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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의 틈 Aug 26. 2021

리베카 솔닛 <해방자 신데렐라>

동화 리뷰

<해방자 신데렐라>를 처음 읽고 놀랐던 점은 기존 신데렐라 서사의 표면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를테면 새어머니의 '악'함과 두 언니의 '외모 지상주의'가 수용되어 있고 소외된 삶을 살던 신데렐라에게 '마법'이 부려지며, 무도회에서 왕자를 만나게 되었으나 황급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리 구두를 잃어버려 왕자가 신데렐라를 찾아 와 두 사람이 연결된다.는 '해피엔딩'이 그대로 <해방자 신데렐라>에 수용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서사의 표면이 그대로 수용되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던 이유는, 

선/악의 이분법, 외모 지상주의, 마법, 왕자와의 해피 엔딩.과 같은 켜는 내게 그저 창작에 있어 척결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해방자 신데렐라>는 이 모든 것을 가지고도 그 표면의 '이면'을 일구는 방법을 구사하며 기존 서사를 '해방'시키고 있다. 

이를테면 새 어머니의 '악'은 빌런의 악이 아니라 모든 이의 내면 속에 자리한 보편 악으로, 

두 언니의 외모 지상주의는 내면으로 가는 길이 가두어지도록 양육받은 두 자녀의 결핍으로, 

신데렐라에게 부여된 마법은 환상적인 마법이 아니라 자기 내면을 지키는 힘을 확인케 하는 마법으로, 

왕자와의 해피엔딩은 '결혼'이라는 약속이 아니라 어렵사리 발견될 수 있는 친구의 마음으로 해방된다. 


이렇게 표면을 지키면서도 이면으로써 그 표면을 해방시키고 있는 이 책은, 

이제까지 아이에게 금기시 해 온 신데렐라 이야기(백설공주와 숲 속의 잠자는 공주 이야기를 포함하여)의 서사를 전달해 주면서도 비교육적인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 분명하다.  

(또한 리베카 솔닛의 문장은 어린 아이들이 듣고 읽기에도 좋은 알곡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기도 하다.) 


그런데 책을 읽고 하루가 지나 생각해 보니 

이 모든 것의 해방은 기분좋은 사회 교과서 안에서의 해방처럼 느껴져, 

이 작품이야말로 진정한 '환타지'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해방'이라는 구호는 그것에 가닿기 위한 어려운 사투일 때에만 진정 문학의 것이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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