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 Oct 01. 2023

나뭇가지에 꽂아 먹는 마시멜로 캠프파이어

즉흥러세명이모이면여행이즐겁다#2

강냉이를 털어버리겠다며 협박하는 몽골 아이


 아침 7시에 일어나 빠르게 준비하고 8시에 운영하는 기차를 올라탔다. 아무래도 전날에 구매했기 때문에 우리가 탈 수 있는 자리는 위쪽 자리 두 개였는데, 나는 수흐바타르에 올 때 한 번 겪어봤었고 나름 편안하고 좋았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으나 두 사람 모두 위쪽에 있을 때도 편안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조금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타기 전에 서둘러 이부자리를 정리한 후에 가방을 위쪽에 넣어두고(가방을 넣을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음) 1층 테이블에 먹거리들을 놓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가 울란바토르에 도착할 때까지 아래층에 아무도 도 들어오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는 2층에서 편하게 아래로 대롱대롱 다리를 내어 놓고 수다를 떨거나 팔만 아래로 내려 주전부리를 집어먹는 등 자유롭게 한 칸을 사용할 수 있었다.


 여기서 잠깐 기차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면 기차 화장실은 객실의 양 끝에 있는데, 배설물을 기차 아래로 그대로 내보내버리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기차가 정차하고 있을 때는 화장실 문을 잠그고 들여보내 주지 않았는데 한국 기차나 비행기에서도 이런 방식이 많기 때문에 이것은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물을 사용할 수 있는가'였다. 눌러도 나오지 않고 돌리려고 해도 돌려지지 않는 작디작은 세면대. 처음에 나는 낡은 기차라 고장 났다고 생각하고,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이 경험을 되살려 처음 기차를 타보는 지헌이에게도 '한 번 세면대를 이용해 봐라.'라고 말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친구 역시 물을 사용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정답은 '아래에서 위로 강하게 누르기'였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물이 나오는 곳에 뻑뻑한 막대가 있는데, 그걸 힘줘서 위로 누르면 그 사이에서 물이 나오는 방식이었던 거다. 아니, 그걸 어떻게 보자마자 파악하냐고. 심지어 손의 단단한 부분으로 강하게 눌러야 간신히 나오기 때문에 내가 꼼지락거린다고 알 수 있는 구조도 아니었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방식이었고 물을 사용하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온 힘을 다해야 하는 비효율적인 방식이었지만 어쩌면 물을 절약하기 위한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어느 정도 이런 방식에 익숙해진 나는 엄지손가락과 이어진 손바닥 부분으로 버튼을 강하게 누르면서 손을 기울여 두 손에 물을 받는 고난도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렴,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약 9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가는 것은 생각보다 지루하다. 밤이라면 모를까 어느 정도 일어난 사람들에게 다시 9시간 동안 자라고 하면 그건 웬만한 사람이 아니면 힘들지 않을까. 물론 나는 빈둥거리는 것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열심히 빈둥거렸고 지헌이가 가지고 온 책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고 만난 지 한 달 채 되지 않아 서로 아는 것이 거의 없는 두 사람의 대화도 그 시간을 채우기에는 충분했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넓은 곳이 아니어도 이 작은 기차 안을 돌아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거다.

 잠든 지헌이를 두고 기차 내부를 걸었다. 마침 그전에 돌아다니다가 나에게 초콜릿을 받아간 아이들이 보였다. 나는 보드판에 무언가를 그리려 노력하는 아이들의 맞은편에 쓱 앉았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자 아이들이 보드판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보드판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참고로 그림? 그다지 잘 그리는 편은 아니다. 심지어 이렇게 즉석으로 빠르게 그려야 하는 것에는 전혀 익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평소에 그림을 그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에 '영어단어'를 말하기 쉬운 동물들을 그렸다. 뽀글거리는 양을 그리니 남자아이가 "sheep!"라고 외쳤다. 그러자 어느새 내 옆으로 온 여자아이가 그 말을 따라 했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따라 했다. 양, 말, 닭, 병아리, 돼지, 새, 염소, 토끼, 개... 허접한 그림에도 아이들은 이게 무엇인지 외쳤다. 심지어 내 그림에서의 개와 염소의 차이는 그저 뿔의 유무일 뿐인데도 말이다. 오히려 다른 것도 그려달라며 독촉하기에 나는 열심히 머리와 펜을 굴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그림솜씨를 뽐냈다. 별 거 아닌 그림에도 즐거워해주신 아이님들 감사합니다.

