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6년 미국 독립 전, 아메리카 신대륙은 누구에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심지어 신분세탁도 가능한 기회의 땅이었다. 1683년, 25살의 프랑스 청년이 아버지의 파산으로 진 빚을 피해 신대륙으로 도망쳐 나왔다. 거기서 그는 인디언 말을 배워 모피와 알코올 장사를 했다. 29살에 결혼을 하면서 새로 만드는 신분증에 그는 카디야(Cadillac; 영어 발음으로는 캐딜락)란 성(姓)을 기입하면서 프랑스 귀족 출신이라 주장하였다. 그후 퀘벡 소재 프랑스 식민지 정부의 요청으로 오대호 일대를 탐험하고, 1701년 디트로이트(Detroit)를 발견하여 도시를 개척했다. 그래서 미국 자동차 공업의 메카인, 지금은 러스트 벨트(Rust Belt)이지만, 디트로이트 시내 공원에 그의 동상이 서있다. 말년에 그는 프랑스로 소환되어 인디언에게 모피와 술을 팔았다는 죄로 바스티유 감옥에 투옥되었다. 출소 후 그는 고향에서 영면했다. 그러나 그가 주장했던 귀족 성과 가문의 문장(紋章)은 1902년 고급 자동차 브랜드와 로고로서 디트로이트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캐딜락이다.
현존하는 한국 최고(最古)의 차인 순종 황제의 어차(御車)와 이승만 대통령이 이용한 한국 최초의 방탄차 모두 캐딜락이다. 1930년대 대공황 여파로 한때 캐딜락의 판매가 부진하였다. 판매 대책회의에서 캐딜락 부문장이 물었다. “캐딜락의 경쟁 상대가 누구 입니까?” 그는 캐딜락의 경쟁 상대는 BMW 나 Benz가 아니라 다이아몬드나 밍크코트 같은 사치품이라면서 캐딜락을 더욱 고급스럽고 우아하게 만들 것을 지시하였다. 그 후 캐딜락은 미국 럭셔리 브랜드의 상징으로서 상류 사회의 인기를 끌며 성장했다.
1956년까지 34년간 GM을 이끈 알프레드 슬로안은 서민층부터 상류층까지 다양한 브랜드로써 공략했다. 포천지는 “보통 사람들을 위해서는 쉐보레, 가난하지만 자존심 강한 사람들을 위한 폰티악, 삶은 여유롭지만 신중한 사람들을 위한 올즈모빌, 정치적 야망을 가진 사람을 위한 뷰익 그리고 최고급만을 추구하는 상류층을 겨냥한 캐딜락”으로 시장을 분리 통치(Divide and Rule) 한다고 묘사했다. GM은 1985년까지 시장점유율 40~50%로 부동의 1위였다. 윌슨(Charles E. Wilson)은 GM의 CEO였다가 1953년 미국 국방부장관에 임명된 사람이다. 그는 상원 청문회에서 “미국에 좋은 것은 GM에게도 좋고, 그 반대 역시 같다(What was good for our country was good for General Motors, and vice versa)”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와전되어 “GM에 좋은 것이 미국에도 좋다(What's good for GM is good for the country)"라고 자주 보도되면서 GM은 오만방자한 기업으로 낙인 찍혀 나가고 있었다. 거칠 것 없던 GM의 기세는 1980년대부터는 꺾이기 시작했다.
도요타는 GM이 포드를 누르고 최강자로 떠올랐을 때, 나고야 인근에서 방직 공장을 하던 도요타 기이치로(豊田喜一郞)에 의해 1937년 창립되었다. 도요타 기이치로는 헨리 포드의 창의적 마인드와 GM알프레드 슬로안의 경영 마인드를 겸비한 타고난 기업가였다. 그는 아버지 방직 공장에서 일하면서 취득한 특허를 영국 회사에 팔고 그 자금으로 자동차 공장을 차린 것이다. 그는 미국 방문 중 슈퍼마켓에 간 적이 있다. 슈퍼마켓에 진열된 상품이 다 떨어질 시점에 즉각 새로운 물건이 투입되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어 도요타 생산방식(TPS; Toyota Production System)의 대명사인 JIT(Just-In Time; 적기공급생산)를 창안해 냈다. 도요타는 생산방식에서는 포드의 컨베이어 시스템(포디즘)을 개선하여 TPS를 창의적으로 만들어 적용했고, 판매에서는 GM을 벤치마킹하여 다양한 판매망과 다품종, 부품공용화, 국내 시장 중시 그리고 렉서스 같은 럭셔리 브랜드 전략을 구사하며 성장하였다.
포디즘(Fordism)의 컨셉은 단순하다. 소품종 생산으로 작업을 단순화하고, 자동화하여 대량으로 만들면 생산원가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포드와는 달리 다품종 전략을 세운 도요타는 일곱 가지 낭비를 없애서 생산원가를 떨어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창업 당대로부터 내려오는 DNA적 사고이고, 그것이 체체계화 된 것이 TPS이다. 일곱 가지 낭비는 초과생산, 지나친 작업 대기 시간, 과도한 운반, 가공 지체, 과다 재고, 불필요한 동작 그리고 불량품을 말한다. TPS, JIT 그리고 가이젠(KAIZEN; 개선)의 최종 목표는 이런 7대 낭비를 없애는 데 있다.
