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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Oct 13. 2023

몽골에서는 우산을 쓰면 안돼요

즉흥러세명이모이면여행이즐겁다#4

우산을 쓰고 있는 내가 이상해

 언젠가 몽골인들이 비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적이 있었다. 친구들과 다 같이 밖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으나 나 홀로 '으악! 비 오는데?'라고 외치고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음에 당황했던 사건. 예쁜 옷을 차려입고 앞에 둔 술잔에는 비가 한두 방울씩 들어가고 있는데 개의치 않고 수다를 떠는 친구들과 그 사이에서 허둥거리던 나.

 그때 내렸던 비는 객관적으로 그리 굵지 않았고 그렇기에 나는 침착한 친구들을 보며 '역시 이 정도 비에는 끄덕하지 않는군'이라는 말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위에서 굵은 빗방울들이 몰아치고 있는데 태연하게 헤드폰을 쓰고 흙탕물을 걸어가는 건 '비 맞는 것에 익숙하다'라는 말로 해결하기에는 좀 심한 구석이 있지 않나. 몇십만 원짜리 헤드폰이 비를 맞으며 점차 망가지고 있든 말든 묵묵히 음악을 즐기며 제 갈길을 가는 그 몽골인들을 봤을 때의 심정이란.

 "몽골 비는 깨끗하니까 괜찮아."

 그렇게 말했던 안나 역시 이런 폭우에 헤드폰을 무방비로 방치하고 있었다는 말에는 놀란 표정을 지었으니 말 다했다.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비가 잦아들면 우산을 쓰고 있던 나는 왠지 내가 이상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두가 우산을 쓰고 있지 않은 이 나라에서는 우산을 쓰고 있는 내가 이상한 거다.


 딱 이맘때쯤, 그러니까 7월 초쯤이 되면 울란바토르에는 많은 양의 비가 내린다. 우리나라 역시 우기에는 비가 많이 오는 편이라지만, 교통체증이 심한 이 나라는 도로 상태 역시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라 그렇게 비가 많이 왔을 경우 주변이 온통 흙탕물 투성이가 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비는 위에서 떨어지고, 강한 바람으로 인해 대각선 방향으로 우산을 들고 있어야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전혀 고르지 못한 도로 상태로 인해 곳곳에 생겨난 웅덩이를 요리조리 피해야 했고 동시에 거칠게 달리는 차들로 인해 우리를 덮칠 듯이 날아오는 흙탕물 쓰나미 역시 피해야 했다.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차의 속도와 이곳의 상태를 가늠해 서둘러 위험지역을 벗어나는 방법이 제일이었는데 그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긴 구간이 위험구간으로 만들어져 있을 경우에는 차가 내쪽으로 오는 타이밍에 맞춰 우산을 옆으로 돌려 흙탕물을 막았다. 그야말로 다이나믹. 흙탕물을 막아라! 게임을 하는 기분이었다.

 어느 정도 비가 잦아들자 지헌이는 위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옆에서 날아오는 흙탕물보다 낫다며 아예 우산을 도로 쪽으로 치워버렸고 나는 점점 생기는 묘한 요령에 두 가지를 모두 피해보겠다며 열심히 뛰어다녔다. 결과적으로는 뭐, 둘 다 쫄딱 젖어버렸지만.


 왜 택시를 타지 않았냐는 말에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겠다. 안나 덕분에 사용할 수 있는 택시앱은 정말 비상시에 쓰는 것이 적당했기 때문이었다. 몽골 택시의 특징으로 말하자면 시간과 거리를 체계적으로 계산하는 한국 택시와는 달리 오로지 '거리'만을 계산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만약 내가 있는 곳에서 나랑툴 시장으로 가는 비용을 20,000투그릭으로 합의를 봤다면 가는 길에 차가 너무 많아서 예상했던 시간보다 1시간이 더 걸리든, 사고가 나서 다른 쪽으로 빙 둘러 가야 하든 20,000투그릭으로 갈 수 있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차가 막히는 울란바토르에서는 아무도 택시를 탈 수 없을 거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그 택시들이 모두 '정식 택시'가 아니라 그냥 택시 기사 노릇을 하는 일반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앱의 경우에는 한국 택시처럼 앱에 정식으로 등록이 되어 있는데, 때문에 '거리'와 '시간'을 동시에 계산하게 되고 몽골의 흔한 다른 택시들보다 가격도 더 나간다. 그래서다. 우리는 그 애매함 때문에 울란바토르를 걸어서 돌아다니기로 했다.