 아이디어가 떨어진 다음에는 색깔 놀이를 했다. 이런저런 물건을 가리키며 'red', 'orange', 'white', 'pink'를 외쳤고 그럼 아이들은 다른 물건을 가리키며 색을 외쳤다. 작은 기차방 한 칸에서 소소한 영어 교실이 열렸다. 지나가던 아이들도 힐끔거리며 우리 방 안을 살폈다.



 몽골 아이들은 매우 강했다. 남자아이는 여자 아이에게 계속 장난을 치면서 챙겨줬는데, 한 번은 아이들이 기차에서 내리기 전에 우리 방 안으로 들어와 대기한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의 무릎 위에 앉아 있던 여자 아이는 돌연 일어나더니 자신의 오빠를 가리킨 후 자신의 이빨을 뽑는 행동을 했다. 요약하자면 '네 강냉이를 털어버리겠다.' 정도가 되려나. 기겁한 내가 그러지 말라며 아이의 손을 잡자 아이는 나를 보지도 않고 손을 뿌리친 후 다시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세상에나.


 기차에서 내린 후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우리가 직접 택시를 타고 안나의 집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몽골 택시는 딱히 '나는 택시임'과 같은 표시가 없기 때문에 그저 택시가 앞에 설 때까지 손을 들고 있을 수밖에 없는데, 카카오택시가 익숙한 사람들을 위한 앱으로는 UBCab이 있다. UBCab의 장점으로는 계속 하염없이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고, 단점을 이야기하자면 한국보다는 UBCab에 등록한 택시의 수가 적다는 것, 목적지를 이야기하고 아예 가격을 지정할 수 있는 몽골 택시와는 달리 막히면 막히는 대로 돈이 나간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몽골 택시는 길이 막힌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참고로 UBCab을 사용하려면 몽골 번호가 필요하는데, 나는 안나의 번호를 사용했다.



안나의 집에서 안나가 만들어 준 보다타이 호오락을 먹고 안나의 차를 타고 테를지로

 참고로 보다타이 호오락은 안나 삼촌 시골집에서 먹은 양고기 야채볶음밥이다. 차 기름을 가득으로 채워넣어 준 나는 안나 대신 내비게이션을 보며 노래를 불렀다. 테를지 자체에 대한 기대도 있지만 테를지에서 말을 탈 수 있다는 점이 너무 기대됐기 때문이었다. 테를지로 향하는 길에서는 중간에 데이터가 전혀 터지지 않기도 했는데 다행인 점은 어차피 큰길은 하나라 헷갈릴 일은 적었다. 겨울에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터 만들어둔 울퉁불퉁한 길을 지날 때면 '와 여기서 미끄러지면 그대로 나락 가겠다'라는 생각에 왜 난간을 설치하지 않은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도착한 곳은 게르가 줄 지어 있는 숙소였다. 게르 안에 4개의 침대가 벽을 붙인 채로 있었고 가운데는 몸을 데울 수 있는 화로가 있었다.



 주인분은 장작을 가지고 와 이곳에 불을 붙여주셨다. 그냥 화르륵하고 붙을 것 같았지만 이 난로 안에 불을 붙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지. 한참을 기다리다 보니 점점 게르 안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주인분은 캠프파이어를 준비해 줄지 물어봤다. 이때 밖은 비가 올 듯 말듯한 분위기였지만 단 세 명이서 즐길 수 있는 캠프파이어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던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화로에 불을 붙이는 것도 어려운데 캠프파이어를 만드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운지. 생존 게임에서는 불 붙이는 것이 가장 쉽고 간단하며 다른 활동을 위한 기본적인 활동으로 비치는데 맨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고는 순 거짓말이다. 다량의 땔감을 가운데 두고 산소가 나가지 못하게 크고 긴 나무판자로 삼각형을 그리며 산을 쌓는다. 그리고는 불이 잘 붙는 발화제 역할을 하는 땔감을 이용해서 불을 붙인 다음 계속해서 토치로 불을 공급해 줬다. 토치에서 불이 나올 때 특유의 소리가 한참 동안이나 계속되나 싶더니 드디어 얼굴 부분이 뜨끈해졌다. 불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주인분이 해주신 몽골식 제육을 먹고 나온 우리는 술을 마셨다. 지헌이가 사 온 칭기즈칸 보드카에 토닉워터를 섞어 마시니 확실히 토닉워터의 힘이 느껴졌다. 그러다 보드카를 조금 불에 던지기도 했다. 순간적으로 화르륵 타오르며 열기가 나에게로 확 뻗쳤다. 타닥타닥 불타는 장작, 그리고 마시멜로. 마시멜로! 불에 구워 먹어야 한다며 샀던 마시멜로가 있었지. 그런데 역시 초짜는 초짜다. 마시멜로만 잔뜩 샀지 그걸 꽂아 먹을 나무젓가락은 사지 않았다. 그나마 있는 건 술과 토닉을 섞기 위해 가지고 온 젓가락 하나인데, 그걸로 모두가 사이좋게 나눠먹을 수는 있지만 그래도 다른 수가 없을까. 그러자 안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려보더니 얇은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왔다.