도요타는 포드의 자동화를 받아들였지만, 그 개념은 약간 다르다. 자동화란 기계에 인간의 지혜를 심어 놓는 것이므로 불량이 발생할 우려가 있거나 문제가 생기면 기계 스스로 멈추거나 문제를 해결해야 진정한 자동화라는 것이 도요타의 개념이다. 만일 기계가 스스로 멈추지 못한다면 인간이 개입해서 기계나 생산라인을 멈추게 하여 불량품이 후공정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목적에서 설치한 것이 ‘안돈의 끈’이다. 일본어로 ‘안돈’은 들고 다니는 행등(行燈)이나 안내 등(燈)을 의미하는 데, 생산 라인에서는 가동 상태를 보여주는 자동 현황판이다. 만일 작업자가 품질이나 안전 문제를 발견하면 즉시 안돈의 끈을 잡아당겨 라인을 세울 수 있고, 그것을 장려하는 것이 도요타의 문화이다. 따라서 작업자의 개입이라는 개념에서 도요타에서는 자동화를 ‘自動化’라 쓰지 않고, 움직일 동(動) 자에 사람 인(人) 변을 추가한 동(働)자를 써서 ‘自 働 化(자동화)’라 쓴다.
도요타 생산방식(TPS)이 무엇인지 간단히 설명하라고 하면 도요타 직원조차도 핵심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그 일부만을 말한다. 예를 들면, 재고를 줄이는 생산 방식, 개선 방식, 간판을 사용하는 생산 방식, 문제 해결 방식 또는 혁신 방식이라고 제 각각 말한다. ‘낭비적 요소를 혁신적으로 개선하여 효율성을 높이는 생산방식’이라고 추상적으로 정의되는 TPS에 대해 많은 기업들이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했다. 따라서 도요타는 자신의 비결을 외부에서 알 수 없도록 연막 전술을 폈다. 그들은 TPS를 ‘간판 방식’이라 불러 외부 사람들의 혼란을 야기했다. ‘간판’은 TPS에서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1980년대 초 오일 쇼크 이후, 연비 좋은 일본차가 미국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하였다. 반면 휘발유를 벌컥벌컥 들이마시는 자동차라는 뜻의 Gas-Guzzler를 생산하는 Big 3 메이커(GM, 포드, 크라이슬러)는 엄청난 적자를 기록하며 대량 해고에 들어갔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Big 3와 전미자동차노조UAW는 일본 자동차회사의 미국 투자를 요구하는 한편, 도대체 TPS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했다. 그들은 MIT 교수를 주축으로 하여 IMVP(International Motor Vehicle Program)를 구성하고, 일본 자동차회사로 보내 도요타의 생산방식을 조사하였다. 그 중의 한 명이 TPS의 핵심을 정리하여 ‘린 생산방식(Lean Production System)’이라고 논문에서 발표했다. 이는 인력, 생산 설비 등은 최대한 군살없이 호리호리하게 즉, Lean 하게 유지하면서 생산 효율성을 높인다는 의미에서 TPS와 같다.
TPS 이든 Lean이든 그 용어에 관계없이 전 세계 유수의 제조기업들이 이미 50년 전부터 그것을 배우고 각각의 사업장에 적용했다. 그러나 어느 기업도 도요타만큼 효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우리가 다 아는 말에 있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는 건 아니다.” 도요타 임직원은 강력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애사심이 강하다. 원만한 노사 문화의 정착으로 60년간 무파업을 자랑하며, 임직원의 자발적 제안 건수는 연간 65만 건을 넘고 그 중 90% 이상이 채택된다. 도요타 사람들은 마른 수건을 또 짜듯이 문제를 찾아내고 그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잠을 못 자는 성격이다. 도요타의 혼은 개선 정신이고 한번 개선한 것은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지 않도록 시스템화 한다. 또 각 임직원은 사실을 확인하는 현장, 현물주의가 철저하게 몸에 배어 있다.
중국 회수(淮水) 이남의 감귤(柑橘) 나무에서는 귤이 열리지만, 그 강 이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열린다는 고사성어가 귤화위지(橘化爲枳)이다. 토요타 ‘안돈의 끈’을 미국 GM 공장에 설치했더니 시도 때도 없이 막 잡아당기는 바람에 오히려 생산성이 추락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 회사에도 ‘안돈의 끈’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여차하면, 특히 노사협상 기간 중에는 회사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으니 귤화위지의 한탄이 저절로 나온다. 현재 부동의 세계 1위 자동차 메이커 도요타는 이 달 창사 후 88년만에 해외 생산분 포함 누적 생산 3억대를 달성했다고 뉴스에 보도되었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소프트랜더스㈜ 고문/ 전 현대자동차 중남미권역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