.
미국과 소련 가운데에서 실리외교를 취하던 유고에게 갑작스러운 공산주의의 붕괴는 당혹스러웠죠.
아무튼,
다른 국가들처럼 해체의 길을 걸을지,
어설프나마 연방을 유지할지 고민하던 이들은 일단,
연방을 유지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이는 비극의 시작이었으니...
공산주의가 붕괴한 틈을 타고 이제,
민족주의의 바람이 불어오고.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세르비아 공화국에는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라는
극악한 민족주의자가 권력을 잡습니다.
유고의 상황이 특이했던 이유는 먼저,
과거 오스만투르크 전사들을 유럽인들이 막아낸
역사성이 강한 공간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 민족들의 접경지였지만,
'공산주의' 라는 강력한 이념이
이들의 갈등을 누르고 하나로 묶고 있었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공산주의의 붕괴는
해묵은 문제를 떠오르게 만들었습니다.
종교와 민족,
이 바로 그것 이었죠.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을 이용하려는
정치가 들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금리 인상과 내부의 부패까지 더해져 유고연방의 시민들은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죠.
이렇게 여론이 들끓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향하는 비난을 돌리기 위해 정치가들은
밖에서의 희생양을 찾습니다,
밀로세비치는 이제
자국내의 무슬림들에 대한 비난을 시작합니다.
해안가의 '알바니아' 연방은
다수의 '이슬람교' 시민들로 이루어져 있답니다.
북부의 '세르비아' 연방은
동방정교회의 계열인 '세르비아 정교회'가
다수 종교였답니다.
(동방정교회는 러시아와도 결이 통하기에, 세르비아는 러시아로부터 든든한 지윈을 받게됩니다).
'코소보' 지역은
이들의 접경지역에 위치했습니다.
세르비아의 영토였지만, 이 곳에는 당연히
무슬림들도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예전부터,
다수 무슬림들 시민들을 존중해 전통적으로
'자치권' 이 인정되고 있었죠.
그리고, 이 곳은 한때는 <공산주의권의 스위스> 라 불릴 정도로, 다른 종교와 인종들이 잘 어우러져 살아가던 모범적인 지역이었습니다.
하지만, 밀로세비치는 집권하자마자
이 지역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무슬림 시민들에 대한 탄압을 시작합니다.
세르비아 연방에 있던 무슬림 시민들은
모든 공직에서 해고되었고, 그들에게 주어졌던
교육, 의료, 공공혜택 역시 모두 박탈당하게 됩니다.
1995년,
코소보 지역에서 차별에 대항하여
'코소보 해방군' 이 결성되었습니다.
1998년,
이 지역을 순찰하던
'세르비아 경찰' 들이 총격을 받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기회를 기다리던 밀로세비치는
군대를 코소보지역으로 이동시킵니다.
자연스럽게 '코소보해방군' 과 '세르비아군' 의 전쟁이 벌어지며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죠.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전쟁과는 아무 관련 없는
다수의 시민들이 학살당했다는 점입니다.
1998년 3월 ,
세르비아 경찰들의 죽음 이후, 코소보의 작은 마을 스켄데라이(Skenderaj) 에 한 무리의 군인들과 민병대가 들이닥칩니다.
총 65,000 명의 주민들이 사는
아늑한 마을에 젊은 남자들이 끌려 나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 나온 이들 중에서,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저항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총을 든 그들을 따라 묵묵히 밖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멀리 떨어진 공터에 옮겨진 이들 앞에,
커다란 구덩이가 보이고, 이내 총소리와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비극의 날,
이 한 마을에서만 총 1,100명의 사람들이
종교가 다르고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학살당하였습니다. 마을은 파괴되었고 남은 이들은 성폭력에 노출되었습니다.
슬프지만 이러한 학살은 계속됩니다.
1999년 3월 8일,
군복을 입지 않은 세르비아 민병대들이 작은 차에 나눠 타곤, 코소보의 또 다른 마을, 이즈비카(Izbicë) 에 나타납니다.
작은 산골마을을 샅샅이 수색하던 이들은,
146명의 마을 남자들을 끌어내 고문하고 살해합니다. 그리고 남은 이들에게는 어김없는 파괴와 성폭력이 뒤따랐습니다.
남자들은 죽이고, 여자들을 겁탈하는 행위.
'인종청소' 라는 이름으로 다른 민족을 지구 상에서 소멸시켜 버리려는 행위는 조직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이에 대한 내용이 속속 밝혀지고,
증거들이 공개되자 사람들은 경악합니다
(그리고, 세르비아는 이러한 증거들이 모두 조작된 것이라 말하였습니다.... 어째, 지금의 상황과 데자뷰가 일어나는 것은....)
미국의 '데이비드 셰퍼' 전범담당 대사는
이러한 학살로 10만 명 이상의 알바니아계 남성들이 사망했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만듭니다.
이제 세상은 유엔의 역할과
국제법의 기능에 대하여 심각한 의문을 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1993년 한 차례,
이곳에서 벌어진 보스니아 내전으로 인해
유엔의 민낯을 보았기 때문이었죠.
내전 당시,
유엔평화유지군은 치안 유지에서 실패했을 뿐 아니라, 민간인 학살을 방조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유엔평화유지군이 평화지역으로 선포하고 경비하던 '스레브레니차' 의 44,000 명에 이르는 무슬림 거주민 구역에 세르비아 민병대가 쳐들어 옵니다.
그리고, 당연히 이들을 방어해야 할 유엔군은
멀리 떨어져서 현장을 그저 무력하게 지켜보기만 하였습니다
(심지어 신변의 위협을 느낀 네덜란드 평화유지군은, 막사로 도망쳐온 350명의 무슬림 피난민들을 학살자들에게 내어주기까지 하였습니다,
이후 네덜란드 법원은 이 행위에 대하여 희생자들에게 사과하고 국가차원의 배상금을 지급합니다.).
노약자, 아이, 여성을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살해되었습니다.
<스레브레니차 학살> 로 알려진 이 사건으로,
공식적으로 8,753명의 시민들이 사망하였고, 더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아직도 실종 상태에 있습니다. 8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끝났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세상 사람들은 이제,
핵전쟁의 공포가 사라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의 잔인한 전쟁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던 시기에 (가장 문명화된 곳 중 하나라 생각하던) 유럽의 한가운데서, 무려 10년 가까이 광기 어린 학살이 일어납니다.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는 '국제연합' 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습니다.
2001년 12월,
캐나다 정부의 후원아래, '개입과 국가주권에 관한 국제위원회’ (International Commission on Intervention and State Sovereignty: ICISS) 라는 다소 긴 이름의 단체에서는 108 페이지에 이르는 장문의 보고서를 발표합니다.
<The Responsibility to Protect (보호 책임)>.
그동안 각 국가별로 불가침의 영역이라 여겨져 왔던, '국가들의 주권' 이 어느 상황에서까지 존중받아야 할지 (가령 인종청소와 같은 나쁜 짓을 하는 나라의 주권도 존중받을 수 있을지) 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담긴 보고서가 발간된 것이었습니다.
이제 세상의 룰을
다시 점검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