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아메리카 대륙의 역사는 알고 보면 참 흥미롭다. 신대륙 발견 2년 후인 1494년, 해양패권과 식민지 확보에 경쟁하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국경도시에서 만나 로마 교황의 중재 아래 전 세계를 둘로 나누어 먹자는 영토조약을 맺었다. 대서양의 중앙을 남북으로 가르는 서경 43도 37분을 기준으로 동쪽의 땅은 포르투갈이, 서쪽의 땅은 스페인이 가진다는 것이 조약의 내용이다. 그 조약에 따르면 브라질 동쪽부터 아프리카, 일본에 이르는 땅이 포르투갈 것이고 나머지는 스페인 영토인 셈이다. 엄연히 주인이 있는데도 전세계 땅의 주인인양 맺은 조약은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기 짝이 없다. 그로 인해 브라질을 제외한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 광대한 스페인 언어권이 생겼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중남미 식민지 통치는 안으로부터의 불만으로 인해 와해되기 시작했다.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인해 유럽이 어수선한 틈을 타, 1810년대부터 중남미에 독립의 바람이 불었다. 1822년 브라질 왕 동 빼드로(Dom Pedro)1세는 본국의 부왕(父王)에 항명하여 독립을 선언해 버렸다. 스페인 땅에서는 아르헨티나 출신 산 마틴(San Martin)과 베네수엘라 출신 시몬 볼리바르(Simon Volivar)가 각국의 독립을 주도했다. 당시 남미 식민지에서 태어난 백인을 ‘크리오요(Criollo)’라 불렀는데, 그들은 홍길동처럼 서자 취급을 받았으므로 본국의 차별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산 마틴과 시몬 볼리바르는 크리오요 출신이었고 미국의 독립에 자극 받은 자유주의자였다. 산 마틴은 아르헨티나, 칠레 그리고 페루를 독립시켰고, 시몬 볼리바르는 나머지 국가들의 독립을 쟁취하여 남미의 혁명투사 해방자가 되었다. 베네수엘라는 국호 중간에 볼리바르의 이름을 넣었고, 볼리비아는 아예 볼리바르의 이름을 따 국호로 삼았다.
남북으로 약 7,000km 뻗은 세계 최장의 안데스산맥 남쪽에는 칠레, 볼리비아 그리고 아르헨티나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삼각지대가 있다. 그 지역이 볼리비아에게는 비극과 희망이 교차하는 땅이다. 원래 볼리비아는 그곳에 태평양으로 나가는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서 생산되는 화약과 비료의 원료인 초석 때문에 터진 칠레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그 땅을 잃고, 가난한 내륙국가로 전락하였다. 볼리비아가 칠레에게 빼앗긴 땅에는 초석 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의 구리 광산이 있어 볼리비아 사람들을 배 아프게 하고 있다.
그러나 다시 희망이 생겼다. 세계적 관광 명소인 볼리비아의 광대한 소금 호수 우유니에 최소 100년 이상 채굴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의 리튬이 녹아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로 인해 볼리비아가 사우디아라비아처럼 하루 아침에 돈방석에 앉을 수 있다는 점에서 2009년부터 뉴욕 타임스 등 세계적 언론들이 우유니 호수를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다. 볼리비아를 창조한 것은 신의 실수라고 중남미 사람들은 농담한다. 1825년 독립 후 200여회의 쿠데타와 반 쿠테타로 늘 정정이 불안하고 가난한 나라에 리튬과 같이 희귀한 광물자원을 신이 과도하게 주었다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주변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소금 호수에도 전기자동차의 배터리 원료인 리튬이 풍부하게 녹아 있다.
리튬의 나이는 우주와 같다. 140억년 전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했다. 빅뱅 후 우주는 두 가지 가벼운 원소로 99% 채워졌다. 수소가 74%이고 헬륨이 25%이다. 이 두 원소는 응축하고 핵융합 하여 태양을 만들었고, 상호작용하여 그 밖의 원소들을 만들었으니 산소, 탄소, 납, 금 같은 원소들이 탄생했다. 리튬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수소, 헬륨과 함께 우주 최고(最古)의 물질로 빅뱅 이후 최초 1분 안에 생성된 것이니 주기율표 3번쨰 원소이다. 금속이지만 밀도는 물의 절반이고, 아주 쉽게 타 원소와 반응하기 때문에 원소의 형태로는 존재하지 않고 점토나 돌과 같은 것에 화합물로 존재한다. 인류는 리튬을 따로 분리하여 배터리 원료 뿐만 아니라 천식과 정신병 치료제로도 활용하고 있다.
