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 소믈리에와 나눈 꿀 떨어지는 이야기
‘너무 좋아’라는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싶을 때. ‘가장’, ‘최고’, ‘제일’과 같은 최상급 표현으로는 2% 부족한 느낌이 들 때. 그럴 때면 긍정의 빛을 뿜어내는 ‘꿀’이라는 단어에 머리를 기대어 봅니다. 꿀맛, 꿀잼, 꿀조합, 꿀팁…. 단어 하나를 더했을 뿐인데 밋밋했던 표현이 확 윤기가 흐르고 맛깔스러워지죠. 요리에서 전체적인 맛은 유연하게, 풍미는 근사하게 만들어주는 꿀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진짜 꿀맛에 대해 알고 있나요? “달콤하다”는 단순한 말로는 부족한, 다채로운 개성과 향을 지닌 다층적이며 복합적인 꿀맛을요. 혜화동에 위치한 수상한 꿀 가게 ‘아뻬 서울’의 허니 소믈리에 이재훈 대표를 만나 맛 중의 맛, 꿀맛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밀랍과 벌집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즐기는 커피와 디저트라니, 왠지 더 달콤하게 느껴져요.
안녕하세요. 저는 옥상에서 벌을 키우는 도시 양봉가이자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 허니 소믈리에 이재훈입니다. 아뻬(Ape)는 이탈리아어로 ‘벌’이라는 뜻이에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곳은 서울과 꿀벌을 테마로 하는 카페예요. 권도혁 대표와 함께 운영하는 꿀 브랜드 ‘잇츠허니!’의 제품을 판매하기도 해요.
카페 옆 건물의 옥상에서 직접 벌을 키우고 있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양봉을 시작하게 된 건지 궁금해요.
저는 호기심이 생기면 무엇이든 일단 시도해보려고 해요. 얼반 비키핑(Urban Beekeeping), 시티 비키핑(City Beekeeping)이라고 검색해보면 뉴욕, 파리 등 많은 도시에서 창의적으로 도시 양봉을 하고 있어요. ‘서울에서는 왜 안 하지? 나도 벌을 키워보고 싶은데’하고 찾아보니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그들과 함께 2013년 협동조합을 만들고 옥상에 벌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리어카처럼 자전거 뒤에 커피를 담아 판매하는 자전거 카페를 했거든요. 양봉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꿀 관련된 카페를 열게 됐어요.
직접 수확해서 처음 맛본 꿀은 어떤 맛이었는지 기억하시나요? 카페와 브랜드를 시작할 정도로 뭔가 특별한 게 있었을까요?
‘어? 슈퍼마켓에서 사 먹던 맛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어요. 여기에서 출발해 벌을 키우고 공부하면서 지역, 시기, 밀원(벌의 먹이)에 따라 맛과 향이 확확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런 다양한 꿀맛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잇츠허니’라는 꿀 브랜드를 만들고 우리가 재해석한 스폐셜 로우 허니(Raw honey)를 판매하기 시작했죠.
로우 허니 즉 천연 숙성꿀과 사양꿀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요?
로우 허니는 다양한 맛과 향을 지니고 있어요. 토마토를 익힌 맛이 느껴지기도 하고 흙냄새와 젖은 강아지 냄새, 발효취가 나기도 해요. 와인이나 치즈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꿀에는 단맛뿐만 아니라 짠맛, 쓴맛, 신맛, 감칠맛까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꿀맛은 사양꿀의 맛이에요. 인위적으로 벌에게 설탕물을 먹여 만들어낸 꿀인데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양을 만들기 위해 열을 가해서 수분을 날리고 필터링을 합니다. 저렴하게 먹을 수 있지만 다양성은 사라지죠.
꿀맛은 거기서 거기인 줄 알았는데, 아뻬 서울은 '꿀은 달콤하다’라는 심플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네요.
