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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의환 Mar 11. 2024

슬로안이 누구인데 헨리 포드를 이겼지?


유명한 이야기이지만 들으면 누구나 놀라는 사실이 있다. 지난 150여년 동안 인류의 평균수명 향상에 기여한 의학적 진보를 꼽으라 하면 단연 1등은 1928년 영국의 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이 푸른곰팡이에서 우연히 발견한 항생제 페니실린이다. 그 외에도 마취제와 백신 그리고 DNA 구조 해독으로 인간의 평균수명은 80세까지 연장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의학적 업적이다. 이런 의학적 업적을 능가하며 실질적인 기여를 한 것은 상하수도 시스템이라고 학자들은 꼽는다. 그 덕분에 1900년대까지 수인성 전염병이던 이질, 장티푸스 그리고 콜레라의 창궐을 이제는 예방할 수 있게 되었다. 1860년대까지 런던의 템즈강은 참을 수 없는 악취의 발원지였다. 그 후 하수도와 정화시설의 완비로 악취와 콜레라 등 수인성 전염병을 차단할 수 있게 되었다.

하수도가 정비되던 시기인 1860년대에 내연기관이 발명되었고, 이를 이용하여 1890년대에는 가솔린 엔진의 자동차가 상용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90년대 런던 시내에는 약 30만 마리의 말(馬)이, 뉴욕 시에는 최소 10만 마리의 말이 운송수단으로서 일하고 있었다. 뉴욕의 경우, 말들이 거리에 쏟아내는 분뇨의 양은 일 1,250톤이 넘었고, 하루에도 거의 백마리의 말이 거리에서 인플루엔자와 과로로 쓰러져 죽었다. 말의 사체를 절단하여 치우기 전까지 뉴욕의 하늘에는 악취가 진동했고, 땅에는 분뇨가 걸쭉한 수프처럼 흐느적거리며 흘러 다녔다. 19세기 말 뉴욕의 영아 사망률이 70%를 넘은 것은 이런 비위생적 환경 탓도 있었다. 자동차가 보급되기 시작했지만 말에 대한 의존도는 줄지 않아서 당시 미국에는 인구 4명 당 말 한 마리가 있었다. 

미국 사회의 말에 대한 의존도를 급격히 줄여주고,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건강을 향상시키는데 크게 공헌한 이는 자동차 왕 헨리 포드(Henry Ford)이다. 포드자동차의 설립자이며, 컨베이어 시스템에 의한 값싼 자동차의 대량생산을 이뤄낸 그는 도시에서 말을 몰아 내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셈이다. 포드는 1863년 디트로이트 인근의 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엔지니어로서 내연기관을 다루며 경험을 쌓은 그는 1903년 포드자동차회사를 세웠다. 그해 한 투자자에게 말한 그의 신념은 이렇다. “가장 경제적으로 자동차를 만든다는 것은 똑 같은 모양, 색, 크기의 유니버설한 자동차를 계속하여 생산하는 것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1909년 ‘T-Model’을 개발한 원천적 철학이었다. 이 모델은 18년 동안 1,500만대가 판매되어 미국의 대표적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포드는 매우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이고 실험적이며 창의력이 강했다. 단점은 독선적이고 고집이 센 것이었다. 1913년 미국 북부 공장들은 생산직의 높은 이직률  때문에 고민이었다. 이에 포드는 당시 평균임금의 두배인 일당 5달러를 제시하여 구름과 같은 지원자를 받아 공장을 안정적으로 운영하였다. 당시 월스트리트 저널지는 이를 ‘경제적 범죄’라 비난하였으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파격적 임금 인상은 결과적으로 포드 직원들의 단결과 사기 그리고 그의 인기를 높였다. 

오늘날 포디즘(Fordism)이라고 불리우는, 컨베이어 벨트에 차체를 얹어 흐르는 차체에 부품을 하나씩 조립하는 혁신적 생산방식은 헨리 포드가 시카고의 소 도축 공장에서 힌트를 받은 것이다. 도축된 소는 체인블록에 매달린 채 천장의 레일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면서 부위별로 해체되어 나갔다. 그것을 보고 그 흐름을 거꾸로 하면 자동차를 빠르고 값싸게 조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실천에 옮긴 것이다. 에디슨의 발명품과 포디즘은 대량생산을 가능케 한 ‘2차 산업혁명’이라고도 일컬어진다. 이렇게 유니버설한 T-Model은 타사 경쟁 차종에 비해 가격은 반값 수준이었다. 당시 미국 가구당 연평균 소득이 600달러였는데 850달러에 공급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가격파괴’였다. 그 후에도 지속된 대량생산의 효과로 대당 290달러까지 낮출 수 있었다. 그 가격에서 포드의 신차 판매 수익률은 고작 5% 정도였지만, 누적된 자동차 운행대수(UIO; Units in Operation)가 많아진 덕분에 부품판매에서 추가 수익을 낼 수 있었다.

