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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Oct 16. 2023

사막 한복판에서 호텔 슬리퍼 신고 농구하기

사막을보러가요#3

3일째부터는 각오하고

 아무리 두근두근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연속으로 보드카를 들이키는 것은 못할 짓이다. 일찍 잠들었던 나는 일어나서 머리를 긁적이며 오늘도 어김없이 일찍 일어나 푸르공에서 화보를 찍고 있는 택쉐에게 인사했다. 어제보다 더 환한 미소로 보답하는 택쉐. 함께 힘든 모래언덕을 오르고 재미있게 썰매를 타며 만들어진 친밀도가 얼굴에서부터 보였다. 이렇게 말하니 무슨 친밀도 보상 같은 느낌이지만, 그게 맞을 지도.


화보 찍는 택쉐

 백번 이야기해도 모자라지 않는 몽골 여행의 특징은 이동시간이 절대적으로 길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동 시간 내내 수다를 떠는가? 그건 아니다.(누군가는 그럴 수도 있지만 적어도 우리 팸은 아니었다.) 거친 비포장도로를 달리면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몸을 붙잡고 어떻게든 자려고 노력하는 우리는 모두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며 언제쯤 도착할까 고민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우리들에게 있어 3번째 날은 그야말로 '살아남아야 하는 날'이었다. 가뜩이나 이틀 동안 고생했는데 오늘도 5시간 동안 푸르공통에 돌려져야 하는구나. 우리는 자리를 바꿨다. 앞에 앉았던 나와 현정님은 뒤로 갔고 뒤에 앉았던 가현님과 나스티님은 앞으로. 나는 조금 더 넓어진 자리를 보며 어떻게 이 자리를 그나마 열심히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해방을 원하는 발을 위해 신발을 벗고 자세를 바꿨다. 창가 쪽에 등을 대고 발은 반대쪽으로. 그렇게 살짝 다리를 구부린 상태로 있자니 나름 편한 자세가 만들어졌다. 1초에 한 번씩 부딪히는 내 머리만 제외하면.

 이번에는 몸을 쭈그리고 아예 2개의 자리에 내 몸을 꼬깃꼬깃 집어넣어 봤다. 키가 크지 않아서인지 어떻게 그게 가능하긴 했다. 몸이 흔들리면서 앞으로 쏠렸지만 코어힘과 팔 힘을 적절히 이용해서 괜찮은 자세를 찾아냈다. 내 얼굴 바로 위에 쏟아지는 햇빛만 제외하면.


 "으악... 햇빛..."


 나는 주변에 있는 옷가지로 내 얼굴을 가렸다. 괴로워하는 나를 본 현정님은 옷가지로 내 얼굴을 가려줬다. 몰랐는데, 사실 나는 내 코어힘과 팔 힘으로 내 몸을 지탱한 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옆에 앉아 있던 현정님이 내가 튕겨나가지 않게 받쳐주고 있던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뒤늦게 조용히 일어나 적당한 자세를 잡았다.


 달리는 푸르공 안에서 '정말로 편한 자세'는 없는 거다. 타인의 희생이 아니라면.



 오늘은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그렇다고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바양작으로 가기 전에 1~2시간 정도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본래라면 심심하다는 이유로 밖으로 나가 이런저런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주변에 뭐 재미있는 것이 없나 확인해 봤겠지만 빨랫감 4호인 나는 그럴 여력이 없었다. 현정님과 함께 바로 게르 안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우니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와 기분이 좋아졌다. 사막도 좋고 바양작도 좋지만 역시 낮잠만큼 사람을 노곤하게 만드는 게 없다.



붉은 이곳, 바양작

 바양작. '작 나무가 많다'는 뜻을 가진 이곳은 노을이 질 즈음이면 붉은 주황색 절벽이 넓게 펼쳐져 있는 절벽이다. 1921~1923년도 사이에 오비랍토르 공룡이 알을 품고 죽은 흔적을 발견하게 되어 세계 최대 공룡 화석 발견지로 불리는데 그렇기 때문인지 다른 곳들과는 달리 입장 전 관광객들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한 영상을 봐야만 했다. 영상에서는 이곳에서 공룡 화석이 발견된 과정을 자료와 함께 보여주었는데 신기하게도 아래에 한국어로 번역된 자막이 있었다.