1991년 리튬이온 배터리가 노트북 컴퓨터와 핸드폰 등에 사용되면서 2차전지(Rechargeable Battery)의 대명사처럼 쓰인다. 현재 전기자동차의 배터리에는 리튬을 사용하는 방식이 대세이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양극재, 음극재, 전해액 그리고 분리막의 4가지 요소로 구성되는데, 양극재가 배터리의 성능인 주행거리와 출력을 결정하는 것이다. 양극의 리튬이온이 음극으로 이동하면 배터리가 충전되고, 반대로 양극으로 이동하면 방전되며 출력이 일어나는 원리이다. 양극재의 원료로는 니켈, 코발트, 망간, 인산, 철, 알루미늄 그리고 리튬인데 그 중 보통 3~4가지 금속 원료를 적절히 조합하여 안정성과 성능을 확보하며 배터리를 만든다. 이 양극재의 코스트가 전체 배터리 제조비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므로 배터리 업체들은 국제적으로 그 원료의 확보에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전기자동차 가격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원가 비율은 현재 약 40%이다. 이 비중은 기술개발로써 점차 축소되어야 하고, 아울러 배터리의 수명 연장, 고속 충전기술 개량, 충전 인프라 확충 그리고 고용량화는 전기차의 보급 확대를 위한 기술적, 사회적 선결과제이다. 거기에 리튬과 코발트 등 배터리 원재료의 수급 불균형 또한 전동화(Electrification)에서 해결해야 할 난제이다. 최근 멕시코는 중국에 주었던 리튬 채굴권을 환수하여 국영화 했다. 미국과 중국의 배터리 전쟁통에 멕시코는 북미자유무역조약국의 일원으로서 내린 어쩔 수 없는 조치이다.
흔히 ‘하얀 석유’라 불리는 리튬의 수요는 매년 급증하고 있지만 호주, 칠레, 아르헨티나, 멕시코 그리고 중국이 아직은 그 생산의 90% 이상을 차지하니 문제이다. 볼리비아 유유니 소금호수의 리튬은 아직 크게 개발되지 않고 있다. 공급 부족으로 가격 또한 천정부지로 치솟다가 현재는 잠시 숨 고르고 있지만, 수급 불안은 언제든지 다시 전기차 보급 확대에 브레이크가 될 수 있다. 또 생산된 리튬 함유 원석의 65% 이상이 중국으로 흘러가 거기서 고순도로 제련, 분리되어 주요국에 공급된다. 이에 대해 미국이 견제하고자 들고 나온 것이 북미산 원료를 쓴 배터리에만 보조금을 준다는 인플레이션방지법(IRA)이다.
독일은 아직 디젤자동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세계 각국은 내연기관 퇴출 시간표를 이미 발표한 상태이다. 전기차를 강력하게 추진하는 기저에는 대기오염과 기후 온난화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감대 위에 생긴 자동차산업의 혁명적 트렌드는 ‘CASE’이다. 이는 자동차가 하나의 고속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양방향으로 통신하는 ‘Connected Vehicle’, 자율주행차의 상용화라는 ‘Autonomous Vehicle’, 공유경제의 확산으로 소유가 아닌 이용의 대상이라는 ‘Shared Vehicle’ 그리고 완전 전동화라는 ‘Electrification’의 머리 글자 조합이다. 현재 CASE는 기존 자동차업계와 빅테크 기업들에게는 ‘모빌리티 혁명’을 의미하고 있다.
전통적 소비 패러다임에서 자동차는 소유의 대상이고 직접 운전하는 객체이다. 이를 ‘POV(개인소유차; Personally Owned Vehicle)’라 표현한다면, 이에 대조되는 개념이 MaaS(Mobility as a Service)이다. 이는 자동차산업이 POV를 제조, 판매하는 비즈니스에서 벗어나, 이동성 즉 모빌리티를 제공하는 플랫폼 서비스산업으로 이전되고 있다고 보면서, 그 개념을 나타내는 새로운 용어이다. POV에서 MaaS로의 이전은 CASE를 통해 급격히 진행되고 있으므로 ‘CASE 혁명’ 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즉, 자유롭고 편리한 이동이 목적이라면 굳이 자신의 차(POV)로 할 것이 아니라, Car Sharing 등 공유경제 플랫폼에서 언제든지 인터넷으로 호출하여 편리하게 자율주행차를 이용하면 된다. 그것이 ‘서비스로서 모빌리티’, 즉 MaaS이다. 따라서 기존 자동차업계 뿐만 아니라 애플, 구글 등 빅테크가 자율주행차 개발, 공유 플랫폼 구축 등으로 MaaS 비즈니스를 강화하려 경쟁하는 것이다.
전기차를 POV로 이용하려는 소비자에게 엄습하는 불안한 점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배터리의 가격비중이 큰 상태에서는 전기 중고차 가격이 내연기관 중고차보다 그 낙폭이 더 클 것이라는 불안이다. 따라서 중고 배터리의 가격평가, 재활용 기술, 사고 추적시스템 등이 더 보완해야 할 과제이다. 다른 하나는 배터리 기술은 아직도 계속 진화 중이므로, 만일 오늘 내가 전기차를 사서 POV한다면 내일이면 구식이 될 것이라는 불안이다. 이 두가지 불안은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시대에서는 POV보다는 MaaS를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동인(動因)이 될 것이다.
전기차의 배터리 기술은 지금도 도약을 준비 중이다. 반고체에서 전고체로, 전고체에서 공기배터리로 도약할 것이며, 아울러 CASE는 배터리 기술의 도약에 발 맞추어 급진전할 것이다. CASE로의 진행에 따라 자동차는 소유가 아니라 이용의 대상이라는 MaaS로의 개념변화도 더욱 빠르게 확산될 것이다. 이는 또한 자동차메이커(OEM), 1차 부품업체(Tier 1) 그리고 2차 부품업체(Tier 2)라는 기존 자동차 부품공급망(Supply Chain)의 수직적 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점차 변화시킬 것이다. 이 모든 변화가 배터리로 추진되는 모빌리티 혁명이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소프트랜더스㈜ 고문/ 전 현대자동차 중남미권역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