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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istine in island May 29. 2024

먹는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만듭니다.

혼을 잇는 남도음식 명인 열전(1)

한과를 시작으로 30여 년간 지역 농수산물 기반의 가공 식품 제조 
여수농업인생활대학 농산물 가공반 전공, 요리 교육 매진  
2012년 자신의 이름을 걸고 갓김치·간장게장·새우장 판매 시작 
향토음식 후학 양성과 요리 체험장을 구축할 계획


30년 요리 열정, 남도 명장을 만들다   

맛을 안다는 미식가들이 첫번째로 꼽는 국내 여행지는 단연 ‘남도’다. 남도는 전통적으로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다가, 오늘날에 와서는 ‘광주 전남’지역으로 의미가 변화되었다. 특히, 음식 분야에 한정한다면 남도의 의미는 지정학적 위치와 관련된 말로만 보기 어려운, 다른 지역과는 구별되는 ‘문화적 고유성’을 지닌 언어가 된다.  

온난한 기후와 드넓은 평야, 두 면이 바다인 천혜의 환경을 품은 남도는 예로부터 다채로운 음식문화를 발전시켜온 지역이다. 신선한 해산물과 풍족한 제철 재료를 섬세한 조리법으로 연출해 내는 ‘남도음식’은 한국음식 중에서도 유독 특별한 위상을 지녔다. 즉 단순한 향토음식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한식의 한 장르로, 그 이름만으로 미각 세포를 깨우고 풍요로움을 전할 수 있는 힘을 갖춘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식품은 제조방법 등에 있어 문헌의 제약이 많고 지역마다 조리방법에 차이가 존재한다. 사적이나 유형문화재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역의 전통이나 식 관습에 따라 사람에게 전수된다. 이들은 각 지역 음식문화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무형유산이다. 이에 전라남도는 우수한 남도 전통음식의 보존과 솜씨 계승을 위해 ‘남도음식명인’을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남도음식명인의 자격 요건은 까다롭다. 5년 이상 전남 거주자 가운데 남도음식경연대회 5회 이상 참가, 남도음식문화큰잔치 전시·경영 분야 대상 또는 최우수상을 2회 이상 수상한 도민이 대상이다. 

2017년 이래 9인의 명인 선정 상황을 유지해오다가 2023년 네 명을 추가 선정했는데, 그 중 한 명이 바로 여수의 정선심(71세) 명인, 선심전통식품 대표이다.  


“8년을 기다렸어요. ‘남도 명인’은 단순히 음식만을 잘한다고 해서, 상을 많이 탔다 해서 명인이 되지는 않아요. 엄청 어렵고 힘들어요. 외지에서 볼 때는 조금 가볍게 생각하는지 몰라도요.”


지난 30여 년간 여수에서 남도의례음식을 만들어온 그에게 남도 명인의 위상에 대해 물어보니 대단한 자부심을 담아 소감을 전했다. 

명인은 어려서부터 유독 음식 만들기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과자가 귀하던 시절 외할머니가 한과를 만드시는 걸 지켜보면서, 어린 마음에도 ‘언젠가는 꼭 한번 배워보고 싶다’는 바람이 간절했다고 기억한다.  이런 명인의 바람은 결혼 이후에 이뤄졌다. 명인은 결혼 후, 시댁 당숙모님들에게 본격적으로 의례음식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배움에 부족함을 느낀 명인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바지 음식을 하는 지인의 가게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픈 남편을 돌보며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하면서도 아이를 업고 다니며 어깨너머로 꼬박 3년을 배웠다.  이후로도 의례음식에 관한 기술을 배울 수만 있다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서 배웠다. 새로운 음식을 배우면 항상 집으로 돌아와 여러 번 반복해서 기술을 익히고, 거기에 본인의 아이디어를 더해 자신만의 레시피를 완성해 나갔다. 그렇게 간판도 없이 집에서 작게 시작한 일은, 알음알음으로 입소문을 타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 뒤. 한 달에 며칠씩 밤샘 작업을 해야 할 정도로 주문이 밀려들었다.

처음에는 아파트 상가에 가게를 열고 이바지 한과를 판매했는데, 주민들의 입소문을 타고 주문이 밀려들자 2012년 여수시 서 시장 인근에 ‘선심식품’이라는 상호를 내고 본격적인 한과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점차 한과를 찾는 수요의 한계를 느끼면서 여수 지역 향토음식을 지속 생산하고자 전통 식품사업에 뛰어들었다. 여수 대표 작물인 돌산 갓을 이용한 갓김치와 간장게장, 새우장을 제조,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소한의 양념을 고집해 재료 본연의 맛을 제대로 살린 갓김치, 직접 담근 조선간장으로 담근 간장게장, 새우장은 그 맛을 인정받으며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한편, 명인은 사업을 확장하는 도중에도 배움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다. 여수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여성농업인생활대학’에서 농산물 가공반을 전공했고, 이를 통해 여수 농산물을 활용한 요리를 연구·개발하는 과정을 접할 수 있었다. 또,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선별법과 문어를 이용한 천연조미료 개발 등 다양한 가공법·등을 익히기도 했다. 지역 향토음식을 보존하고 유지, 계승하고자 하는 끝없는 노력은 결국 2023년 남도음식 명인 선정으로 이어졌다. 


