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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Sep 27. 2023

Sit Down! And Eat!

내가배고픈것을보지못하는사람들#2

 "엥 지금 간다고?"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치자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웃었다. 안나의 부모님은 한국어를 전혀 할 수 없으시지만 내 표정과 말투만 봐도 무슨 말을 한 건지 아셨던 모양이다.


 "Yes, Let's go~"


 안나의 아버지께서 그렇게 외치며 자동차 패달을 밝으셨다.



갑자기 가게 된 안나 이모집에서 캠핑을 즐겨봐요

 여기서부터가 진정한 먹방의 시작이었다. 이 가족은 세상 다정하고 세상 따뜻한 지라 항상 내가 무얼 하는지 신경을 써주곤 했는데 그건 안나의 이모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모는 나를 '탱그르'라고 불렀다. 내가 첫 만남에 몽골어로 인사한 것이 기쁘셨는지 사람 좋게 웃으시면서 어서 앉으라고 말했다.

 나는 이모가 내어준 꽃신을 신고 들어가 안나를 따라 대충 구석진 곳에 가방을 내려놓고 식탁에 앉았다. 그러자 안쪽 방에서 안나의 오빠와 새언니, 그리고 귀염둥이 조카가 보였다. 우리보다 먼저 와있었던 오빠네는 아이를 살살 달래며 재우고 있었다.


 식탁에는 얇게 썬 베이컨과 오이, 우룸(시골에서 먹은 것)이 놓여져 있었다. 하망조시라는 전통음식과 비슷한 느낌을 내는 이것을 대체 어떻게 먹어야 할까 고민하며 나보다 조금 늦게 앉은 안나 아버지가 먹는 방법을 봤다. 뭐, 사실 간단했다. 그냥 베이컨이나 햄과 오이를 같이 먹으면 되는 거다. 손을 쓰든 포크를 쓰든 상관없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게 맛있었다. 특히 베이컨 반 개에 오이 한 개를 먹으면 짭쪼롬함과 상쾌함이 동시에 느껴졌는데 그래서 나는 오이가 사라질 즈음이면 잠시 식탁에서 수테차를 홀짝이면서 새로운 오이가 썰어져 나오기를 기다렸다. 옆에 있는 빵과 같이 먹으라고 우룸도 내어주셨지만 그건 먹지 않았다.


 그렇게 배불리 먹고 아직 4분의 1밖에 먹지 못한 내 수테차와 함께 쇼파에 앉았다. 그러자 얼마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정확히는 내가 수테차를 한 세 입 정도 홀짝였을 때 안나 아버지가 'sky!'라고 외치셨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항상 하시는 말.


 "Sit down. And eat."


 넵, 알겠습니다. 나는 바로 식탁에 가서 앉았다. 식탁에 놓여진 것은 작게 썬 양고기와 피클이었다. 고기만 있었다면 물려서 먹기 힘들었겠지만 피클과 함께 먹으니 상콤한 느낌이 들어서 계속 먹게 되더라. 그렇게 고기를 다 먹을 즈음에는 안나 이모님께서 자연스럽게 내 앞에 양고기 칼국수인 고릴테슐을 놓아주셨다. 하, 배부르지만 고기 칼국수가 얼마나 맛있는지 알고 있으니 먹을 수밖에. 나는 야무지게 국물까지 싹싹 긁어 먹은 후 후식으로 주신 수박까지 먹었다. 참고로 수박은 고릴테슐을 먹고 있는 나에게 이모께서 지금 먹을지 내일 먹을 지 물어보셨던 건데, 분명 배불렀음에도 후식 배는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는 딱 한 치의 망설임을 가지고는 바로 지금 먹겠다고 대답했다. 지금 생각해본 것인데, 이때 무지막지하게 먹어치우는 나를 본 이 따뜻한 가족들이 나를 엄청난 대식가로 인식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 업보로군.


