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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Sep 30. 2023

수흐바타르에서는 간절한 눈빛과 춤과 통역기만 있으면

즉흥러세명이모이면여행이즐겁다#1

토닉워터가 도착했어요!

 몽골의 국제공항은 칭기즈 국제공항이다. 해외에서 오는 모든 사람들이 이 공항에서 내리게 되는데, 모든 공항이 그러하듯 울란바토르와는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야 한다. 한국과는 달리 버스가 발달한 편은 아니라 많은 여행객들은 택시를 타고는 한다. 관광지가 으레 그렇듯이 택시값은 보통보다는 조금 늘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은 7~8만 투그릭이었고 지헌이가 탄 택시는 75,000투그릭(한화 약 3만 원)이었다. 흥정을 꽤 잘한다고 하신 김지헌 군은 몽골택시기사들의 단합에 못 이겨 결국 값을 깎지 못했다고 하는데 몽골의 물가가 굉장히 저렴한 것을 생각하면 그리 손해 봤다는 감각은 아니었다.


 어쨌든 숙소 앞에서 안나와 함께 차에서 기다리고 있기를 약 몇십 분, 드디어 만났다! 내 토닉워터!


아껴먹어야지


 몽골에 도착하자마자 친구들을 만나 갔던 바에서 먹은 미묘한 맛의 칵테일. 시골집에서 한 잔으로 다 같이 꿀꺽꿀꺽 돌려 마셔야 했던 미지근한 맥주. 이모집에서 먹은 속이 타들어갈 것 같은 도수의 보드카. 애초에 나는 깡소주도 맛없다고 먹지 않는 사람이었고 맥주도 '시원함'이 생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몽골에 오기 전에 그렇게 맛있는 하이볼을 실컷 먹었는데 어떻게 그 맛을 잊을 수 있겠는가. 몽골에 오기 일주일 전, 학교 선배가 손수 타준 시원한 하이볼의 맛에 중독되어 울란바토르는 물론이고 지나가다 보이는 마트란 마트, 주류점이란 주류점은 전부 들렸음에도 그 맛있는 '파이어볼'을 찾지 못했다. 그거라면 다른 위스키도 있으니 괜찮았지만 무엇보다 하이볼에서 가장 중요한 토닉워터가 보이지 않았던 거다. 물론 토닉워터는 진로 거니까 몽골에까지 들어오기 쉽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너무하지 않은가.

 필요한 게 있으면 가지고 오겠다는 지헌이의 말에 몇 번이고 토닉워터를 외친 나는 드디어 오늘, 그가 캐리어에 바리바리 가지고 온 4병의 토닉워터를 영접하게 됐다.

 

 그리고는 일사천리였다. 바로 여행을 떠날 짐을 챙긴 우리는 샤브샤브를 먹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 동참하지 않는 안나는 우리를 기차역에 내려주고 떠났다. 만약 제대로 된 기차역에 내려줬다면 정말 감동적이었을 텐데. 



이제 바디랭귀지의 시간이다

 이전과는 다른 기차역의 분위기에 의문을 가진 것도 잠시, 영어고 한국어고 전혀 할 줄 모르는 역무원은 내가 보여준 표를 보여주며 고개를 저었다.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리지 않는가. 나는 왜 이전에 기차역을 표시해두지 않았나 후회하며 열심히 구글번역기를 돌렸다. 기차 시간은 다가오고 어찌해야 하나 싶은 그때, 건물 안에서 한 여성분이 나오시더니 역무원에게 무어라 이야기했다. 여성분은 우리에게 기차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하며 앞서 걷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사람을 이렇게 데려다준다는 것에 대한 감사와 정말 이 분이 우리의 목적지를 제대로 인지하신건가 하는 걱정이 뒤섞인 채로 따라가기를 20분, 우리는 드디어 내가 아는 그 열차역으로 도착했다. 이게 바로 김안나의 암살시도 첫 번째라고 할 수 있겠다.