음식 맛의 비결은 기본 원칙을 꾸준히 지키는 것 

“(손님이 오면) 저를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하고 물어봐요. 그럼 ‘이번에 딸을 여의는데 음식을 어디서 하지’하고 걱정했더니 누가 나를 추천해 주더래요. 그렇게 해서 오신 분들이 많아요. 힘이 들어도 내 음식이 밖에 나가면 이렇게 칭찬을 받는구나, 사람들한테 믿음을 주는구나 생각하면 기쁘지요.”

명인은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되고 행복한 순간이라고 한다. 이야기하는 내내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그에게‘신뢰’는, 한달에 며칠씩 밤샘을 할 정도로 고된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왔다. 

명인은 음식을 미리 만들어 두는 법이 없다. 새벽에 나가야 하는 음식이면 밤을 새워서라도 손님에게 전달하기 직전에 완성되도록 시간을 맞춘다. 미리 만들어 둔 음식은 맛이 떨어지기 마련이기에 항상 갓 만든 음식을 손님에게 드린다. 명인의 음식은 만드는 이가 편한 음식이 아닌 먹는 이를 배려한 음식이다.

하루 일과는 매일 아침 6시 전에 일어나 인근에 있는 여수 서시장을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좋은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재료를 고르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런 만큼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를 직접 선택하는 것이 원칙이기도 하다. 전국으로 좋은 재료를 찾아다니기도 하지만 거래처 역시 최상품의 재료가 들어오면 그에게 먼저 연락을 해온다고 한다. 20년 이상 거래처를 바꾸지도 않고 값도 깎은 적 없는 최우수 고객이기 때문이다. 제철 재료는 최적의 시기에 가장 좋은 것들로 구해서 보관해두고 사용한다. 명인의 음식 비법이 무엇인지 물으니 ‘이러한 단순한 원칙을 꾸준히 지키는 것’이라고 한다. 조금 뻔한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묵직했다. 느긋하면서 자신을 꾸밀 줄 모르는 성품이 고스란히 음식에 담겨있는 듯했다.


명인의 맛, 여수 정통 의례음식

사람은 태어나서 혼인하고, 죽고, 제사를 받아먹는다. 한국인들은 삶의 중요한 기점 마다 이를 기념하는 통과의례를 중시했다. 한국사회에서는 음식을 매개하지 않은 통과의례를 거의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의례를 통해 이루어지는 독특한 음식문화가 유난히 발달했다. 각 의식에 부합되는 음식이 가지는 의미가 오랜 전통과 함께 존재한다.

의례의 형식은 전국적으로 유사하지만 남도의례음식은 솜씨의 미학이 가지는 품격이 뛰어나며 유독 향토색이 짙은 편이다. 남도의례음식은 풍부한 지역 특산물로 음식의 가짓수와 맛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데, 각 지역별로 그 차이가 뚜렷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은 실정이다. 안동 쪽 종가나 조선시대 궁중음식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만, 2012년에 출간된 남도의례음식 상차림 관련 서적에서도 지역별 특색에 대한 내용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남도의례음식은 투박해도 신선하고 맛있는 게 중요해요. 특히, 여수의례음식은 해물 종류가 올라가야 돼요. 신선한 해물로만 상을 차리면 ‘아주 잘 차렸다’고 해요. 또 마른 음식보다는 진 음식이 많고, 맛은 좀 강해요. 아마 바닷가에 살아서 그런가 짠 기가 강하죠.”