1시간 풀코스 먹방


 그렇게 대략 1시간 동안 배터지게 먹고 나니 나른함이 몰려왔다. 자연스럽게 옆에서 둥가둥가 하고 있는 조카에게로 시선이 갔다. 물론 먹고 있는 동안에도 멀찍이 서 있는 상태로 지켜봤지만 아이란 모름지기 가까이에서 볼 수록 더 귀여운 거 아니겠는가.



 자기 아버지가 자신을 들어올리자 짓는 저 표정을 보라지. 진짜 바로 옆에서  볼록한 볼이며 찌푸린 눈이며 아기자기한 코와 M자로 벌어진 입을 보고 있자니 행복이 몰려왔다. 제멋대로 말려 있는 저 손에 손가락을 하나 스윽 집어넣으면 아주 작은 힘으로 내 손가락을 꽉 잡는데 그게 너무 좋아서 자꾸만 귀찮게 구는 나. 새언니가 아이를 눕히고 두 손으로 쭉쭉이를 시켜주자 조카의 얼굴이 귀엽게 짜부됐다.


 "하늘언니 한국 가면 너가 그리워서 어떻게 해~"


 안나가 새언니의 말을 해석해줬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설마 한국에 돌아갔는데 다른 것들을 다 제쳐두고 나 기억도 못할 조카가 그립겠어. 그렇다. 지금도 무지하게 보고 싶어 죽겠다.



 몽골의 밤은 추웠다. 그래서 어른들이 나가 있는 것을 보고 내부도 이렇게 덜덜 떨리는데 어떻게 밖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인지 신기했다. 그런데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계시던 이모님께서 갑자기 나를 부르시더니 캠핑용 의자에 엄청 푹신한 담요를 깔아주시며 이곳에 앉으라고 하셨다. "추운데..."라고 소소한 한국어 주장을 하며 자리에 앉은 나는 곧이어 내 몸을 덮은 두껍고 큰 담요가 주는 온기에 스르륵 의자에 녹아내렸다. 그러자 주변 어른들이 웃었다. 내 나른함이 표정에 잘 드러났나 보다.

 안나의 이모부와 아버지는 보드카를 드셨는데 몽골 어느 가게를 가도 볼 수 있는 보드카를 큰 컵에 물처럼 따르시더니 물처럼 드셨다. 후에 나는 너무나도 '물'처럼 마시는 그들이 신기해 한 모금 시도해봤는데, 물은 무슨, 40도가 훨씬 넘는 독한 보드카였다.


 "이걸 어떻게 이렇게 마셔?"


 물론 나도 원샷하라고 하면 할 수 있다. 후에 시도하기도 하고. 하지만 이분들은 뭐랄까, 정말 물을 마시듯이 아무런 안주도 없이 꿀꺽꿀꺽 하셨다. 말그대로, 꿀꺽꿀꺽.

 나중에 알기로 아버지들이 젊으셨을 때 몽골은 공산주의였는데, 나라에서 물 대신 보드카를 하루에 두 병씩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공짜로 나눠주는 보드카를 매일매일 마시는 그들에게 있어서 40도 보드카 정도는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먹는 차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물이 아니라 보드카를 배급하는 나라라니.



 이곳은 안나 이모네 별장으로 울란바토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래서 주변에 불빛이 매우 적었고, 그래서 별이 잘 보였다. 씻고 나온 나는 안나가 보여준 사진을 보고 바로 정원 가운데로 달려갔다. 안나는 줄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말하며 나를 따라왔다. 그렇게 해서 본 하늘은, 정말 별이 잘 보였다. 달이 떠 빛이 생기는 바람에 카메라에 잘 담기지는 못했지만 나는 오히려 오로라를 본 기분이 들어 행복해졌다.