나랑툴 시장


 비 오는 날이라도 문은 연다. 내가 너무나도 가보고 싶었던 곳이자 안나가 웬만하면 가지 말자고 나를 말린 곳, '나랑툴 시장'이다. 안나가 가지 말라고 한 이유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굳이 거기까지 가서 살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것이었고 하나는 사람도 많고 복잡해서 가기 싫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나 혼자 가면 잔소리 폭탄을 들을 것이 분명하기에 나는 지헌이가 오기 전부터 꼭 나와 함께 나랑툴 시장을 가자고 이야기했었다. 우산을 쓰고 열심히 걸어서 도착한 이곳은 내가 인터넷에서 본 것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비가 많이 왔기 때문에 균일하지 않은 도로에는 엄청난 웅덩이들이 생겼는데 그 웅덩이를 피해서 가자니 천막에서도 물이 떨어져 위아래를 끊임없이 살펴봐야 했다. 이곳에 팔고 있던 장화가 어찌나 부럽던지.

 어떤 글에서 나랑툴 시장은 짝퉁 시장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나에게 진품과 가품을 구별하는 능력 따위는 없었지만 적어도 'Gust do it'을 본 순간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좁은 길목에 우산까지 쓰고 있으려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싼 짝퉁 옷들이 즐비한 곳을 지나고 나면 내가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전통옷'을 파는 곳이 나왔는데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우리가 한국인임을 귀신 같이 알아봤다.


 "한국인? 안녕하세요~"


 내가 전통옷을 구경하고 있으면 그런 나를 유심히 보고 있다가 스윽 다가와 옷을 하나 보여줬다. 내가 너무 화려한 무늬들을 보며 고개를 저으면 미련 없이 돌아섰다가 또 다른 옷을 보여주며 "이거는?"이라고 말하는데 매우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심지어는 엄청 작은 옷을 함께 보여주며 "Baby! Baby!"라고 외쳤다. 아니 세상에, 내가 아기옷을 살 것처럼 보였나. 당황한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Ah? Baby? No baby!"


 그러다 이런 화려한 옷들 사이에 간혹 내 맘에 드는 옷들이 있었는데 옅은 고동색 옷에 짙은 고동색 띠가 둘러져 있는 옷이었다. 아래에 바지를 입을 수 있다는 점도 맘에 들었던 나는 그 옷을 입어봤고, 가격을 물어봤다. 얼마였더라. 12만 투그릭? 바가지가 분명한 그 가격에 가격 협상을 기가 막히게 잘한다는 지헌이가 나섰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 만만치 않다.


 "가격을 서로 협상할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럴 마음이 전혀 없어!"


 나는 가격 협상 같은 것들을 전혀 할 줄 모르니까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는데, 이곳의 상인들은 상당히 굳셌다. 그러니까, 고집이 셌다는 말이다. 한국인은 어쨌든 사게 된다는 일종의 경험치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전혀 아쉽지 않은 것인지, 가격을 낮춰서 물어보면 한국식으로는 '에이잉~'같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젓고는 바로 계산기를 가져갔다. '그건 안되고 이 정도는 어때.' 식의 티키타카가 이뤄지지 못하게 아예 차단해 버리는 거다. 나로서는 굉장히 흥미로운 반응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가 만만해 보였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이 옷 최고!'라는 반응을 보여 가격이 어떻게 되었든 살 것 같았던 것일까. 혹은 가격 협상을 그냥'해보고 싶었던' 사람들처럼 보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로 우리가 사든말든 상관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이 단호한 사람들로 인해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냥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굉장히 매력적인 옷이기는 하지만 굳이 엄청난 바가지를 씌워지면서 사고 싶지는 않았다.


 지헌이의 경우에는 한 블로그에서 발견한 '말채찍'을 사고 싶다고 말했다. 이왕 기념품을 살 거면 그런 종류의 것들을 사고 싶다고. 그런데 이 나랑툴 시장이라는 곳은 마치 개미굴과 같은 구조라 내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안에서는 알 수가 없다. 분위기도 비슷하고 파는 것도 비슷해서 내가 이곳을 왔었는지 알려면 나를 '또 왔네'라는 느낌으로 바라보는 상인이 있는지 여부로 판단해야 했다. 즉 지도도 없고 구조도 복잡하고 비까지 와 정신없는 이곳에서 정확히 사고 싶은 것을 발견하기란 상당히 힘들다는 뜻이다. 차마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채찍을 설명할 수는 없었던 우리는 그대로 나랑툴 시장이 어떤 곳인지 절실히 느끼며 시장 밖으로 나왔다.