 그걸 보고 난 후에는 다시 푸르공을 타고 안쪽으로 들어왔다. 바양작 입구에는 기념품을 파는 곳이 있었다. 나는 본래 이런 곳으로 와서 기념품을 사는 타입이 아니었는데 귀여운 낙타모양 인형을 보니 살짝 마음이 동했다. 낙타가 이렇게 생기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가상) 낙타인형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심지어 어떤 인형은 발이 옆으로 굽혀져 앉는 낙타가 될 수 있었는데 주인이 앉을 수 있다면서 낙타를 앉히는 순간 내 마음은 이미 '사는 것'으로 굳혀졌다.

 그렇게 기념품샵을 구경하다, 신기한 것들을 파는 곳을 발견했다. 인형을 주로 취급하는 다른 곳과는 달리 칼이나 채찍, 그리고 코담배를 취급하는 곳이었는데 이 코담배라는 것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몽골 전통 중에는 코담배를 서로 교환하여 피우는 것이 있는데,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만났을 때나 명절에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코담배가 들어있는 통인 '후럭'을 교환하여 인사말을 나눈다고 한다. 안에 있는 코담배를 꺼내 두 손가락으로 집은 다음 콧구멍으로 가져가서 한 번에 '흡!'하고 들이마시면, 코가 진짜 맵다. 생각해 보면 굳이 코담배가 아니라 어떠한 가루든지 코 안에 그렇게 들어가면 매운데, 왜 그걸 생각 못했을까.

 안나 집에도 코담배가 있었는데, 정말 예쁜 돌로 만들어진 후럭이라 보자마자 고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안나 부모님을 따라 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 서로 후럭을 교환하는 것을 보았는데, 안에 있는 코담배를 집지는 않고 그냥 이음새 부분에 코를 가져가 대고 냄새를 맡으며 간단하게 끝냈다. 아마도 그 많은 사람들이 일일이 코담배를 꺼내고 집고 들이마시는 건 너무 긴 시간이 들기 때문이겠지.

 안타깝게도 나는 돌로 만든 비싼 후럭을 살 만큼의 돈이나 간절함은 없었기 때문에 얌전히 주황색 플라스틱 후럭과 코담배를 하나 구매했다.



 "해가 지기 시작할 때 가장 아름다워요." 자약이 한 말이다. 우리는 자약이 이끄는 대로 높은 봉우리까지 올라갔다. 데크를 따라 길을 가다 보면 어느샌가 데크가 사라지고 불타는 절벽을 그대로 걷게 된다. 저 멀리 봉우리들이 들쑥날쑥 튀어올라와 있었고 그중에서는 갈 수 있는 곳도, 가려다가 그대로 미끄러져 아래로 떨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곳도 있었다. 나는 왠지 갈 수 있을 것 같은 곳만 골라 뛰어갔다. 쿨하게 걸어가던 택쉐는 아무래도 나와 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저기 갈래요?"


 알아들을 수 없겠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봉우리를 손가락을 가리키자 택쉐가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봉우리 끝에 올라서면 아래에 일몰을 보기 위해 일제히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저 아래 도사처럼 입은 나스티님과 바양작 컨셉에 맞춰 옷을 입고 있는 가현님이 보였다.(개인적으로 그 컨셉에 맞는 옷을 보며 나는 굉장히 좋아했다.) 손을 흔들면 마주 흔들어준다. 이 넓은 곳에 조르르 있는 모습을 보니 상당히 귀여웠다.


 아쉬운 점이 있다고 하면 역시 바양작의 많은 곳을 가보지 못한 것이다. 몽골의 모든 곳이 그러했지만 바양작 역시 굉장히 넓었고, 사실 가고자 하면 갈 수 있는 곳이 굉장히 많았다. 영상을 시청하는 곳에서 지도 역시 발견할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다 함께 움직이는 투어다 보니 내 멋대로 저기로 가자고 이야기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불타는 절벽은 굳이 노을이 지는 시간대가 아니어도 멍하니 앉아 바라보기에 좋은 곳이라,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시 이곳으로 와 바양작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싶다.