 밤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집 안으로 들어가셨고 우리는 어른들이 미리 쳐둔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텐트 안에서 잔 적이 거의 없는데 친구 이모 별장 앞마당에서 텐트라니. 아무래도 사람은 많은데 자리가 없으니 우리를 위해 이렇게 텐트를 쳐주신 것 같았다. 저녁 즈음에 안나가 텐트에서 자는 것이 괜찮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봤는데, 당연히 괜찮지! 아니, 오히려 좋다. 이렇게 편안한 캠핑이라니 얼마나 좋은가. 심지어 안나는 내가 추위를 많이 타는 것을 알고 있기에, 정확히는 그래서 내가 얼어 죽을까봐 두 개의 침낭 중 더 따뜻한 침낭을 가리키며 내 거라고 말했다. 옷도 두툼하게 입었고 침낭도 따뜻하고 푹신하니 잠자리에 불편함은 없었다는 점. 단점이 있다고 한다면 이곳에는 벌레들이 굉장히 많다는 점이었는데, 방심하면 텐트 내부 벽이 여러 벌레들로 가득할 정도였다. 내 바로 눈 앞에 있는 저 기다랗고 커다란 벌레. 내가 자고 있는 사이 실수로 떨어지지는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먹고 뒹구는 이 삶... 천국인가?

 다행히도 그 큰 벌레가 잠자는 동안 내 얼굴에 떨어지는 불상사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다만 어제 봤던 위치보다 좀 더 내 머리쪽으로 내려와 있어 나를 굉장히 신경쓰이게 할 뿐이었다.


 너 오늘 뭐했어?


 라고 물어본다면 진심으로 '먹고', '자고', '빈둥거리기'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하루였다. 먹는 것도 내가 만들어 먹거나 무엇을 먹을지 심도 있게 고민하거나 음식점으로 직접 찾아가 주문하고 값을 지불하는 문화인과도 같은 태도를 취한 것이라 정말 그냥 주는 대로 먹기만 했다.


 그러니까 2023년 6월 25일. 이 날의 내 일상이란 이랬다.


 11:00am 기상 후 텐트 밖으로 나와 이모님이 해주신 반쓰테차이 먹기

(반쓰테차이 : 우유와 소금을 넣은 국에 만두를 띄워서 먹는 음식)

 11:30am 다시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벌레와 알 수 없는 대척을 하며 빈둥거리기

 1:00pm 밥 먹으라는 말에 발코니로 가서 샐러드를 먹음

 1:30pm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어머님께서 "bantan?"이라고 물어보심. 나는 아주 밝게 고개를 끄덕임.

 2:00pm 기다리고 기다리던 반탄이 나와 맛있게 먹음

 2:30pm 쇼파에서 빈둥거리고 있었는데 초콜릿과 과일을 주셔서 먹음

 3:00pm 먹고 나른하게 핸드폰하고 있으니까 이모님께서 방 안에 들어가서 자라고 하심.

 6:00pm 양치질하고 들어가서 자고 있었는데 밥 먹으라고 나오라고 하심. 꼬치구이 바베큐를 먹음

 9:00pm 배부르고 맛있게 먹고 울란바토르로 돌아왔는데 삼겹살을 구워주심. 맛있게 먹음


 타지에서 이렇게 행복한 삶이라니.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빈둥거리기만 했는데 이 많은 음식들을 먹었다는 것이 신기하다. 게다가 나는 중간중간 내가 쇼파에 있을 때마다 나에게 이것저것 먹을 것을 권유하는 이모님, 어머님, 아버님, 오빠분의 말을 거절하기도 했으니, 만약 그걸 거절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미 동그랑땡이 되어 있었을 거다. 이쯤되면 얘가 얼마나 더 먹을까 신기한 나머지 이것저것 시도하신 것이 아니었을까.


 '여행을 왔으면 무조건 여기저기 돌아다녀야지!'가 나의 모토였으나 이 엄청난 대접에는 무너지고야 말았다. 그래, 거의 한 달 동안 이곳에서 살 건데 어디서 이런 호사를 또 누리겠는가. 먹고 싶을 때 먹게 해주고 자고 싶을 때 자게 해주는 이곳의 생활을 지금 잘 즐겨야지.