사우나 최고, 사우나 짱!

 갑작스럽게 우산을 뚫을 기새로 내리쏟아지는 비를 피해 아무 건물이나 들어가자 적막감이 우리를 감쌌다. 택시는 잡히지 않았고 이 비를 뚫고 기숙사로 바로 걸어 돌아간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우리의 기숙사는 '아직도'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 상태라 그다지 아늑한 우리의 공간이라는 느낌도 아니었다. 멀쩡한 상태에서 씻을 때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이렇게 춥고 힘든 상태에서 찬 물로 샤워를 했다가는 몸살에 걸려버릴 게 분명했다.

 나는 추위를 꽤 잘 타는 편인데, 그래서 그런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안타깝게도 이곳에 우리가 이용할 만한 목욕탕이나 온천은 존재하지 않았는데, 대신 '찜질방'이라는 한국 그 자체인 것이 존재했다. 몽골에서 찜질방? 심지어 나는 존재하는 기억 내에서는 찜질방을 가본 적이 없다. 힘들고 지쳐 있는 상황에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장소의 등장이라니. 우리는 각오를 다진 채 다시 비를 뚫고 걷기 시작했다.



 울란바토르 내에 있는 찜질방은 정말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찜질방과 똑같았다. 나는 가본 적이 없어 구체적인 것은 잘 몰랐지만 지헌이의 말로는 그랬다. 가격은 1인당 50,000투그릭(한화 약 20,000원)으로 한국과 비교하면 비쌌지만 그렇다고 이용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우선 입장료를 계산하고 팔찌를 받게 되는데 찜질방 안에서 구매할 때 사용하고 나갈 때 한 번에 계산하는 시스템이었다.

 옷을 받고 탈의실로 들어가 샤워를 한 후 찜질복을 입었다. 속옷은 입어야 하는 걸까 안 입어도 되는 걸까. 알 수 없어서 결국 입고 위층으로 올라가니 네 개의 방이 보였다. 3개는 뜨거운 방, 1개는 차가운 방이었는데 다른 물품들은 한쪽에 두고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되는 핸드폰만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솔직히 말해, 나는 따뜻한 것을 좋아하는 거지 뜨거운 걸 좋아하지는 않는다. 여타 다른 고인물들처럼 뜨거운 곳에서 마치 결의에 찬 사람처럼 김을 내뿜으며 웃을 수 있는 그런 강자는 아니란 소리다. 특히 뜨거운 걸 잡거나 뜨거운 걸 밟는 걸 정말 극도로 못하는데(그러면서 뜨거운 건 잘 먹는 아이러니) 그래서일까 사우나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는 과정이 굉장히 괴로웠다. 서둘러 눈알을 굴려 어디로 가야 할지 결정해서 최대한 뜨거운 부분들이 몸에 닿지 않도록 눕는 과정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뜨거운데 그렇다고 사람들이 조용히 뜨거움을 즐기고 있는 이곳에서 방정맞게 뛸 수는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표정으로 괴로움을 드러내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렇게 힘든 싸움을 이겨내고 자리에 누워있으면 따뜻한 기운이 내 몸 안으로 들어오면서 노곤함이 밀려오는 거다. 후끈한 기운으로 인해 내 전신에는 땀방울이 맺혔는데, 이게 내 땀인 것인지 아니면 물이 맺힌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내 몸이 매끄러워진 것 같다는 착각이 들게 해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나보다는 찜질방에 일가견이 있는 지헌이를 따라 냉방에서 잠깐 몸을 식혔다가 다시 사우나 안으로 들어가면 휙휙 바뀌는 온도에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 결국 나는 '하마터면 기절할 뻔해 자신이 끌고 나왔다던 친구'의 썰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이 몽롱해지고 숨이 거칠어질 때까지 사우나 안에 널브러져 있었다.