허니 소믈리에가 된 것도 꿀에 대한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서였어요. 테이스팅 클래스를 열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오셨어요. “이건 라벤더 맛이 나”, “초콜릿 향이 느껴지는데” 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더 잘하고 싶었어요. 알아보니 해외에 관련 과정이 있더라고요. 런던에 가서 꿀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왜 맛이 다른지 이론적으로 배우고 전 세계의 꿀을 맛보면서 센서리(감각)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허니 소믈리에로 업그레이드해 돌아와 클래스를 정교하게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못하고 있지만요.
이제는 어디에 가는지보다 무엇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죠. 그런 의미에서 판매만을 위한 가게가 아닌 색다른 경험과 즐거움을 주는 공간이라 더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천연꿀이 올라간 케이크와 까눌레가 환상적으로 맛있지만요.
저는 하고 싶은 걸 멋지고 편하게 시도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손님들에겐 ‘사진 찍고 싶은 카페에 왔는데 이런 맛도, 이런 것도 있구나’하고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메뉴는 무조건 맛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벌과 관련되면 더 좋고요. 까눌레는 틀에 밀랍을 발라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구워 만든 디저트라, 우리 콘셉트와 잘 어울리죠. 러시아 벌꿀 케이크 메도빅은 사실 판매하는 곳은 많지만 꿀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요. 비싸니까. 저희는 허니 로우를 사용하는데 시럽이나 설탕에서 느낄 수 없는 맛과 향 때문에 반응이 좋은 것 같아요.
사실 꿀이 좋은 건 알고 있지만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몰라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 부분도 있어요. 대체할 수 있는 잼이나 시럽도 많고요. 꿀이 가진 본연의 매력을 잘 느낄 수 있는 방법이나 레시피가 있을까요?
고르곤졸라 피자 드셔보셨죠? 치즈랑 꿀은 정말 잘 어울리는 조합이에요. 그리고 우유. 따뜻한 우유에 꿀 한 스푼 타서 먹으면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어요. 사실 꿀은 설탕이 들어가는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다고 봐요. 특별한 음식을 만들 때 한 번 넣어보세요. 고급스럽지만 개성 있는 요리가 될 겁니다. 비슷한 고민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레시피는 계속해서 개발 중이에요. 스파이시 허니 꿀 패키지에는 활용법과 3가지 레시피 카드가 들어있습니다.
매운 꿀이라니, 스파이시와 허니는 상상하기 어려운 조합이네요.
푸드 스타일리스트이자 67soho의 박수지 오너 셰프와 콜라보로 만든 제품이에요. 양념치킨이 무슨 맛이죠? 달고 매운 맛. 그렇게 시작된 거예요. 페퍼론치노가 들어있어서 감자튀김에 올려 먹는 분들도 있고 브런치 요리에 많이들 사용해요. 사실 우리나라 식생과 기후로는 다양한 꿀을 생산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여러 꿀을 섞어 다양한 맛을 내고 있어요. 베이스가 되는 로우 허니와 잘 어울리는 재료를 찾으면 되니까요. 그렇게 스파이시 허니 외에도 바닐라, 라벤더, 트러플 허니를 만들게 됐습니다.
아뻬 서울 그리고 잇츠허니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요?
10년 전만 해도 “이 커피에서는 과일 향이 나는데 저 커피는 초콜릿 향을 느낄 수 있어”라고 하면 “무슨 소리야. 그냥 커피는 쓴 맛이지”라고 일축해 버렸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요. 로스팅을 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특별한 커피를 맛보기 위해 카페를 찾아다니는 손님도 훨씬 늘었어요. 스폐셜티가 하나의 문화가 된 것처럼 꿀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쉽고도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저희는 티셔츠, 휴대폰 케이스, 엽서 등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서 여러 가지 제품을 만들고 있어요. 쉽고 편하고 멋지게,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브랜드로 나아갈 수 있도록.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35나길 1 1층
가격 까눌레(2,500원), 메도빅(9,500원), 서울허니 카페라떼(7,000원)
문의 @ape_seoul, @itshoney.kr
Editor 노유리
Photographer 김병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