 그런 마음가짐을 가졌던 나는 어딘가를 가자며 안나를 귀찮게 굴었던 이전과는 달리 하루종일 뒹굴기만 했는데, 알고보니 안나는 어른들에게 계속해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친구가 심심해보인다고. 친구 데리고 산책이라고 하라고. 친구 배고픈 거 아니냐고. 초콜릿이라도 좀 가져다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니 지금 안 심심해 보이는데... 행복해 보이는데..."


 이제 슬슬 헤어질 시간이 됐다. 그보다는 집에 갈 시간이 됐다는 게 정확한 것 같다. 안나 이모 역시 우리를 따라 안나의 집으로 잠시 방문한다고 하셨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지는 분위기를 느낀 것은 이모가 한 명씩 악수를 하고 안아주면서 무언가를 말씀하셨기 때문이었다. 몽골 사람들은 선물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더니, 그 말대로 이모님은 여러 여러 명에게 선물을 주셨다. 그리고 거기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탱그르!"


 내 이름을 부르신 이모님은 큰 상자를 내 품에 안겨주셨다. 그 안에는 초콜릿과 파우치가 들어가 있었다. 초콜릿과 파우치. 감동받은 나는 이모님을 꼭 마주 안았다.


이모님 집에서 신은 분홍꽃신



집으로 돌아와 몽골어 공부를?

 앞서 말했듯이 울란바토르에 돌아와 짐을 풀고 씻기도 전에 삼겹살구이를 먼저 먹었다. 그런데 이전과는 집안의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마당에서 뛰노는 것을 언듯 보았던 3명의 여자 아이들이 집 안으로 들어온 거다. 그 중 첫째 아이는 한국을 자주 방문하는 아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한국어를 아주 잘했다. 얼마나 잘하냐면 몽골어로 구사할 수 있는 말이라면 한국어로도 구사할 수 있는 정도. 안나가 아무리 나에게 말을 걸라고 말해도 부끄러운지 피하기만 했던 그 아이, 닌쯩은 내가 앉아 있는 식탁 옆에 앉아 그림판으로 뭔가를 그리고 있었다.


 영어와 몽골어와 한국어로 적어놓은 사랑해요 라는 단어는 꽤나 삐뚤삐뚤했지만 나에게는 좀 멋있어 보였다. 3개 국어를 하는 아이라니. 나는 닌쯩의 옆으로 의자를 조금 더 당겨서 무얼 쓰고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멋쩍게 웃으면서 이건 영어, 이건 몽골어, 이건 한국어라고 설명해주더라. 우리는 함께 몽골어와 한국어를 공부했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그냥 닌쯩이 말하는 대로 한국어로 썼을 뿐이고 몽골어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아이가 공부가 되었다면 된 거 아닐까. 닌쯩은 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줄 알았지만 쓰기나 읽기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닌쯩이 몽골어로 한 글자를 쓰고 나면 그걸 맞춰서 한국어로 쓰곤 했다.


 "과일 종류에요!"

 "으음... 힌트 없어요?"

 "빨간색이에요."

 "딸기? 사과? 사과구나?"


 내가 맞출 때마다, 혹은 자신이 맞출 때마다 닌쯩은 재밌다는 듯이 키득거리며 글자를 써내려갔다. 얼마나 놀았는지. 닌쯩의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고 주변이 잠잠해질 때까지 우리는 한참동안 글자놀이를 했다. 두 사람 모두 피곤을 느낄 즈음 닌쯩이 집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오! 아주 좋은 타이밍이야. 슬슬 졸려지기 시작했거든. 어쩌면 눈이 감겨가는 나를 배려한 걸 수도 있겠지만.


 닌쯩은 쇼파에 늘어져 있는 나에게 몽골어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가장 자주 쓰면서 가장 어려운 몽골을 꼽자면 단연코 '감사합니다'인데, 몽골어 특유의 발음, 그것도 굉장히 어려운 발음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렇다.