 절대 자면 안 된다는 지헌이의 말이 생각났지만(제대로 듣기는 했다. 정말로.) '뜨거워서 화상을 입을 것 같은 고체'가 아니라 '그럭저럭 견딜 수 있는 뜨거운 기체'가 나를 감싸면서 살짝 몸이 붕 뜨는 기분은 그만큼 버텨야 느껴졌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러다 잘못하면 나갈 수 있는 힘조차도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몸을 일으키기는 했으니 괜찮은 거 아닐까.

 그렇게 몽롱하고 나른해진 상태로 '산소방'이라는 곳으로 가자 그렇게 극락일 수 없었다. 적당히 선선한데 이름마저 뭔가 나의 잠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산소방'이니 나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아, 아예 여기서 내일까지 자고 싶다.



 물론 그럴 수는 없다. 나는 피자집이 언제 닫는지 확인한 후 몸을 일으켰다. 생각해 보니 우리는 오늘 점심밖에 먹지 않았다. 저녁으로 피자와 맥주를 마시며 몽골에서의 (지헌이의) 마지막 밤을 보내야만 했다.

 간신히 택시를 잡고 피자를 산 후 안나를 만나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맥주를 사다가 내가 떨궈 모양이 이상해진 피자를 보며 웃고 몽골에서의 여행이 어땠는지를 이야기하고, 비에 쫄딱 젖은 내가 찜질방을 검색하고 있을 때 지헌이가 사 온 샹그리아를 먹으며 그렇게 우리의 밤이 지나갔다.



비행기 출발 시간 2시간 전! 근데 차가 막히네

 기숙사에서 신나는 마지막 밤을 보내고, 비척비척 일어나 방 안을 치웠다. 어제 신나게 논 흔적들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이곳에 지내면서 귀찮다는 이유로 던져놓은 쓰레기와 양말까지. 지헌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자, 내가 이제 기숙사에서 나와 안나의 집으로 가게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공항까지 데려다주겠다는 안나의 말에 안심하며 뒹굴거리다, 체크인 3시간 전부터 집을 나섰다. 어제 간헐적으로 내렸던 비가 오늘도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아마 내일부터 장마가 시작될 거라는 안나의 말에 나는 내일부터는 사막에 있을 거니까 괜찮다고 말했다.


 "좀 일찍 도착하면 밥 먹자."


 그렇게 말하고는 안나의 차에 탄 우리는 가서 무얼 먹을까, 그러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놈의 울란바토르, 차가 엄청 막힌다. 원래도 막히는 상황에서 비까지 이렇게 내렸으니 어느 정도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으나 언제나 현실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어느 정도냐고 한다면, 10분이 지났음에도 우리가 이동한 거리가 단 10cm에 불과할 때도 있었다. 사람들은 어디가 횡단보도인지 생각하지 않고 완전히 멈춰 있는 차 사이를 지나다니며 도로를 건너 다녔고 어떤 사람은 아예 차 밖으로 나와 비를 맞으며 담배를 폈으며 어떤 사람은 그냥 도로 한복판에서 스트레칭을 했다. 이 미친 교통체증이 익숙하다는 듯 끼어들고 화를 내며 그렇게 지내고 있는 걸 보며 우리는 웃으며 그냥 차에서 피자를 먹자고 말했다. 어차피 도착해서 먹기는 글렀으니 가는 길에 있는 피자헛에서 다른 종류의 피자를 사서 먹자는 거다. 나쁘지 않은 마무리였다.

 나는 더 이상 차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우산과 함께 차에서 내려 피자헛으로 뛰어갔다. 문제점이 하나 있다고 한다면, 피자헛으로 가기 위한 경로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본래라면 그냥 직진하면 되었을 길이 강물을 연상캐 하는 엄청난 양의 흙탕물로 인해 사라진 거다. 방금 전까지 이게 몽골인들의 특징일지도 모른다고 지칭했던 사람들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차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간 나는 피자헛으로 무사히 도착해 맛있는 피자를 시켰고, 동시에 안나에게서 '갑자기 차가 빠르게 달리기 시작한다'는 제보를 받았다. 분명 완전히 막혀 있었던 도로가 갑자기 조금씩 뚫리기 시작했다는 거다.

나에게는 절대 피자를 맡길 수 없다는 지헌이의 말을 얌전히 받아들여 피자를 내어준 후 안나와 연락하며 차를 찾았다. 가뜩이나 어려운 길, 비까지 와서 더 혼란스러웠고 이 와중에 안나의 차와 비슷한 번호판에 홀려 이상한 곳으로 가며 헤매기를 몇십 분, 드디어 안나와 재회했고, 나는 지헌이에게 말했다.


