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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 Studio Bleu Jan 21. 2024

호밀밭의 반항아

그럼에도 펜을 들 당신에게


<< 그들이 사랑하는 작품 >>


<< 호밀밭의 반항아 (2017년, 미국) >>

고요한 호수 앞에 군복을 입은 남자들,

멀리 그들 뒤로는 어스름 햇살이 떠오르고 있고,

가운데의 한 병사가 정성스래 무언가를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1951년,

한국 전쟁이 한창이고 세상에선 냉전의 분위기가 가열되기 시작하던 시점.


미국에서는 한 소설이 발간되고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게 되죠. 그 소설의 이름은 <호밀밭의 파수꾼 (The Catcher in the Rye)>.


셀린지의 자전적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 에는 빨간모자를 쓰고 항상 사회에 불만 가득한 젊은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영미문학을 전공하는 이들은 꼭 읽어야 하는 고전이자, 현재까지 6,500만 부 이상이 전 세계인들에게 읽힌 소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소개할 때면 심심찮게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고전' 이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나무위키를 보니 'BBC가 선정한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이라는 소개도 있군요).


지금부터 소개드릴 이 영화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만들어낸 작가

J.D.셀린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939년 뉴욕의 한 클럽.
샴페인이 터지고 사람들은 즐겁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1939년 미국의 한 클럽.

경제대공황의 그림자가 아직 미국 전역을 남아 있지만, 뉴욕은 축제 중.


파티장 문 밖의 어려움을 잊은 듯 모두는 즐겁기만 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인공인 셀린지 역시 분위기에 흠뻑 취해있답니다.


젊기에 그들은, 먹고 마시고 또 춤춥니다.
헤이~저기 보라구 친구, 누가 왔는지를~


젊음의 특권을 즐기고 있는 셀린지.

그런 그의 눈에 누군가가 들어옵니다.

좌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테이블을 차지하하는  여성들.


너무 흔한 스토리일까요? 아무튼 사교계 이니까요~

친구는 이야기합니다.

"핫한 아가씨야. 누군지 궁금하지? '우나 오닐'."


그런 친구에게 셀린지가 물어보죠.

"응? 유진 오닐 선생님과 같은 성을 쓰잖아?"

.

미국 연극 극작가의 시작이라 불리는

'유진 글래드스턴 오닐(Eugene Gladstone O'Neill)'.  셀린지와 같은 작가 지망생이라면 누구나 들어보았을 이름이었죠.


셀린지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 친구는 대답합니다.

"그분 따님이야!"


눈을 떼지 못하는 셀린지에게

친구는 한 마디를 더 얹어 줍니다.

"소문에는 작가들을 좋아한다던데."

좋아, 들어간다~~
잘생긴 젊은 작가, 당연히 우나의 호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친구의 한 마디에 자신만만해진 셀린지,

위스키를 들이키곤, 테이블로 향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소개하죠.


'아버지, 오닐 선생님에게 큰 감명을 받았답니다.

 저는 단편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에요.'


물론 얼굴이 반 이상을 해주는 셀린지에게 당연히 우나는 호감을 보입니다.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며, 셀린지는 일이 잘 되어감을 느끼죠.


하지만, 눈치 없는 셀린지는 너무 한 곳에만 집중을 했나봐요.시선이 고정되어 버린 그는 그만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맙니다. 그녀랑 잘되기 위해서는 주변 친구들을 내편으로 만들어라는 사실을 말이죠.


우나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이야기하는 셀린지를 서슬 퍼렇게 지켜보던 그녀의 친구들이 물어옵니다.

"작가라는데 글이 출간된 적은 있나요?"

갑자기 들어오는 태클에 할 말을 잊은 셀린지.

멋쩍은 웃음만을 짓는 셀린지를 뒤로하고, 우나의 친구들은 그녀를 이끌고 사라져 버립니다.


‘진짜 작가' 들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하고 말이죠.

"너 지금 까인거야"~ 확인 사살을 시켜주는 진정한(?) 친구 녀석.

멀어지는 우나와 친구들을 보며,

셀린지는 생각합니다.


진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출간' 이란 게 필요하구나! 그래, 혼자서 '작가' 라고 떠들어봐야 세상은 알아주지 않는 것을 ...



<< 작가, 그 매력적인 이름 >>


그날 이후,

셀린지에게는 하나의 궁금증이 생깁니다.


그는 글이 쓰고 싶습니다.

하지만..., 나의 글이 다른 누구에게 받아들여 질까?