 저녁에 출발하는 기차는 수흐바타르, 그러니까 몽골과 러시아의 국경 바로 아래 위치한 도시로 향했다. 다르항과 에르데네트보다도 훨씬 멀리 있으면서 두 도시를 지나야만 갈 수 있는 이 도시를 선택한 이유는 기차로 갈 수 있는 흥미로운 도시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국경에 위치해서 러시아를 내다볼 수 있으며 택시 투어라는 신기한 투어를 해볼 수 있는 곳. 안타깝게도 이 투어라는 것은 우리가 인터넷으로 예약을 한다던가 나와 있는 정보로 연락을 주는 것이 아니었는데, 간혹 나와 있는 정보들은 이미 낡았거나 연락을 받지 않았다. 즉, 우리는 그곳으로 가서 아무 택시나 붙잡고 택시 투어를 하는지 물어봐야 한다는 소리였다.


 뭐, 지금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나는 인터넷이 터질 때마다 수흐바타르에서의 택시투어에 대한 정보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알게 된 거다. 내가 기차 예약을 잘못했음을.


 처음부터 다사다난하기 짝이 없다. 기차 시간을 언제로 잡아야 할지 고민하던 나는 그만 원래 잡아야 하는 시간의 전날로 예매를 해버린 거다. 그러니까 그건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바로 우리가 타고 온 차를 타고 울란바토르로 가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아래층에서는 지헌이가 얌전히 누워 있었다. 나는 머리에 피가 싹 사라지는 기분을 느끼며 벌떡 일어나 안나에게 연락했다. 도와줘요 안나! 나를 암살시도하려고 했던 건 다 용서해 줄게.

 어떻게 취소를 하고 다시 구매할 수 있을지를 물어보자 안나가 홈페이지를 확인한 후 나에게 도착하면 보이는 역사 내에서 취소하고 다시 구매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당일 1시간 전 취소를 그렇게 해야 위약금을 내고서라도 취소가 가능하다고. 수흐바타르에 가면 할 일이 하나 더, 아니지 두 개 더 생겼다. 취소와 재구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다는 마인드로 드러누운 나는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자 눈을 떴다. 수흐바타르 마을의 삼삼한 풍경이 보였다. 여행에 대한 기대와 불안감이 섞인 오묘한 감정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그 후부터는 역무원분에게 보여주는 구글번역기와 바디랭귀지, 그리고 간절한 눈빛의 향연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적어놓고 캡처해 둔 것들, 이를 테면 '이 표를 취소하고 싶어요.'. '수수료는 얼마나 들까요?', '이 표를 구매하고 싶어요.' 등을 순서대로 보여주고 역무원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자 역무원이 알아서 알아듣고 이것저것 나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몽골어로 되어 있는 이 표를 내가 어찌 알겠는가. 대충 이곳이 이름이겠지, 대충 이곳이 취소 사유겠지 하며 감으로 때려 넣고 정말 모르겠는 곳은 역무원에게 보여주며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해서 얻어낸 이 표가 얼마나 값져 보이던지.


 "누나 진짜 얼렁뚱땅 잘한다."


 바디랭귀지와 눈치, 그리고 간절한 눈빛만 있다면 못할 거 없다.


바디랭귀지와 눈치로 얻어낸 표!