 "안나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이렇게 막히는데 택시를 탔어 봐."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어느 정도 길이 뚫려 신나게 피자를 먹으면서 달리기를 한창, 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뭐야! 여기 내 기숙사잖아!"


 우리가 출발한 그 기숙사, 우리는 그곳으로 도착한 거다. 안나는 민망해하며 진실을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뒤로 후진해서 왼쪽으로 가면 되는데, 그건 조금 귀찮다고 판단해서 그냥 오른쪽으로 가 한 바퀴를 돌고 출발하려고 했단다. 그러니까, 그렇게까지 막힐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약 2시간 동안 이상한 곳에서 우리의 시간을 소비한 거다. 이렇게 어이없을 수가.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민망한지 지금 이 시간대에 저곳이 차가 저렇게 막힐 줄 몰랐다는 말을 반복하는 안나를 보며 우리 두 사람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거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재미있고 웃긴 이야기라는 생각에 웃으며 피자를 먹었다. 비 오는 날, 달리는 차 안에서 피자를 먹는 마무리, 그렇게 나쁘지는 않으니.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웃음은 점차 사라져 갔다. 완전 뚫렸다고 생각한 차는 다시 막히기 시작했고 점차 체크인 시간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피자 한 조각. 다 먹지 못해 남은 피자 한 조각은 아무도 먹지 않았다. 나는 급하게 몽골 체크인 시간, 짐 보관 가능 시간 등을 찾기 시작했고 혹시 몰라 이후에 있을 비행기를 찾아봤다. 뒤에 있는 지헌이 역시 자신의 표를 취소할 수 있는지, 변경은 가능한지, 체크인을 조금 늦게 할 수 있는지를 찾아봤고 그동안 안나는 앞만 바라보며 운전했다.

 조용한 차 안, 차마 음악을 틀 수는 없었고 나와 안나는 차마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방법이 없지만 일단은 가보자는 말로 귀결된 우리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나도 숨이 막혔는데 실수를 해버린 안나는 오죽할까. 간신히 길이 뚫린 이후 안나는 속도를 높였다. 뒤에서는 지헌이가 늦어도 괜찮으니까 사고 나지 않게 천천히 가라고 매우 친절하게 말해줬지만 나는 안나에게 조용히 '더 밟아. 더.'를 말했고 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체크인 가능해?"

 안나는 오빠에게 전화를 해봤는데 지금 가도 체크인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몽골은 출국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기 때문에 그런 사정을 그래도 좀 잘 봐준다는 말은 이후에 들은 이야기다.

 그 말을 들은 나는 힘이 쭉 빠졌다. 어떻게든 될 것 같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이륙 시간보다는 훨씬 전에 도착했으니 짐 넣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조용한 차 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고 눈앞에는 뻥 뚫린 도로가 펼쳐지고 있다. 배는 적당히 부르고 아까까지 내 몸과 머리를 긴장시킨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될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기절했다. 그러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 잠을 잤다는 소리다. 자고 있는 나를 보고 어이없어했을 지헌아, 미안해.


이 피자를 먹을 때까지만 해도 마냥 행복했죠


 결과적으로 지헌이는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갔다. 후다닥 지헌이를 승강장 안으로 들여보내고 나니 긴장이 쭉 빠졌다. 안나와 나는 별로 서두를 것도 없음에도 급하게 차로 돌아갔다. 동시에 웃음이 삐져나왔다. 다행이다! 해결했다! 해결되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대체 어쩔 뻔했는가. 심지어 바로 다음 날 일정이 있다고 했던 친구의 비행기였으니 단순히 돈이 날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오늘의 큰 난제를 해결한 사람들처럼 낄낄거리며 웃다가 노래를 틀었다.


 "노래를 못 틀겠는 거야. 졸린데?라고 생각하고 너를 보니까 자고 있더라."

 "나는 뒤를 못 돌아보겠더라. 근데 해결된 것 같다고 생각하자마자 긴장이 풀려서 자버렸어."


 뭘 그리 잘했다고 뿌듯하게 웃으며 돌아가는 우리 두 사람은 급하게 헤어진 지헌이와 영상통화를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니까, 어쨌든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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