아직 출간도 하지 못한 작가.

그런 나의 글을 세상에 보여준다는 것은 아직 두렵기만 합니다… 그의 노트에는 습작만이 가득하죠.


우나와의 대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셀린지는 그의 글을 시험해 보기로 합니다. 우선 가장 가까운 사람, 어머니에게 글을 보여주기로 한 것이었죠.


진지하게 글을 읽던 어머니는

셀린지에게 이야기합니다.


아들로서가 아니라 한 작가로서,
나는 너의 글이 너무나 마음에 든단다


내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너는 정말 재능이 있는 거 같아.

그런 어머니에게 놀기만 좋아하던 셀린지는 숨겨왔던 꿈을 이야기합니다. 학교로 가서 정식으로 글쓰는 법을 배우겠노라고 말이죠.


그리고,

조용하던 저녁 저택에서는 난리가 납니다.

아버지는 이야기합니다... "안돼, 이눔아!"

너무나 현실적인 아버지는

어머니의 설득에도 이야기하죠.


"글 따위 써서, 뭐해먹고 살겠단 말이야!"


아버지는 근심 어린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네가 잘못되었을 때, 정말 실망할까봐 그래.

  잘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잘 안될 거야.

  원래 세상이 그래.


  너보다 더 똑똑한 아이들도

  글을 쓴답시고 힘들게 살잖니."


유태인의 신분으로 어릴 적부터 돈을 벌면서 거대한 사업체를 만든 아버지. 그런 아버지는 아들에게 냉혹한 세상에 대하여 말해줍니다. 더해서 더욱 현실성 있는 이야기도 해줍니다.


"들어보렴, 애야.

치즈와 고기 유통업은 우리집의 가업이란다.

이 좋은 돈벌이를 놔두고 왜 글 따위 쓰겠다는 거야?

넌 이 나라의 베이컨 왕이 될 수도 있어!"  

더이상 듣기 힘들었던 어머니가 이야기합니다. "애는 당신 꿈처럼 베이컨 왕이 되지 않을 거예요! 대학을 갈 거고, 글쓰는 법을 배울 거예요!"
"그러니 당신은 애 학비나 준비해요!" .... 동서를 막론하고 엄마의 말은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아들은 처음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됩니다. 어머니의 열성적인 지지와 아버지의 떨떠름한 지원 속에서 말이죠.


그리고, 컬럼비아 대학으로 진학한 셀린지는 두 번째의 행운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나를 알아봐 주는 진정한 은사님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올해 우리 대학에 자리가 많이 남았나 보네, 자네 같은 이가 뽑히고 말이지.
제 글이 왜 문제가 있는 건가요?

재능 넘치지만 뭔가 부족한 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같은 그에게 지도교수

'휘트 버넷' 은 이야기합니다.


"작가의 목소리는 글의 독특함을 만들지. 하지만,

 그 목소리가 이야기를 삼켜버리면 어떻게 될까?


 그런 글들은 자기표현 밖에 되지 않아.

 독자의 감정적 체험을 이끌어낼 순 없는 거지.

 지금 자네의 에세이처럼 말이야."

나는 최대한 지겨운 목소리로 글을 전달하려 했지, 하지만 여러분들은 내용을 관심 있게 들었단다. 왜일까?
이야기 속 사건이 흥미진진했고, 주제가 탄탄하고 극적이었으니까 말이야!
이야기 속 사건들로 독자들을 끌어들이고, 자신만의 목소리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거야, 알겠니?

마지막으로 교수님은 이야기합니다.


"(진짜) 글을 쓰던,

  (자기 글을 도취되어) 자위를 하던

  남은 시간은 알아서 하렴.  

 

  하지만 전자와 후자를 헷갈리지만은 말도록!

  많은 작가들이 그것을 실패하는 것을

  하나님은 아시니 말이야."



<< 글을 쓴다는 것 >>


졸업이 다가오고 주인공은 조급해집니다. "출간은 언제 하게 될까요?"

셀린지는 작가로서 성장해 갑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거부할 수 없는 욕심이 있었죠. 진짜 작가가 되기 위해서 '출간'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저명한 잡지의 심사자 중 한 분인 교수님에게 넌지시 물어봅니다.


"출간은 언제 할 수 있을까요?

  출간을 해야 먹고살죠."

난들 알겠니?  하지만 우리 잡지를 대표해 말씀드립니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그런 그에게 교수님은 이야기합니다.


"이게 작가가 알아야 할 두번째로 중요한 교훈이야.