 이제 남은 숙제는 두 개였다. 오늘 저녁에 잘 숙소를 구하는 것과 오늘 택시투어를 해주실 분을 찾는 것! 하나는 굉장히 쉬웠다. 기차를 타고 오는 동안 우리의 앞에는 딸이 한국직장을 다니고 있는 한 몽골인이 있었다. 그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흐바타르에서는 어느 숙소가 좋을지 물었고 그러자 나온 대답은 '역 주변에는 숙소가 많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역 주변에 큰 호텔이 3개 정도 있었고 자잘한 숙소들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중 가장 가까운 곳으로 들어가 트윈룸(90,000투그릭)을 결제했다. 그런데 정말 특이한 숙소다. 우선 침대와 침대의 간격이 굉장히 넓었는데 그냥 침대 하나가 더 들어가도 널널할 정도였다. 그리고 대체 뭐에 쓰면 좋을지 알 수 없는 텅 빈 공간이 많았다. 한국처럼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곳이라면 이곳에서 밥을 먹든 뭐라도 할 텐데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곳이라 지저분해서 돌아다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더 웃긴 점은 이렇게 널찍하게 공간을 사용해 놓고 막상 화장실은 굉장히 작았다는 점이었다.


 뭐, 어쨌든 우리가 오늘 힘든 하루를 보내고 돌아올 숙소는 구했다. 다음은 택시 투어.


 수흐바타르에는 택시들이 많았는데, 역사에서 만난 한 여자분의 말에 의하면 보통 6만 투그릭이면 모든 곳을 돌게 해준다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가격이 아니었다. 투어를 해주려면 적어도 우리가 가는 곳이 어디인지 말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아니 느낌상 모든 택시 기사들이 한국어는 물론이고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


 "Can you speak  English?"


 이 간단한 영어로 알아듣지 못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봤는가. 그러다 정말 마지막으로 택시가 모여있는 곳으로 가서 시도하고 그래도 영어가 가능한 사람이 없으면 그냥 흥정에 성공한 택시를 타자고 합의를 했다. 그때 어물쩡거리던 우리를 본 택시 기사가 우리에게 무어라 소리쳤다. 몽골어로 말했으니 우리는 물음표를 머리에 매달고 있었는데, 한 택시 기사님이 우리 쪽으로 왔다. 나는 다시 한번 영어를 할 수 있냐는 질문을 던졌고 그때 기사님은 핸드폰을 꺼내 들어 번역기를 켰다. 이때 지헌이는 '이분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적어도 소통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고. 우리는 열심히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택시 투어 비용이 얼마고 얼마나 깎아줄 수 있으며 어느 곳을 데려다줄 수 있는지 물었다. 결과는 8만. 오늘 하루 종일 수흐바타르에서 볼거리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곳들을 데려다준다고 확정받았다. 이제 즐기기만 하면 된다!


저세상 공간활용 숙소
지헌이가 먹고 싶다 해서 샀던 핫도그... 진짜 맛없음



국경 앞에서 춤을 추면서

 수흐바타르 택시 투어라 함은 한 택시 운전자와 함께 그곳에서 볼 수 있는 여러 볼거리들을 보면서 설명도 듣고 맛집 추천도 받는 일종의 전일투어다. 아무래도 보장된 사람을 찾기 힘들다 보니 직접 거리에 나가 택시를 잡고 번역기를 돌리며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렇다 보니 항상 이곳이 우리가 아는 곳이 맞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아직 이 택시투어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한 우리는 도착했다는 기사님의 말에 귀중품을 챙긴 후 나갔다. 그러니까, 당연히 돈을 받지 않았으므로 떠나지는 않겠지만 언제까지 기다릴지를 정확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로 가게 된 곳은 사흐니 후틀, 러시아 국경이 보이는 국경 전망대로 후에 기사님이 설명해 주기를, 이곳에서 칭기즈칸이 똑똑한 왕비인 '홀랑'을 만났다고 했다. 조금만 올라가면 저 멀리 꼬불꼬불한 셀렝게 강과 넓은 숲이 보이는데 파란 하늘과 그 아래에 깔려 있는 흰구름 때문인지 넋 놓고 바라보고 싶었다. 지금 당장 보이는 광경이 너무 예뻐 사진을 찍었는데 좀만 다른 곳으로 가면 이곳의 광경은 또 다른 느낌이라는 생각에 사진 찍기를 반복했다. 이 와중에 내 사진첩에는 수많은 내 사진들이 담기기 시작했는데,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간다는 건 이런 느낌이었다는 걸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었다.


