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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비움 Oct 10. 2021

비만인 사람은 나약하거나 게으른 사람일까요?


야 너는 게을러가지고, 그러니까 살이 찌지

시대가 변하고 생각이 바뀌어가지만, 아직까지도 비만인 사람을 의지가 약하고 게으른 사람이라 여기는 경우를 봅니다. 다이어트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운동+식단+의지이니까, 비만인 사람은 운동도 안 하면서 많이 먹고 의지도 없는 사람인 걸까요? 비만, 요요, 자기 관리 부족, 단순히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걸까요?


제가 생각하는 그렇지 않은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비만의 원인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합니다.

비만은 먹은 것보다 소모하는 것이 적은 에너지 불균형으로 대표되는 부분이 있지만, 이것뿐만 아니라 유전, 가지고 있는 질환, 복용 중인 약물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관여합니다. 예를 들면 내가 우울증 약이나 스테로이드, 당뇨병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는 경우에도 체중 증가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런 경우에 해당되지 않더라도, 그냥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살다 보면" 살이 찔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소 악담(?)처럼 들릴 수 있지만 사실입니다. 사람은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일반적으로 체중이 증가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비만하게 된 이유를 단순히 운동을 안 해서, 식단 조절을 안 해서, 의지가 없어서 등의 단편적인 요인으로만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너두 나두 야나두



둘째, 다이어트에는 의지 말고도 필요한 것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갓 돌이 지난 아이를 키우는 여성, 밤늦게까지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학생, 취업 준비 중인 청년, 반복되는 교대근무로 생체 리듬이 흐트러진 직장인, 무릎을 수술하신 후 걷기 운동 조차 어려운 어르신의 상황을 떠올려 봅니다. 만약 이 분들이 비만이고 살을 빼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가 나약한 정신력을 가져서일까요? 아니라는 것은 누가 봐도 분명합니다. 시간적 여유, 신체적 여유, 정신적 여유가 부족해서 다이어트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인 이 가장 큰 요인입니다.

 

다이어트에는 이렇게 여러 종류의 "삶의 여유"가 필요한데, 여기에 경제적 여유도 한몫합니다. 편의점 도시락과 컵라면은 저렴하지만, 집에서 삼색 나물로 차린 비빔밥 한 그릇은 만들 시간도 없고 비용도 많이 듭니다. 마트에 대량으로 파는 묶음 빵은 저렴하지만, 다이어트를 위해 비우고 비웠다는 건강빵은 오히려 비쌉니다. 가격이 고 손이 잘 닿는 곳에 있는 음식들은 영양적으로 불량하고 칼로리가 높은 경우가 많고, 건강한 식단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보통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갑니다.

여기까지만 봐도 다이어트가 어려울만한 이유는 충분합니다.  



셋째, 아무도 모르는 각자의 사정이라는 게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원하신 30대 여성 환자분이 있습니다. 과거에 다이어트에 성공하시고 건강한 몸무게를 잘 유지하셨던 분인데, 갑자기 체중이 급격하게 증가해서 오셨습니다. 조금 의문이 들어서 여쭤보았습니다.


"혹시 1년간 일상에 어떤 변화가 있으셨나요?"


제가 질문함과 동시에 예상했던 답변은 코로나로 인한 운동부족과 배달 음식 습관, 이런 것들이었는데요. 그러나 그분이 어렵게 꺼내신 말씀은 크게 달랐습니다.


"1년 전에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한동안 삶의 의미를 잃고 술에 의지 해서 살았습니다. 나 자신을 함부로 대하며 살았더니 1년 새 15kg가 쪘습니다. 제 스스로도 건강이 너무 안 좋아지는 느낌이 들어서 다시 시작해보려고 왔습니다."  


여쭤보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갔을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글은 이 분을 생각하며 쓰는 글입니다.



모두가 같은 세상에서 사는 것 같지만, 나는 내가 생각하고 만들어낸 세상에 있습니다. 살면서 나의 부족한 지식과 얕은 경험으로 뭔가를 판단하지만, 예상은 뒤엎어질 때가 많았고 나의 판단은 종종 편견으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그러다 어느 때에 우연한 계기로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며, 나의 시야가 바늘구멍 같았음을 알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오늘 저의 이야기입니다.

 

그분께 제 나름대로는, 처음 만나는 타인으로서 너무 무겁지 않은 위로와 새로운 시작에 대한 격려와 응원을 전했지만, 퇴근길에 생각해보니 왠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아쉬움이 남는 하루입니다.



모두 편안한 저녁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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