 "여기다 꽂아서 먹으면 되지."


 나뭇가지의 뾰족한 부분에 마시멜로를 꽂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토치로 구웠다. 아무래도 저 활활 타오르는 불에 직접 다가가 마시멜로를 익히기에는 꽤나 불이 거셌기 때문이었다. 어디 가든 마시멜로 굽기는 자신의 담당이었다는 지헌이는 토치와 마시멜로의 거리를 적당히 조절해 가며 요리조리 잘만 구웠다. 바삭하면서도 쫀득하게. 그게 멋있어 보였던 나는 어떻게 하는지 유심히 관찰한 후 직접 마시멜로 굽기에 동참했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렵더라. 가장 중요한 건 인내심이었다. 잘 익지 않는 것 같다고 해서 불을 마구잡이로 들이대면 연약한 마시멜로의 겉 부분은 홀라당 타버리고 말았다. 육안으로 변화가 보이지 않아도 변화가 있다고 믿고 꾸준히 돌려가며 시간을 들여야 완성되는 것이 바로 진정으로 '구운 마시멜로'라고 부를 수 있었다.

 무튼 우리는 그렇게 한참 동안 마시멜로와 술, 그리고 수흐바타르에서부터 먹었던 대량으로 포장된 딸기맛 웨하스를 먹었다.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하고, 결국 오늘도 몽골의 아름다운 별을 보지 못한 지헌이의 슬픔을 뒤로한 채 우리는 게르 안으로 들어와 잠들었다.




말타기를 기다리는 세 아이들

 말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아니라 진짜 말이 울고 바닥을 두들기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번뜩 깬 나는 주위를 불러봤다. 어제 먹고 널부려놓은 술병들과 더운지 이불에서 탈출한 안나가 보였다. 나는 추워서 최소로 가지고 왔던 내 옷가지를 끼어 입고 이불에 돌돌 말려 자고 있었는데 반팔로 자고 있는 안나. 가끔 너무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대화해서 잊고는 하는데 역시 몽골인이었다. 몸이 뻐근해 스트레칭도 할 겸 테이블을 치우고 빈 병들을 게르 안에 쪼르르 나열했다. 그리고 몸을 쭉쭉 피며 스트레칭을 한 뒤 다시 이불 안으로 들어가 나른함을 즐기고 있자니 두 사람이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어제 못 먹은 몽골 음식 먹자."


 여행을 오면 한식을 멀리하고 그 나라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먹으려고 한다는 김지헌 군. 우리는 초이왕(양고기 볶음국수)과 호쇼르(납작한 양고기 튀김만두)를 시켰다.



  게르 안에는 화장실이 없다. 대신 식당이자 주인분이 살고 있는 나무집의 1층에 화장실이 있는데 이 화장실이라 함은 나무판자로 이루어져 있다던가 분비물들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지 않아 파리들이 득실득실한 그런 곳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 화장실이 맞다. 알고 보니 안쪽에는 샤워실도 있었는데, 이틀 있을 이곳에서 짐을 바리바리 챙기는 짓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용하지는 않았다.

 안나는 숙소 주인분을 통해 '승마 체험'을 예약했는데, 이곳 자체에서 승마체험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 멀리서 누군가가 말을 데리고 와야 한다고 했다. 때문에 우리는 말과 말의 주인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한국에서 한창 하고 있는 퀴어퍼레이드에 올해도 가지 못한 것에 슬퍼하며 대신 무지개 색깔 해먹에 누워 시간을 보냈다.


 언제 올까? 대체 언제 올까?


 빨리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기다리기를 한창, 드디어 안나가 이제 가자고 말했다. 말이 온 거다.



작가의 이전글 수흐바타르에서는 간절한 눈빛과 춤과 통역기만 있으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