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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기 Oct 03. 2021

쳇바퀴 유튜버

살아있는 걸 살아있게 두고 싶은 애정

지인이 해준 얘기다. 사무실에서 화분을 키우는 분이 있는데, 물을 정기적으로 주기 위해 장치를 만들었다고 한다. 타이머를 설치하고 그 타이머에 뭔가가 자극이 되어 모터가 작동되면 생수통에 있던 물이 일정부분 화분으로 떨어지는 시스템이란다. 그렇게 하면 신경을 특별히 쓰지 않고도 기계적으로 물을 줄 수 있다. 식물은 건강하게 자랄 것이다. 

누군가 물은 적이 있다. 

"조횟수도 안나오고 아무도 안 보는데 유튜브를 계속 올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말문이 막혔다. 스스로도 그게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콘텐츠를 올려도 조횟수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채널을 개설한 지 거의 3년이 다 되어가는데 구독자 수도 70명을 웃돈다. 


"구독을 누르는 것도 신기한데요."

그래, 나도 신기하다. 낭독 유튜버 중에도 영상 편집 기술이 좋고 자주 업데이트가 되는 채널들이 있는데, 나는 영상 편집을 못해 허접한 정지화면에 똑같은 목소리만 나온다. 게다가 자주 올리지도 못한다. 이렇게 세련되지 못한 채널을 찾아주는 분들도 참 신기하고, 그걸 계속 하고 있는 운영자도 신기하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을 그 땐 잘 하지 못했지만 지금에라도 답을 한다면 '식물에 물 주는 장치' 같은 거라고 말하고 싶다. 유튜브를 보는 사람이 극소수여도 유튜브를 계속하는 이유는, 유튜브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 주기적으로 식물에 물 주는 장치의 타이머처럼 울리기 때문이다. 특별한 계기나 이유는 없다. 이미 이 채널을 성장시키려는 포부나 야망 같은 것은 접었고 조회수가 나오지 않더라도 별로 실망스럽지 않다. 이 채널을 통해 뭘 어떻게 해보려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저, '왜 눌렀는지 모르겠는' 구독자 한 분을 위해 들려줄 때도 있고, 그냥 기계적으로 식물에 물 주듯이 유튜브에 new를 띄울 때도 있다. 심할 땐 한두달에 한 번 올리고 여유가 있을 때는 1주일에 한 번 올리기도 한다. 

그냥 '나 여기 있다'는 마음, 그리고 '내가 키우는 화분이 비록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도, 무성하게 꽃피우는 것까진 바라지 않더라도 그저 죽지 않고 살아있길 바라는 마음' 그거 하나다. 

그래서 쳇바퀴 돌 듯 유튜브를 올린다. 쳇바퀴가 느리고 세련되진 못했지만 그래도 돌아는 간다. 

보는 사람이 적더라도 그냥 이 자리에서 쳇바퀴를 천천히 돌린다. 멈춘 건가 싶었을 때 다시 돌리고 이제 진짜 멈췄나 싶을 때 또 돌린다. 


모든 것에는 존재의 이유가 있다. 화려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기계적으로 하는 행동이지만 그 행동에도 '살아있는 걸 살아있게 해두고 싶은 애정'이 들어있다. 식물에 물 주는 장치를 만든 사람처럼 말이다. 그 애정 속에 존재의 이유가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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