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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 Aug 08. 2023

글을 쓰지 않는 작가입니다

작가라는 타이틀에 대한 고민

안녕하세요, 글을 쓰지 않는 작가입니다.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글쓰기가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제가 작가라니요. 책 읽기조차 힘들어하는 저에겐 다소 거창하고 민망한 타이틀입니다.


글쓰기는 모르겠지만, 작가의 역할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휙 지나가는 생각을 다시 불러 세운 다음 '너는 이야기야. 너는 세상에 존재하는 중요한 가치야'라고 말해주는 행위. 가령, 지나가는 강아지 보고 귀엽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귀여움은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강력한 힘이다'라고 한번 더 되짚어줌으로써 가치를 더하는 정성 말입니다. 보이지 않는 가치를 되짚어주는 일이 작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깊은 철학이 담긴 거창한 생각은 아니지만 이게 제가 생각하는 글쓰기입니다.


어느 날부터 글쓰기가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 전 청소년 소설 보조작가로 참여했을 때 일입니다. 공모전에 지원하자는 제안을 받고 용기 내어 저의 에세이를 첨삭받았습니다. 그때 받은 잔인한 지적은 아직도 기억납니다. 날카로운 펜으로 한 줄 한 줄 지적받으며 단어 하나, 조사 하나의 무거움을 느꼈습니다. 반년 채 되지 않아 그만두었습니다.


첨삭. 글을 쓰는 사람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잡지사에 취업하기 위해 다닌 기자 아카데미에서도, 드라마 작가를 꿈꾸며 시작한 드라마 아카데미에서도. 저명한 기자와 작가는 저의 흐름에 한 마디씩 말을 놓았습니다. 물론 지금의 저를 만든 자양분이겠지요. 하지만 그 옆에 두려움이 싹텄습니다. 두려움을 가지고 쓰는 글은 어릴 때 쓴 일기보다 생동감이 떨어졌습니다.


현재 방송작가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출연자를 인터뷰하며 자료를 모으고, 영상의 내용을 요약하는 자막을 쓰고 있습니다. 자막 한 줄을 쓰기 위해 지금까지 거친 길을 생각합니다. 참 멀리도 돌아왔다, 생각했습니다.

방송작가 일은 예상보다 훨씬 재밌는 작업입니다. 작가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일인지는 의문이지만요.


저같이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작가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과연 작가일까'라고 의문이 드는 작가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모든 작가가 이런 생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만 내가 하는 고민이 '작가라서 할 수 있는' 고민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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