 거절에 익숙해지는 법."

"음, 첫 번째 거절 편지구나? 액자해서 보관해야겠다."

실력이 는다고 생각한 셀린지지만,

세상은 매몰차게 그의 원고를 밀어냅니다.

교수님에게 찾아간 그는 절망스럽게 물어봅니다.


"이제 어떻게 해요?"


그런 그에게 지도교수는 이야기합니다.


뭘 어떻게 해?  
자넨 작가잖아.

그럼 다른 걸 써야지!

다른 거,
그리고 또 다른 거!

거절의 편지가 쌓여갑니다.
지쳐버린 주인공은 교수님에게 이야기합니다. "저는 재능이 없는 거 같아요."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상심한 셀린지에게 믿었던 교수님이 이야기합니다.


"글쎄 하나만 물어보자.

  너는 왜 이러고 있는 거니?"


셀린지는 대답합니다.

"출간하기 위해서?"


교수님은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아니지. 작가가 되기 위해서지."


그리고. 다시 질문을 합니다.

"글이 왜 쓰고 싶지?"

출간이 작가로 인정받는 길이라 생각하던 셀린지는 당황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부와 명예로운 삶을 위해서,

그리고 나 자신의 성공을 증명하기 위해서.


'출간'이 진짜 작가가 되는 길이라 생각하고

달려오던 주인공은 처음으로 고민하게 됩니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을까?


<< 호밀밭을 걷는 작가들 >>


춥지만 또 더운 이상한 인류세에 겨울을 나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먼저 인사드립니다.

( 늦었지만 멋진 새해 되세요~^^ )


새해 첫 영화리뷰,

조금은 어렵고도 심각한 이름의 영화를 가져와 보았답니다. 이 영화.... 클래식한 제목만을 보고도 패스 하셨을 분들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 같은 제목은 예전에 리뷰드린 <두 교황> 만큼이나 범접하기 힘든 아우라를 만들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새해 첫 영화로 이 영화를 추천드리는 이유는 바로, 글을 쓰는 우리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질문, '글쓰기'  '작가라는 의미에 대해 영화가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이 영화를 돌려보면서 일부러,

아무도 없는 조용한 창가에 앉아 따듯한 커피를 준비하곤, 핸드폰은 꺼놓고 보았어요.


영화 속,

케빈스페이시의 대사 하나하나가

저에게 하는 이야기 같았기 때문이에요.


'글이란 너에게 뭐니??'

'작가란 단어가 너에게 가당키는 한거니?'

'너는 왜 귀중한 시간에 이러고 있는 거니?'


여기 브런치라는 인터넷 공간에 들어온 것 만으로, 우리는 '작가'라는 명칭을 부여받습니다. 생각해 보면 입학심사 같은 운영진의 심사과정 하나를 넘어왔을 뿐인데 말이죠.


이렇게, 나의 글이 '작가' 라는 이름을 달고 웹상에 게시가 되면, 어느 순간 사람들이 찾아와 좋아요를 눌러주고, 그러다가 언젠가 나의 글을 알아봐 주는 이가 찾아와 모셔갈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면 거짓말 이겠죠.


그리고 작가발굴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사이트가 정기적으로 행하는 행사에 응모하고 또 고배를 마시곤 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올라와 있는 많은 후기들을 보면서 생각해 보았답니다. 우리는 작가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구나.


SNS 가 만들어낸 인류세의 또 다른 현상.

교수님이 말하던 작가는 이제 일상적 단어가 되고,

많은 작품들이 나왔다가 잊혀집니다.


‘대량생산’ 에 따라오는 단어, '마케팅'.......

나의 글의 팔릴 구석이 더 중요해지고, 그러기에 출간이 되지 않으면 시장에선 필요가 없는 작가가 된다는 생각이 더욱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건 아닐까요?


녹아내리는 빙하 위의 북극곰이 힘든 이유는,

그냥 있을 수도, 새로운 땅을 찾아서 바다에 뛰어들어 허우적거리기도 어려운 상황 때문일 거예요.


움직이긴 해야는데 나를 반겨주는 땅은 있는 걸까?

그냥 헤엄치다 가라앉는 건 아닐까?

망할 인류세 같으니!


이런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출판사에 다니는 동생 한 명은 이렇게 이야기해 주기도 했답니다.


"오빠, 생각해 봐요.

 같은 책이라도 잘생기고 예쁜 작가한테 사인받고

 싶겠어? 나랑 비슷한 사람한테 받고 싶겠어?