 절벽 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일까, 이곳에는 매가 있었다. 내 눈앞에 딱 나타날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만히 풍경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샌가 하늘에 커다란 새 한 마리가 활공하고 있었다. 매 동상이 있는 걸로 보아서 실제로 매가 이곳에 살고 있긴 한 것 같았다. 그야, 매를 실제로 본 적이 없으니 아무리 커 보여도 저게 매인지 그냥 새인지 알 수 있나.



 그런데 어디선가 미세하게 음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올라갈 맛이 나는 울퉁불퉁한 절벽 위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나무로 된 데크 위에서 사람들이 단체로 노래를 틀고 춤을 추고 있었다. 신나는 몽골 전통노래에 맞춰 얇고 속이 비치는 담요를 펄럭이고 원을 그리면서 노는 모습을 보니 나도 그 속에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제대로 춤을 춰 본 적이 거의 없고 웨이브 대신 배치기를 하는 나지만 그래도 저런 '자유롭게 움직여요' 판에는 껴봄직하지 않나. 노래가 끝날까 봐 서둘러 성큼성큼 내려간 나는 대뜸 그 가운데로 뛰어 들어가 아무렇게나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끝내려고 준비하던 사람들이 환호를 지르며 내 서투른 몸짓에 맞춰 춤을 췄다. 정말 단언컨대 이렇게 덩실덩실이라는 단어에 맞는 춤도 없을 거다. 덩실덩실 소재가 떨어진 나는 서둘러 내 앞에서 똑같이 덩실덩실 춤추고 있던 분의 손을 잡고 마무리 인사를 했다. 그러더니 돌아갈 준비를 하던 할머님이 우리 손에 과자들을 쥐어줬다. 덩실덩실 몇 분에 과자와 즐거움이라니 완전 이득 보는 장사였다.



 나는 이곳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이 딱딱한 절벽에 걸터앉아 1시간은 뒹굴거리며 자연을 즐기고 싶었다. 물론 가이드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라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원하는 만큼 있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시간이라는 게 있지 않나. 수흐바타르의 다른 곳도 가보고 싶었던 나는 약간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택시로 돌아왔다. 내려오는 순간에도 '너무 늦어서 가버린 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담배를 하나 태운 기사님은 택시 안으로 들어가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계시더라. 그렇게 우리는 두 번째 장소인 기념비로 갔다.

 무슨 기념비인지는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칭기즈칸의 아내와 관련된 기념비가 아닐까 하고 추측할 뿐. 수흐바타르의 전경이 모두 내려다보이는 이곳에는 은색빛을 내는 여왕의 동상이 하나 있었는데 어찌나 크던지 그 앞으로 가면 얼굴을 보느라 고개가 아플 정도였다. 얼마 올라가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부터 시내가 전부 보였다. 정말 작은 도시구나. 이렇게 넓은 곳에 이렇게 작은 도시라니. 아이러니했다.




이 감자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합니다

 에제모뜨. 한국어로 번역하면 '엄마의 나무'. 몽골인들은 샤머니즘을 많이 믿고 있는데 그래서 어느 곳을 가도 나무에 형형색색 끈들이 묶여 있는 걸 볼 수가 있었다. 이를 테면 다르항의 꼭대기에서도 그러했고 기차를 타고 가다가 밤에 잠시 정차했던 곳에서도 그러했다.

 엄마의 나무는 수흐바타르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고 다른 곳에 비해서는 꽤 잘 포장된 도로로 갈 수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허허벌판에 멈춰 선 기사님이 우리에게 번역기를 보여주셨다.


