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마음을 담아 칼끝에 실어 보내기.
가장 처음 배운 것은 중단세, 칼을 뽑고 상대를 겨눔 하는 자세. 상대의 중심 선을 벗어나지 않게 하고 나의 손목을 숨기기도 해야 하는 방어적이면서 공격적인 자세.
너무 힘이 들어가서 흥분해 보이면 안 되고, 너무 편안해 보여도 좋을 것 같지 않다.
단단하고 바른 마음가짐으로 상대에 대한 존중의 의사도 있으면서 나의 수를 들키지 않기도 해야 하고.
정답이 없는 운동인 만큼 하루하루 수련하고 가다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아직 초심자 이기 때문에 해석의 여지와 기술에 대한 내용이 다를 수 있고 단지 감상과 느낀 점 정도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검도를 시작한 지 한 달 차가 되었다.
이제 겨우 첫 번째 물집들이 터지고 피가 나어 한 겹 벗겨졌다.
그동안 있었던 배움과 마음들을 기록하려 첫 번째 검도 일지를 작성해본다.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것
나 또한 검도는 한쪽 운동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연습을 거듭하면서 이에 대한 오해가 완전히 풀렸다.
왼쪽 발이 뒤로 가 있긴 하지만, 결국 체중의 분배는 반반이 되어야 한다.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앞 뒤로 움직이기 때문에 단지 오른발을 먼저 내딛는 것 같았다.
검을 들고 후리는 (올리고 내리는) 모든 동작이 나의 중심을 지나가야 한다.
검을 잡는 파지법 또한 나의 엄지손가락 뼈, 하단전을 기준으로 위치해야 한다.
나는 대체로 어딘가 삐뚤어진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꾸만 조급하고 불안하며, 잘해야 한다는 과한 압박감에 나의 칼 끝은 자꾸만 중심을 벗어난다.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검도를 통해서 더더욱 침착한 사람이 되어가고 싶다.
기합과 검과 몸이 하나 되는 것
氣檢體一致 기검체일치 라고 한다. 입으로는 "머리"를 외치지만, 몸과 검이 서로 다른 곳을 향해 있으면 안 된다. 또한 검의 타격 시점과 기합이 일치하여야 한다.
지금 시점 가장 어려운 건 손목의 각도이다. 초기에 잘못된 자세가 초래한 각종 근육통은 어느 정도 건너갔고, 손목의 각도에 따라 어깨의 힘이 들어가는지 안 들어가는지가 결정되는데 이 부분은 연습이 더 필요하다.
머리를 타격하는데에서 아직도 어깨 힘이 안 빠지니 손목과 허리를 타격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때 가서 "손목"을 외치면서 머리를 치면 안 되니까. 지금 "머리" 하나를 정말 바르게 해 내고 싶다.
치는 것도, 받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저녁 8시 초등학생 - 중학생 친구들이 있는 시간에 주로 수련을 했다.
2주 차 까지는 기본 동작들을 배우고 움직이며 연습을 하는 과정들을 해 나갔다.
3주 차 이후에는 호구를 착용한 중학생 남자아이들이 타격을 받아주었고,
4주 차 즈음에는 9시 이후에도 남아서 성인부 분들과, 유단자 분들도 나의 타격을 받아주었다.
이때 잡생각이 정말 많아진다.
'안 아프실까?' '내가 너무 못 치지 않나?'
나의 잡생각은 타격에서 그대로 드러나듯, 머리의 중심을 치지 못하고 비껴가거나
거리 조절을 못해서 닿지 않거나, 애매한 힘으로 쳐대니 내 눈이 상대를 한 번도 쳐다보지 못한 채 어색해져 버린다.
그리고 이제 나도 연격과 본을 조금씩 배워보면서, 상대의 타격을 받는 일이 생겼다.
내가 잘 받아줄 수 있어야 잘 칠 수 있고, 잘 칠 수 있어야 잘 받아낼 수 있는 것을 알고 나니
그동안 나의 엉성한 타격을 받아내 준 상대에게 더 큰 감사한 마음이 생겨났다.
반복 또 반복
검도 이전에 기본적으로 나는 피아노를 연주했던 연주자로서, 연습의 의미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연습을 한다면, 결국에는 성장하고 더 나은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 그 자체 만으로도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에 용기를 얻는다.
100번, 1000번 그저 하면 된다. 피아노 음 하나하나에 나의 소리를 성찰하듯, 검을 휘두르는 동작 한번 한 번에 나의 자세를 성찰한다.
문제점을 발견하고,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결국에는 이겨내는 과정 하나하나가 자존감을 크게 높여준다.
피아노를 치면서 나의 잘못을 인정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검도를 하면서 크게 한 단계 성장할 나의 모습이 기대가 된다.
결국에는 나 자신과 싸우는 것
모든 운동이 그렇지만, 생각보다 힘들다. 검도는 특히 골고루 아프지가 않다.
오른손과 오른발에는 물집이 거의 나지 않으며, 왼손과 왼발에 물집이 난리가 난다.
발 물집이 특히 심해서, 한동안은 걷는 게 꽤나 고생했다. 중간에 면접을 볼 일이 있어서 오랜만에 구두까지 신었었는데, 아주 이를 악 물고 걸어야 했었다.
발구름을 배우면서부터는 오른쪽 고관절과 오른발의 발허리뼈가 2주 내내 아팠다.
아픈 것뿐만이 아니라, 검도를 하며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여야 하며 꽤나 좁은 도장에서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나의 자세에 집중하며 수련해야 한다.
초심자 이기 때문에 더더욱 고쳐야 할 것도 많고 뭐가 이리 신경 쓸게 많아, 싶을 정도로 작은 디테일들에 스스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루 한 시간 정도의 수련이지만, 헬스장에 출석하기만 해도 운동을 한 것처럼 검도장에 가기만 해도 나 자신의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게 된다.
단순한 체력 증진과 근력 향상을 위해서라면 검도보다 좋은 운동이 훨씬 많겠지만 마음까지 같이 운동할 수 있는 것 같아서 한 달 정도 지난 지금, 나는 멘탈에 근육이 조금 붙었다.
욕심내지 않고 꾸준히 도장을 방문하여서 고민과 설움들을 칼 끝에 털어내보고 싶은 마음도 조금 있다.
다음에도 검도 일지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