여수는 삼면이 바다인 청정 해역으로 다양한 해산물을 쉽게 얻을 수 있고 울창한 산림지역에서는 각종 산채들이 풍부해 다양한 음식이 발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자연환경의 영향으로 여수의례음식은 신선한 해산물과 어류가 주연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이번 취재에) 명인이 선보인 음식은 ‘문어오림’,‘문어 강정’,‘바지락 꼬지’와 ‘금풍생이 구이’로, 이들 모두 대표적인 여수의례음식이다. 여수에서는 문어와 바지락 꼬지가 올라가지 않으면 의례 상차림으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한다. 특히 바지락 꼬지는 여수 지역 고유의 향토음식으로, 바지락 살을 꼬지에 하나하나 끼워 바닷바람에 말렸다가 찜통에 살짝 쪄서 간장 양념장에 졸여낸다. 쫄깃한 식감과 달콤짭짤한 맛은 향토음식임에도 상당히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군평선이’ 혹은 ‘꽃돔’이라고도 불리는 ‘금풍생이’는 부드러운 식감과 담백하면서도 감칠맛이 일품으로, 남편에게는 아까워서 주지 않고 샛서방에게만 몰래 준다고 해서 ‘샛서방고기’라고도 부른다. 이순신 장군도 최고로 꼽은 이 생선은 여수에서는 굴비보다 귀한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여수 의례상에는 다른 지방과는 달리 생선찜 대신 금풍생이 구이를 올리는데, 명인은 수분을 가두는 방식으로 하나하나 정성껏 구워 풍미를 더했다.

‘문어 강정’은 여수의례음식인 ‘피문어찜’을 그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피문어찜은 여수 지방의 고급 문어 요리로 살아있는 문어를 깨끗이 씻어 손질해 미지근한 물에 2시간 정도 불린 뒤 양념장에 하룻밤 재웠다가 쪄낸다. 명인의 문어 강정은 문어를 데쳐 수분을 바람에 날린 뒤 양념장에 졸여내는 방식으로, 문어의 살 깊숙이 간간할 정도로 양념장이 배도록 했다.

예로부터 문어는 제사나 잔치를 치를 때 꼭 필요한 어물로 말린 문어를 칼로 오려서 고배상을 장식했다. 이를‘문어오림’혹은 한자어로 ‘문어조’라고 했다. 오려서 만든 모양은 꽃부터 나뭇잎, 나비, 새, 공작, 봉황까지 굉장히 다양한데 이는 모두 축원의 의미를 담고 있다. 문어를 오리기 전에 물을 축인 짚 안에 문어를 하룻밤 묻어두고 오리기 쉽게 부드러운 상태로 만든다. 섬세한 표현을 위해서 가위보다는 칼을 사용하며, 문어 한 마리를 오리는 데에는 꼬박 사흘이 걸린다. 이처럼 많은 시간과 기술력이 요구되는 음식으로 남도 지방에서는 문어 삶은 것과 함께 제사상에 오르는 주요 품목 중 하나였다. 

남도의례음식 중 해산물·포 분야의 명인이 만든 문어 강정 및 문어포는 그 명성이 자자해 폐백이나 이바지를 위한 음식으로 다른 지방에서까지 주문이 들어온다고 한다. 


향토음식 계승을 위한 교육에 매진할 때

돈보다는 아직도 공부가 더 목마르다는 명인은, 남도음식명인 선정 이후 겹치기를 할 정도로 밀려들던 주문량을 한달에 서너 번으로 줄이고 기술개발과 전수 교육에 힘쓰고 있다. 이러한 소신은 한식 관련 인문서적들이 빼곡히 꽂혀 있던 명인의 소박한 책장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최근 그의 관심사는 지역의 농산물을 상품화하고 여수 향토음식을 타 지역에 알리기 위해 자신이 30여년 간 연마한 기술을 나누는 일이다. 이를 위해 기술센터 등에서 여성 농업인 대상 강의를 하며 농산물 상품화를 통해 판매 활로를 찾도록 돕고, 일반인에게는 조리법이나 조리 기술의 전달 대신 바른 먹거리에 대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지 물으니 향후 지역 관광 문화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여수의례음식 체험관을 열고 싶어요. 많은 사람이 찾아와 여수 의례음식을 먹고 배워보고, 직접 만들어 가져가고 하는. 여수에 여행 와서 향토음식을 체험한 뒤 푸짐하게 챙겨가는 문화 체험 공간을 만들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명인의 꿈을 통해 여수의례음식은 여수 향토음식으로, 여수의 전통문화로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시도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이 남도의례음식의 토착성과 풍속에 주목하고, 남도음식문화의 무한한 가능성이 국내외로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음식은 인류의 삶과 문화와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가져왔다. 특히 전통음식은 지리환경적인 여건으로 인하여 지역의 특산물과 독특한 조리 방식이 반영된 고유한 문화유산이다. 국가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전승되는 한식뿐 아니라 지역 전통음식의 특성과 다양성이 존중되고 관리되어야 하는 이유다. 
지역의 음식 유산을 보존함에 있어서 가장 중시되어야 하는 것은 음식 제조기술이다. 이는 뛰어난 제조법을 구사할 수 있는 지역 전통음식 명인들을 통해 계승 보존될 수 있다. 지역의 자연환경과 사회문화적 배경을 토대로 탄생한 전통음식과 조리 기술, 이를 계승하는 사람을 발굴 보호하는 것은 음식 유산이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지속 가능한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방안일 것이다.

내일신문 24.05.29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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