 '이곳에서는 말이 빨리 달립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여기서 말을 빨리 탈 수 있다는 건가? 주변에 말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자동차와 거기서 내린 몇몇의 사람들이 한 곳을 바라보며 두런두런 대화를 하고 있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이 환호했다. 저 멀리서 3마리의 말들이 뛰어오고 있었고 그 위에 올라타 있는 3명의 사람, 정확히는 아이들이 말을 채찍질하며 달리고 있었다. 곧 있으면 있을 나담축제를 준비하는 걸까, 아니면 이것 역시 일종의 대회인 걸까. 3마리의 말이 지나간 곳에 흙먼지가 피어올랐고 그 뒤를 이어 간헐적으로 말들이 달렸다. 저렇게 빨리 달리면 어떤 기분일까.


 한참 동안 말들을 기다리다 맨 뒤에서 달리는 어른들의 말까지 본 이후 다시 차에 올라타 다시 에제모뜨로 향했다. 기사님은 우리를 입구 쪽까지 데려다주신 후에 우리에게 잘 보고 나오라 말했다. 바쳐진 지 오래된 음식과 술과 우유들의 냄새가 났다. 사람들이 절을 하는 곳으로 들어갔다가 엄마의 나무가 있다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주위에 큰 나무가 굉장히 많아서 큰 나무를 볼 때마다 '이게 혹시 엄마의 나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다. 당연하게도 진짜 엄마의 나무는 그 크기부터가 남달랐다. 나무 주위를 세 바퀴 돌고(몽골인들은 3이라는 숫자를 중요하게 여김) 우유와 술을 뿌리며 소원을 빈 후 목례를 하면 그것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이 정보는 이후에 알게 된 것이라 실제로 행하지는 못했다. 물론 나무보다는 그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는 수많은 소들에게 정신이 팔린 것도 있었다.



 배가 고프다고 생각될 때 즈음 늦은 점심 전 마지막 장소로 가게 됐다. 넘트 휴양림. 쭉 뻗은 도로의 양 옆으로 울창한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곳이었다. 대뜸 이곳에서 주차를 한 기사님이 우리에게 번역기를 보여줬다.


 '이 감자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건 시비인가?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기사님을 바라봤고 기사님은 특유의 뿌듯하고 덤덤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내 물음표 가득한 표정을 본 기사님이 다시 번역기를 돌렸고, 그러자 '사람들이 이곳에서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는 온전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대체 어떻게 번역이 되면 사람이 감자가 된단 말인가. 이때 이후로 나는 종종 '사진 찍기 좋아하는 감자'가 되어 버렸다. 대학교 수업을 들으며 나 스스로를 '말하는 감자'라고 말하고는 했는데 설마 여기서 들통날 줄이야.


 아무튼 사진 찍기 좋아하는 감자 1과 지헌이는 휴양림 안으로 들어갔다. 코 안으로 훅 들어오는 청량한 향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나무들이 빽빽하고 무질서하게 서 있는 것이 얼마나 오타쿠의 심장을 간지럽히는지. 밤이었다면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났을 것 같은, 낮이라도 혼자라면 뭔가를 발견할 것 같은 그런 으스스하고 좋은 분위기였다. 공포영화에서 나올 것 같은 구도로 사진도 찍다 문득 인터넷에서 이곳에 숙박을 할 수 있는 통나무집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거기서 숙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숲에 둘러싸인 통나무집을 봐야겠다는 의지로 꿋꿋하게 걸었다. 그러다 초록색 형광 미끄럼틀이 있는 집을 발견하게 된 거다.