나방 떼들에게 집을 빼앗긴 인간들

 삼단 논법에 의거하여 하나의 사실을 알아낼 수 있다.

 몽골 시골에는 벌레, 특히 나방이 엄청나게 많다. 나방은 밝은 곳으로 가는 습성이 있다. 그러므로 시골에서 방에 불을 킨 상태로 문을 열어놓으면 나방이 집을 점령할 수 있다.

 우리가 문을 활짝 열면서 부디 이곳에서 편안하게 쉬시길 바란다고 이야기한 건 아니었다. 별을 구경하기 위해 아주 잠깐의  시간 동안 문을 열어놓았을 뿐이었는데 문을 여는 순간 곳곳에 보이는 나방들은 바로 잠들고자 하는 우리의 의지를 꺾어버렸다. 3일 차쯤 되면 슬슬 몸과 마음이 힘들어지기 시작하는데, 그 말은 즉슨 밤늦게 놀아보자는 마인드는 완전히 사라지고 내일 또 힘들게 옮겨져야 하니 빨리 씻고 잠들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한다는 뜻이다. 다행히도 같은 게르를 사용하는 현정님과 나는 특히 그 생각이 강했는데, 이미 온갖 벌레들에 시달린 전적이 있던 나와는 달리 아직 나방들 사이에서 잔 경험은 없는 현정님은 전날 자신의 머리맡에서 푸드덕거린 나방을 생각하며 어서 이 나방을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사실 해결 방안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이걸 하나하나 잡기에는 게르 천장은 너무 높았고, 무엇보다 잡을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달랑 원피스와 바람막이 하나만 입고 있었던 나는 덜덜 떨며 현정님을 올려다봤고, 그런 내가 안쓰러워 보였던 것인지 현정님은 바로 들어가자고 말했다.

 결국 우리는 벌레들과 함께 아름다운 밤을 보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절대로 밤에 불을 켠 상대로 문을 열어두지 말자는 거다. 벌레들이 푸드덕거리는 소리를 함께 들으면서 자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푸르공 위에서 놀다가 혼나기

 푸르공하면 감성, 감성 하면 푸르공! 우리가 첫날부터 생각했던 아주 좋은 방법이 있었다. 그건 바로 푸르공 위에 올라가 맥주 한 캔을 마시며 별을 감상하기. 안타깝게도 그러기에는 그걸 허락하고 관리해야 하는 택쉐가 잠을 자야 했기 때문에 불가능했다. 그런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한 가지. 우리의 체력이 남아 있는 아침에 재빨리 푸르공 위에 올라타는 것을 택쉐에게 허락해 달라고 하는 거다. 이제 우리 친하잖아요... 한 번만 허락해 주면 안 돼요?

 그렇게 허락을 받고 푸르공에 올라간 우리들. 차를 밟지 말고 차 위에 설치되어 있는 부분을 밟으라는 말에 우리는 균형을 잡으며 차 위를 오갔다. 아무래도 모두가 함께 올라가기에는 위험부담이 컸기 때문에 한 명씩 올라가고는 했는데, 생각보다 위에 설치된 플라스틱이 약해서 내 몸무게에도(그리 적은 무게는 아니지만) 플라스틱이 덜컹거리면서 움직였다. 한 번 올라갔다 내려온 나는 앞에서도 찍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다시 푸르공 위에 올라갔는데, 이때 빨리 찍고 출발하자는 생각과 이제 균형을 잡는 건 껌이라는 오만한 생각과 콜라보를 이룬 나머지 차 위를 마구잡이로 밟아버렸다. 물론 정말 내가 쿵쾅거리면서 차 위를 걸은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소리가 강하게 나서 굉장히 당황했다고 해야 할까. 신나게 사진을 찍고 신나게 걸어 다니는 나를 바라보는 택쉐의 얼굴이 점점 굳어가는 것을 나만 몰랐다.