 우리도 글을 보면서 다 체크해요.

 글 말고도 이 사람의 상품성이 얼마나 되는지를.

 출판사가 자선 사업가는 아니잖아요."

조금만 타협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독자들의 시선에 주눅 들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출간만을 바라보다가... 그냥, 이대로 끝나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많은 이들에게 영화는 말합니다.


너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니?


그러기에 영화는 불쾌하지만

또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어요.


수 십 년 전 그들이 했던 고민을 지금도 우린 하고 있구나. 그런데 … 들으면 해답은 뻔한데 왜 불편한 걸까요?

너 정말 할 수 있겠니?

혼란스러워하는 셀린지에게

교수님이 이야기합니다.


"글쓰기에서도 그걸 해야 해.

 너를 글 쓰게 만드는 감정,

 그 자체를 이야기에 넣는 것 말이야.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두렴.

 넌 평생 출판을 하지 못할 수도 있어.

 남은 일생을 거절당하며 살 수도 있을 거야."


넌 평생을 거절당하며 살 수도 있단다.

셀린지에게 다시 교수님이 다시 묻습니다.


“정말 글을 쓰는 일에 너의 평생을 바칠 수 있겠니?
그 어떤 보상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도 말이야.”


만약 그런 각오가 없다면....

그리고 교수님은 마지막 이야기를 합니다.


만약 그 대답이 아니라면,
밖에 나가 다른 할 일을 찾아보면 된단다.

왜냐면 너는
‘진짜 작가(A True Writer)'가 아니니까.


<< 글의 무거움을 느끼다 >> 


노르망디의 삶과 죽음을 셀린지는 경험합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명예를 얻기 위해

'출판' 만을 갈망했던 부잣집 글쟁이 도련님은

처음으로 그의 길을 걸어 나갑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순순히 놓아주진 않죠.


유럽의 전쟁에 다시 미국이 개입하기로 합니다.

셀린지 역시 그 긴 대열에 동참합니다.


총탄이 날아다니는 노르망디 해안의 상륙과 유럽전선의 경험. 사람들이 짐승처럼 서로를 죽이고, 오랜 친구가 그 와중에 옆에서 죽어갑니다.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짧은 시간에 계속되는 강렬한 경험 속에서도

그는 펜을 놓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상 앞에 빨간모자를 쓴 분노 가득한 소년의 이야기를 내어놓습니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입니다.’ 

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그에게 편집자는 이야기합니다.


“저는 솔직히 이해가 안 돼요.

 주인공은 세상에 왜 이렇게 화가 나있나요?

 그는 미친 건가요?”


진짜작가를 꿈꾸던 청년이 경험한,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 세상. 그런 그의 묘사가 불편했던 편집자에게 셀린지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요?

그 길의 끝은 아무도 모른답니다. 다만 그 무게만이 있을 뿐


이 영화를 보곤 저는 만족하면서도

조금은 두려워졌답니다.


나에게 가볍게 부여된 작가라는 이름과

나의 손에 쓰인 글들이 가지는 무게감,

그로 인해 예정될 수많은 거절들과

시험처럼 찾아올 설익은 자만심 때문에 말이에요.


그럼에도 저와 같이 펜을  여러분에게 

조심스럽게 묻고 싶어요.


당신은 어떤 작가인가요?


친애하는 카프스씨,

당신은 자신의 시가 잘되었는지 어떤지 묻고 있습니다. 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물어왔을 겁니다.

당신은 잡지사에
당신의 시를 보내서 다른 시와 비교합니다.
그리고, 어떤 잡지사의 편집부에서 당신의 작품을 돌려보내면 자신감을 잃고 불안해하겠죠.
저는 바랍니다.
그런 짓은 이제.그만두세요.

지금 당신은 밖으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지금, 당신이 해서는 안 될 일이 그것입니다.

아무도 당신에게 조언하거나 도울 수는 없습니다. 그 누구도…

다만,
오직 한 가지 방법이 있을 뿐입니다.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 들어가세요.
당신이 쓰지 않고는 안 되는 이유를 깊이 살피세요.

그 이유가 당신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밤의 가장 조용한 시각에 눈을 뜨고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가?’

만약 이 해답이 긍정적이라면,
‘나는 쓰지 않으면 안 된다’ 는 힘차고 단순한 한 마디로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다면,

그때 당신의 생애를,
그 필연적인 꿈을 쫓아가도록 하세요.

1903년 2월 17일 파리에서,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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