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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기 Oct 20. 2021

달콤한 소리

진짜 잘하는 줄 알았지 뭐에요

처음 성우학원에 갔던 날이 생각난다. 그 때 선생님에게 “저의 수준을 보여주겠다”며 호기롭게 예전에 내레이션했던 영상을 틀어줬다. ‘내가 이렇게 잘하니 가르치는 데에 참고하세요~’ 라는 마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민망하다. 하지만 그 때는 자신이 있었다. 자신감의 근거는 다른 사람의 칭찬이었다. 내 내레이션에 대해 ‘정말 잘한다.’ ‘진짜 목소리 좋다’고 추켜세워주셨던 분들이 있었다. 순진하게도 그 말을 감쪽같이 믿었다.      

조금 듣던 선생님은 더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이 껐다. ‘더 남았는데... 뒤쪽도 들어보셔야 할텐데’라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뒤로 실제 수업에 참여할 때마다 나는 혹독하게 ‘까였다’. 

내 현주소를 깨닫고 여러 가지를 배워가던 무렵, 다시 예전의 내레이션을 들어보았다. 낯부끄러웠다. 

‘이걸.. 수만명이 들었다고?’ 들은 분들께 죄송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열심히 배워가던 때, 오디오북 나레이터 참가자 모집이 있었다. ‘이쯤되면 조금 나아졌겠지’ 싶은 마음이 들어 흔쾌히 손을 들었다. 시리즈 책이었는데 1편 2편 모두 구매해서 책을 읽었다. 단 5분의 낭독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 책값이 아깝지 않을 만큼 자신이 있었다. 

심사를 했던 선생님도 ‘아주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 하지만 결과는 탈락이었다. 1년 후 그 파일을 다시 들어봤을 때 난 또다시 부끄러움을 느꼈다. 

‘아.. 내가 이렇게 했다고..?’      


그 후에도 이런 패턴은 계속됐다. 칭찬을 들었고 그것을 근거로 자신감이 생겨 뭔가를 시도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그 결과는 내가 부족한 게 뭔지 생각하게 했다. 그렇게 또 뭔가를 열심히 하다보면 칭찬을 받았다. 그럼 다시 도전했다.      


결국, ‘내가 잘한다’고 믿었던 건 착각이었다. “잘한다.” “좋다.”고 얘기해주었던 사람들의 말은 팩트에 기반한 객관적 평가가 아니라 그저 마음 써주는 격려와 칭찬이었다. 친절한 말 한마디, 지나가는 인사치레 같은 것들이 나를 기분좋은 착각에 빠지게 했다. 그것을 사실로 믿어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볼 수 있었다.      


이제는 착각하지 않는다. 내가 한 걸 들어보고 자아성찰을 한다. 

언제쯤 나는 낭독의 모든 면에서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까.  

그 전에, 나도 누군가에게 착각을 심어주고 싶다. “너 진짜 잘해~”라고. 그럼 어깨를 으쓱으쓱하며 자신의 능력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겠지. 비록 결과에서는 냉정한 쓴맛을 맛보더라도 말이다. 그 쓴맛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진짜 부족한 점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노력해나가다보면, 어느샌가 성장해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작은 말 한마디가 서로를 바꾼다는 달콤한 믿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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