 사람이 실제로 살고 있는 곳인지 숙박할 수 있게 해주는 곳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우리가 이 집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집 앞까지 가보고 싶어 걸어가던 중 집 바로 옆에 누워 있던 커다란 개가 벌떡 일어나 우리를 향해 마구 짖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지헌이의 말을 듣고 자세히 보니 개에게는 목줄이 없었는데, 한 마디로 우리가 일정 이상 더 접근하거나 수상하게 굴면 언제든지 달려와서 물 수도 있다는 거였다. 사실 바로 물어버리도록 훈련받았을 것 같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 목숨을 내놓을 수는 없었으니 우리는 허둥지둥 그곳을 벗어나 택시로 돌아왔다. 빨리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사막과 숲, 그 비대칭

소의 혀


 든든히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 대체 어디로 가려는 건지 모르겠으나 이 작은 소형차로 이리도 거친 비포장도로를 거칠게 달려도 괜찮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팔을 창문 밖으로 쭉 뻗어 동영상을 찍으니 레이싱이 연상되는 생동감 넘치는 영상이 만들어졌다. 아무리 흙길이 만들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쉴 새 없이 위아래로 흔들린다던가 바퀴가 제멋대로 굴러간다는 점에 있어서는 이 차의 수명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뭐, 사실 그 생각을 오랫동안 한 건 아니고, 나는 이렇게 신나게 달리는 것에 마냥 좋아하긴 했다.


 허여링 엘스. 두 개의 모래라는 뜻을 가진 이곳은 푸릇한 녹색 초원 가운데에 있는 두 개의 모래 언덕이다. 인공적인 것이 아니라 100%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모래 언덕이라고 하는데, 사막이 연상되는 모래 언덕에 앉아 초원을 바라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나는 이전에 편의점에서 산 맥주 한 캔을 들고 모래 언덕을 등반했다. 다리가 푹푹 빠지기 때문에 빨리 걷기도 힘들었고 잘못하면 앞사람이 열심히 걷느라 생긴 모래가 뒷사람에게 고스란히 폭풍으로 변환되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필요했다. 나는 아무런 흔적도 없는 깨끗한 모래에 발자국으로 농구공을 그리기도 하고 구덩이를 연상시키는 원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바깥쪽으로 발을 차며 뛰어다니기도 했다. 왜 굳이 그런 원을 만들고 싶었냐고 한다면 그냥 하고 싶었다. 별 이유가 있겠나 모래 놀이를 하는데.


 나는 미지근하다 못해 뜨거운 모래에 닿아 뜨거워져 버린 맥주를 홀짝이며 바로 옆에 있는 또 다른 언덕과 그 너머로 펼쳐져 있는 초원을 바라봤다. 어째서 이곳에 모래 언덕이 생겼는지는 명확히 알지 못하지만 이 모래 언덕이 수흐바타르가 가지고 있는 작은 특성으로만 남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수흐바타르에서 가장 건조한 모래 언덕 다음으로 가게 된 곳은 수흐바타르에서 가장 나무가 많고 울창한 토진 나르스 국립공원, 한국인에게 익숙한 단어로는 유한킴벌리 숲이었다.



 1996년, 수흐바타르에 대형 산불이 발생했고 불타버린 침엽수림을 복원하기 위해 몽골 정부가 한국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2003년 한국의 유한킴벌리와 동북아산림포럼이 공동으로 산림 복구를 시작하였고 현제 여의도의 11배 면적에 달하는 지역에 소나무 숲을 조성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숲이 아니기 때문에 굉장히 질서 정연하고 일렬로 쭉 늘어져 있으며 길이 나 있다는 것이 그 특징이었다. 이 유한킴벌리 숲은 산책할 수 있는 코스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우리는 그 안내도를 보지 못하고 그대로 앞으로 쭉 나아갔다. 그런데,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거다.


 "아니야. 분명 둥글게 돌아갈 수 있을 거야. 끝까지 가보자."


 주위에 사람이라고는 없었고 길도 어디가 끝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렇게 주장했다. 이곳이 갈 수 없는 곳이라면 분명 표지판이 있었을 거고 이렇게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다는 건 이것 역시 산책로의 일부일 거라고. 이대로 가다가 러시아 국경을 넘는 거 아니냐던 지헌이는 마지막으로 왼쪽으로 꺾일 것이라 믿었던 길이 오른쪽으로 휘어지고 왼쪽으로 휘어지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만 돌아가자고 말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나는 매우 아쉬웠지만, 매우 매우 아쉬웠지만, 힘들다고 하는 친구를 나 역시 끝을 확신할 수 없는 곳으로 데리고갈 수는 없었기 때문에 더 나아가는 것을 포기했다.


