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학개론 - 1. 뱁새가 수리를 낳는다.
우리는 버스를 타러 가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은 한순간에 증발해 버렸다.
아들은 오늘 학원 입학테스트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우리가 타야 하는 버스가 막 코너를 돌며 들어오고 있어서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 뛰어!!
눈을 잔뜩 찌푸리며 지고 있는 빨간 해를 향해 뛰었다. 슬리퍼 샌들은 벗겨질 듯 헐떡이고 50을 바라보는 둔한 육신은 왜 함부로 안 하던 짓이냐고 놀라 따라 주질 않는다. 겨우 버스에 도착해 타려고 보니 뒤에 아들이 없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하아.. 아들, 우리 아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아들의 역사.. 소지품을 잘 흘리는 녀석. 해맑고 얼떨떨한, 옆집 아들이 아닌 우리 아들. 어디 간 거야….
혹시 버스에 미리 탔을까? 버스 안을 급히 살폈지만 없다. 기사의 눈치를 보며 다시 내려 두리번거리다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우 뚜우.. 신호는 가지만 받지 않는다.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부터 아들은 오늘 입학테스트를 보러 가고 싶지 않다고 투정을 부렸다. 학교에서 독서원정대 활동을 하고 4시 20분에야 집에 도착해 침대에 쓰러질 수 있었다. 하지만 5시까지 테스트를 예약해 둔 것은 일주일 전이다. 오늘 테스트에서 레벨이 잘 나와야 수학학원에 대기라도 할 수 있다.
-얘가 혹시.. 시험 보기 싫어서 튀었나? 도대체 어디로?
전화를 계속하다가 혹시 내 전화번호에 수신거부를 했나 싶어 남편에게 전화해 보라고 한다.
아들 걱정에 이은 핀잔과 함께 남편도 여러번 걸어봤지만 받지 않는다고 한다.
정말 사춘기가 시작된걸까? 그래도 전화는 받아야지. 입이 마르고 속이 바싹 탔다. 아니면 핸드폰을 보다가 횡단보도를 못 건넜을까? 다른 버스를 탔을까? 아이의 사진과 인적사항이 적힌 트럭을 타고 전국을 도는 아버지의 모습이 머리 속을 스쳤다. 아니면 가출팸에 모인 청소년들의 모습들, 그들의 손에 담배...
나는 주변을 돌았다. 아들과 같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은 너무 많고 가까이 가보면 아니었다. 그러는 사이 시험 시간은 다가온다. 테스트비도 아깝고 억울한 생각이 들지만 아들은 일단 찾아야 한다.
-혹시 사고라도 난 걸까? 그럼 무슨 소리라도 났을 텐데…
혹시나 싶어 바닥에 뭐라도 떨어져있나 살피며 걷는다. 정처 없이 하지만 급한 걸음으로 온 길을 다시 짚어 가보았다. 시간이 갈수록 무서운 생각이 엄습했다. 일분일초가 길었다. 어느 순간 나는 사거리 한 가운데 멈춰버렸다. 어디로 가야하나. 그렇게 10분쯤 지났을까?
-엄마! 나 여기 00 아파트 앞인데 어디서 내려?
아들의 전화였다.
-너, 버스에 탔어? 어디야?
-응, 4321 버스 탔어. 00 아파트 앞. 다음이 D 초등학교니까 여기서 내리는 거 맞지?
나는 마음이 급해 나무랄 틈도 없었다.
-어어 맞아. 00 수학 간판 보여?
-응, 조그맣게 보여.
-5시 넘으면 입실 안 시킨대. 빨리 뛰어가. 시험 잘 봐!
나는 어린 아들 양을 모는 목동이 된다. 요령도 부족한데 마음만 급해서 막대기만 연거푸 휘둘러 양을 몬다. 서툰 목동을 아랑곳하지 않고 양은 명랑하게 제 속도로 제 갈길을 간다.
어째 양이 목동보다 낫다.
도대체 왜! 아들은 버스에 탄 내내 엄마를 찾아볼 생각도 안 했을까? 왜 아들의 전화는 항상 무음이고 전화기를 보지 않을까? 엄마는 왜 끊임없이 아들을 의심하는가? 잘 찾아오겠거니 하고 학원 근처에 가 기다려볼 생각은 하지 않고. 엄마의 아들에 대한 의문은 끝나지 않는다. 의문은 학구열을 지핀다.
나는 너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알고 싶다.
너를 사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