 결국 내가 내려오자마자 택쉐는 바로 차 상태를 살피더니 밟았다는 것을 몸으로 표현했다. 소중한 차를 그렇게 밟았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몽골어로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죄인모드에 들어갔다. 미안해요 택쉐. 그치만 역시 푸르공 위에 올라가 보길 잘했다. 그렇지?



몽골의 미니 그랜드캐니언에서 목숨을 건 트래킹을

 마지막 여행지는 '하얀 불탑'이라는 뜻을 가진 차강 소브라가. 몽골의 미니 그랜드캐니언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약 60m의 높이로 몇천만 년 전 바닷속 지층이 융기 풍화 되어 생성된 절벽이다. 전체적으로 바양작과 비슷한 느낌의 여행지였으나 지층이 뚜렷하게 눈에 보이고 모래와 흙이 섞여 이동하기 힘든 구간이 많았다는 점이 달랐다. 쭉 펼쳐진 곳을 걷다가 갑자기 아래쪽으로 떨어지는 구간이 존재했는데, 이곳이 온통 모래로 이루어져 있어 발이 푹푹 빠졌다. 하지만 이 정도 모래 정도야, 헝거링 엘스에서 단련된 우리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게 힘들지 않다는 말은 아니지만.



 우리는 가파른 절벽 위에서 사진을 찍었다. 일명 '포토스팟' 중에서는 지층이 정말 뚜렷하게 보이는 거대한 절벽 아래의 공간도 있었는데 앞으로 조금만 더 나아가니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모르는 이곳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대로 아래를 내려다보면 수직으로 떨어지는 절벽과 조그맣게 보이는 사람들.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에 한 번 뒷걸음질 친 나는 심호흡을 하고 앞으로 나아가 절벽에 앉았다. 그러자 아래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놀랐다. (소리가 들린 건 아니고 현정님이 나중에 알려주셨다. 절벽에 있으면 내가 들을 수 있는 건 바람소리가 유일하다.) 너무 더웠던 나는 트래킹을 함에도 불구하고 몽골에서 산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앉는 과정에서 원피스가 말려 올라갔지만 도저히 몸을 움직여 이 원피스를 원상태로 돌려놓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몸을 들썩이다가 튀어나온 이 부분이 무너지면 어떻게 할려고. 내가 앉아 있는 이곳이 과연 안전한 곳이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태연함을 가장하고 쫄리는 여유를 즐기다 호다닥 절벽에서 내려왔다. 그렇게 무서우면 안 하면 되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그 절벽에 앉아 있는다는 행위가 너무 하고 싶어서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다시 모래가 가득한 곳을 통해 위로 올라가야 했는데, 나는 내려오는 동안 봤던 한 사람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안전한 모래구역으로 내려오면 되는데 굳이 굳이 가파르고 위험한 곳을 통해 내려왔던 한 남자. 그걸 보고 가만히 있을 쏘냐.

 나는 나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5명의 사람들을 뒤로하고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워도 그냥 바지를 입을 걸 이라는 생각은 사치였다. 나는 원피스를 입고도 절벽을 잘만 오르던 수많은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을 생각하며 다리를 최대한 크게 뻗었다. 그런데 웬걸, 올라가 보니 내가 서 있는 지역, 그리고 내가 앞으로 올라가야 하는 구역이 바스러지는 게 느껴지는 거다. 도저히 그냥 서서 걸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잘못하면 뒤로 넘어가 뒤가 깨지거나, 아니면 내가 디딘 곳이 무너져 그대로 추락.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내가 택한 건... 네 발로 기어가는 거였다.


 "아주 내려오면 딱콩을 먹여야 해!"