 감사합니다 = 바야를라


 이렇게 한국어로 표기되고는 하지만 정말 이걸 글자 그대로, '바야를라'라고 읽으면 몽골인들은 절대 못알아듣는다. 개인적으로 듣기에 '를'이라는 단어는 거의 들리지 않고 '라'에 쇳소리가 들어가는데 그걸 따라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이거 아닌가? 싶어서 말해보면 아니래. 그래서 다르게 말해봐도 조금 비슷하다고는 하는데 표정이 미묘하다. 어떠다 한 번 정확해!라는 평을 들어도 내가 그걸 어떻게 했는지 감이 도저히 안오니 나중에 가서는 거의 감사하다고 말해야 할 타이밍에 '바야'까지만 제대로 발음하고 뒤에는 그냥 흘려버리게 됐다.

 아무튼 이놈의 '바야를라'는 내가 몽골을 떠나기 전까지 닌쯩이와 안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나 너는 이제 몽골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완벽하게 소화해낼 수 없었다. 만약 소화해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신의 혀를 가진 것.




마지막까지 맛있게 먹고...

12시가 됐다. 침대에 일어나 비몽사몽하고 있는데 언니가 위로 올라와 나를 불렀다.


 "탱그르! 밥 먹어!"


 참고로 정말 한국어로 말했고 나는 아침부터 들리는 생생한 한국어에 정신을 차리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데 이건 뭘까. 반스테차이 같지만 만두는 없고 고릴테슐 같지만 칼국수는 없다. 사실 아침부터 그런 걸 생각하지는 않았다. 사진을 보면서 내가 대체 뭘 먹은 건지 생각했을 뿐. 만두에서 떨어져 나온 얇은 만두피 같은 수제비 모양의 국수는 굉장히 맛있었다. 어제 술을 마시지는 않았지만 그랬다면 상당히 좋은 해장이 되었을 것 같은 그런 느낌.



 2시에 라면까지 야무지게 먹고 나니 이제 슬슬 숙소로 돌아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시간대도 4시였다. 같이 TV를 봤을 뿐인데도 어찌나 시간이 잘 가던지.


 "탱그르 언제 돌아와?"


 새언니의 말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아마 숙소가 있으니 그게 끝나는 2주일 후가 아닐까. 그렇게 말하며 그치만 중간에 갑자기 나타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일주일도 안 되어서 잠시 들리게 된다.) 그도 그럴게 오늘도 안나와 함께 있을거고 숙소가 끝나기 전에도 안나랑 같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몽골 음식하면 유명한 게 있지 않은가. 물론 허르헉이나 호쇼르와 같은 전통음식도 유명하지만 프로그램 [나혼자산다]에서 나와 유명해진 블랙버거. 블랙핑크 버거라고 해서 위패티는 검은색, 아래 패티는 핑크색인 것도 있었는데 굳이 그걸 먹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아무리 몽골에 한류가 유행이라고는 하지만 블랙핑크 버거라니. 원래 가려고 했던 곳에서는 버거가 품절되었다고 해서(버거집인데 버거가 품절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시내에 있는 한국사람들이 많이 가는 블랙버거 집으로 갔다. 정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버거 맛이다. 맛없지도 않고 그렇다고 특별히 맛이 엄청난 것도 아닌 맛있는 버거맛.


 이때 나는 여행을 가기 전부터 사고 싶엇던 독특한 원피스를 무려 40,000투그릭이나 할인받아 기분이 좋아져 있는 상태였다. 중학교 1학년 때 머리를 짧게 자른 후부터는 입지 않았던 원피스. 그런데 여행을 가기 전 돌아다니다가 독특하고 힙한 원피스를 발견해 구매하려고 했었다. 현금은 없고 카드만 있는 상태에서 들었던 가격은 10만 투그릭. 살까말까 고민하다 카드가 말썽이라 사지 않았는데 이번에 돌아와서 다시 사려고 가격을 물어보니 60,000 투그릭, 약 2만원이라는 거다. 아니, 어떻게 가격이 반절이 줄어들 수가 있는 거지. 여행하는 내내 혹시라도 옷이 팔렸을까 걱정하고 그냥 살 걸 그랬다며 후회했던 나는 깡그리 날아갔다. 이전 점원분이 가격을 부풀린 것인지 그 사이에 할인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돈을 벌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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