 알고 보니 우리가 가게 된 곳은 4.7km인 3코스였다. 결국 대략 5km만 걸으면 돌아올 수 있던 거였잖아! 지금까지도, 아마 앞으로도 같이 가주지 않은 것에 대해 이야기할 나에게 다음에는 유한킴벌리 숲 전체를 몇 바퀴 돌자고 해도 묵묵히 따라가 주겠다는 김지헌 군. 유한킴벌리 숲이 아니어도 따라와 주시길 바랍니다.




택시 투어로 갈 수 있는 비밀의 장소... 근데 이제 모기와 함께


 국경과 가까운 곳이었다. 이미 닫힌 곳이기도 했다. 뭐 사실 이곳이 돈을 내고 들어갈 정도로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곳이었냐고 한다면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닫혀 있어 들어갈 수 없는 상황에서 기사님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문을 열어준 것은 다소 재미있었달까. 이것이 바로 인연인가 싶기도 했다. 우리끼리 이곳에 오게 되었다면 문 닫은 박물관을 들어갈 생각이나 했었을까.


범죄자 st


 마지막 장소는 셀렝게 강였다. 호텔로 간다고 하는 기사님께 호수를 보여달라고 이야기한 우리는 곧이어 화물을 실은 기차가 지나가고 있는 선로를 따라 걷게 되었다. 운행되지 않는 곳도 아니고, 방금 우리의 눈으로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 길을 그대로 걷고 있다니. 마침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지고 있는 상태였고 선로를 따라 걷는 우리는 꽤 낭만적이었다.


 유일하고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면 모기. 에이, 여행을 갔는데, 그리고 강 근처로 갔는데 모기는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신 분들이 있다면 한 번 이곳으로 와보기를 바란다. 단순히 '모기가 많네.' 수준이 아니라 그냥 '공기반 모기반'이라고 생각하면 될 정도로 모기소굴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쉴 새 없이 손을 휘저어도 워낙 모기가 많아서 휘저어지는 대로 내 몸에 모기가 달라붙고 심지어는 귀 안으로도 들어가려고 해서 정신없이 머리를 흔들어야 했다. 사진을 찍고 싶다는 일념하에 열심히 사진을 찍었으나 그 순간마저도 평화롭지 못했고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며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본다는 건 픽션이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생각에 서둘러 모기소굴을 빠져나왔지만, 모기들은 우리를 놔주지 않았다. 우리가 그 긴 선로를 걷는 동안에도, 심지어는 차 안에 들어갔을 때조차 모기들은 우리를 공격했다. 나는 뒷좌석에 앉았는데 앞 좌석은 특히 난리였던 것이, 두 사람이 쉴 새 없이 수건과 옷으로 여기 탁 저기 탁 하며 모기들을 쫓아내기 바빴다. 그게 어찌나 웃기던지.



 수흐바타르 즉석 택시 투어. 솔직히 안정적으로 투어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컸지만 결국 중요한 건 시도해 보는 것 같다. 이상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시도해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내가 여기서 택시를 타고 원하는 곳을 돌아다니던 그것들을 한데 묶어 한 사람과 하루종일 여러 곳을 구경하던 똑같은 거 아닌가. 거기에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만이 알고 있는 꿀팁이나 장소를 가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니까 만약 수흐바타르에 택시 투어를 가고 싶다면, 혹은 이외의 장소에서도 택시 투어와 같은 것들이 있다면, 명확한 정보가 없어도 일단은 걷고 묻고 시도해 보는 게 어떨까. 의외의 멋진 경험을 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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