T-Model의 성공으로 촉발된 자동차의 대중화는 전국에 모텔(Motel)과 Drive-in Theater의 신설과 확산을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1900년대 초, 전국적인 신드롬이었던 ‘대기업에 대한 혐오감’을 불식하는데도 일조했다. 1920년대 초 중반 T-Model은 10분에 한 대씩 생산되어 시장점유율 56%를 차지했다. 신차 두 대 중 하나는 T-Model이었으나 경쟁사 GM은 12% 정도였으니 포드가 압도적으로 GM을 누르고 있었다. 그런 배경에서 행해진 당시 여론 조사의 결과를 보면 포드의 인기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 누구냐”라는 설문에 예수, 나폴레옹 다음으로 헨리 포드가 뽑혔다.

GM은 헨리 포드보다 두 살 많은 윌리암 듀랑트(William C. Durant)에 의해 1908년 창립되었다. 마차 사업에서 큰 돈을 벌고 자동차로 뛰어든 그는 자동차 산업은 먹고 먹히는 생태계라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사업가였다. 그래서 미래의 기술과 경쟁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여러 자동차회사를 흡수하며 몸집을 불려 나갔다. 뷰익(Buick), 올즈모빌(Oldsmobile), 캐딜락(Cadillac) 그리고 쉬보레(Chevrolet) 등이 그가 인수한 자동차 브랜드이다. 그러나 그는 1920년 주가조작 등의 혐의로 회사에서 축출되었고, 듀퐁(Du Pont)이 GM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이때부터 GM은 포드를 추격하기 위한 내부 조직 다지기에 들어갔다. 

1923년, 듀퐁은 GM의 사장으로 MIT 출신인 알프레드 슬로안(Alfred Sloan)을 임명했다. 그는 창업보다도 수성(守城)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훌륭한 혁신가이지만 잘 알려지지는 않은 경영자이다. 여러 브랜드의 연합군이며 덩치만 큰 GM 조직의 약점을 그는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소 단위 그룹으로 조직을 쪼개고, 독자적으로 창의성을 발휘하여 경영하도록 책임을 주고, 중앙 통제는 최소화하여 하부조직의 세세한 의사결정에는 간섭하지 않도록 조직혁신을 단행하였다. 즉, 책임의 분산과 통제의 집중화를 결합하여 균형 잡힌 해법을 실행한 것이다. 이로써 그는 Ford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동시에 GM을 미국 기업사의 위대한 승리자로 만든 혁신가가 된 것이다. 후일 MIT에는 ‘슬로안 경영대학(Sloan School of Management)’이 설립되어 그의 경영철학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헨리 포드는 60세가 된 1923년부터 이순(耳順)의 경지가 아니라 남의 말을 전혀 안 듣는 완고한 고집쟁이로 변했다. 그것은 포드의 비극이었다. GM이 슬로안의 리더십 하에 1923년부터 매년 모델을 바꾸며 제품과 디자인의 다양성을 추구할 때에도 포드는 T-model이 영원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결국 소비자들은 구형 T-Model에서 이탈하기 시작했고, 1927년 포드의 시장점유울이 10%로 떨어지니 겨우 정신 차리고 신차 개발의 필요성을 느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또 포드가 완고하게 변화를 거부하는 동안 GM은 할부회사를 세워 고객에게 금융까지 제공하면서 시장을 넓혀갔다. 결국 포드의 아성은 무너졌고, 1925년부터 GM은 포드를 완전 압도하였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같은 포드와 GM의 대결에서 GM의 짜릿한 역전승은 지금도 많은 교훈을 시사한다. 특히 최고경영자의 혁신을 거부하는 완고함은 조직을 나락으로 이끄는 최악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한번 성공한 T-model만을 고집하며 ‘시장의 세분화’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 안 한 경직성은 토끼의 자만심이다. 반면 승자인 슬로안이 가진 균형 잡힌 조직관리론의 바탕이 되는 ‘윈윈 정신’은 요즘 ‘이해관계자 경영’에서 다시 한번 새겨볼 만하다. 그는 말했다. “나는 모든 관계자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이라면 어떠한 비즈니스 관계에도 관심이 없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소프트랜더스㈜ 고문/ 전 현대자동차 중남미권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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