 "우리 애 하고 싶은 거 다 해~"


 아래에서 나를 지켜보던 가현님과 현정님이 외쳤다. 나는 땀을 삐질 흘리면서 최대한 몸을 절벽에 바짝 붙였다. 드러나 있던 다리가 긁혔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뒤로 넘어가지 않도록 몸을 붙이고 내가 집을 곳이 괜찮은지 확인한 후 순간적으로 힘을 줘 빠르게 올라갔다. 왜 안 내려오고 올라가냐고 묻는다면, 내려가는 것과 올라가는 것 중 올라가는 것이 더 쉬웠기 때문이었고 여기까지 왔는데 내려가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나를 보던 택쉐가 나의 길에 합류했다. (역시 택쉐 나랑 비슷하다니까) 이미 안전하게 꼭대기에 올라간 가현님이 양우산을 쓰고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데 빛 때문에 무슨 산신령이 있는 줄 알았다. 햇빛이 강한 날이라 더웠던 것인지 현정님은 그늘에서 시원함을 즐겼고 나스티님은 나름 안전해 보이는 굴에 들어갔다. 아무래도 다들 이제 그러려니 하는 것 같았다. 사실 나스티님은 나의 길에 동참할 줄 알았는데!

 이대로 꼭대기로 올라가려 했으나 난관에 봉착했으니, 그건 정말 수직으로 깎아내려진 절벽이었다. 택쉐 역시 이건 안될 것 같다 생각했는지 고개를 저으며 옆길로 내려갔다. 나는 3번 정도 위로 올라가 보려 시도했고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길을 발견했지만 그 부분으로 다리를 올리고 한 번 힘을 준 후 깔끔하게 그 길을 포기했다. 대충 80퍼센트의 확률로 떨어져서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매우 안타깝게도 그렇게 절벽을 통해 위로 올라가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 보겠다는 나의 야망을 좌절되었다. 나는 절벽의 일부분을 거의 부수면서 아래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나를 보며 나스티님이 한 말이었다) 아무래도 준비가 부족했던 것 같다. 다음에는 운동복을 입고 힘을 길러 와야겠다.





사막 한복판에서 슬리퍼 신고 농구하기

 고비 카라반세라이 호텔(GOBI CARAVAN SERAI RESORT) A옵션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게 해 준 이 숙소는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리조트형 숙소였는데 1박에 30만 원 정도 하는 곳이었다. 솔직히 이전에 잤던 게르도 그리 불편하지는 않았고 뜨거운 물이 나오는 곳은 여행자용 게르라면 (시간제한이 있긴 하지만 이곳도 11시까지였다) 많았다. 그럼에도 우선 가장 좋았던 점은 도착하자마자 직원분이 시원한 생수와 차가운 물수건을 줬다는 점이었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하냐고 물어보시는 분은 꼭 한 번 몽골을 가보길. 시원한 걸 마실 수 있는 날이 얼마 없다. 카페에서 차가운 거 시키려고 하면 다 떨어졌다고 하고 'COLD'라고 적혀 있어서 갔더니 미지근한 걸 'COLD'라고 팔고 있고 여행이라도 가면 따뜻한 맥주를 마셔야 하는 이 몽골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간 곳에서 바로 시원한 물을 주면 얼마나 행복한데.

 고비카라반세라이는 방 전면부가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밖을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침대에 누워 있다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낙타가 지나가고 있는 거다. 저 끝을 모르는 뜨거운 사막을 이렇게 시원하고 평화로운 곳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그 괴리감이 이 숙소의 가장 큰 이점이 아닐까.



 리조트답게 이곳의 시설은 다른 곳과는 전혀 달랐다. 일단, 정말로 기쁘게도 식당에 차가운 것들을 팔았다. 물도 얼음이 동동 띄워져 있었고 '시원한 맥주'를 시킬 수가 있었다. 무려 '시원한 맥주'를! 분명 말했지만 시원한 무언가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몽골에서 다른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장점이다. 나는 뷔페식 저녁을 먹으면서 맥주를 함께 시켰고 그 시원함을 즐겼다.

 이상하게 몽골에 오고 난 후 피자에 대한 기묘한 애착이 생긴 나는 피자가 나올 때까지 밖에서 경치를 구경하면서 언제 이 사막에서 피맥을 해보겠냐는 생각에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가현님이 나를 불렀다.


 "하늘님! 나와 봐요. 저기 농구 골대 있다."


 그렇다면 내가 가지 않을 수 없지. 나는 이때 호텔에서 준 얇디얇은 슬리퍼를 신고 있었는데,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 양말을 신고 신발을 신을 정도로 본격적으로 할 생각은 없었다. 발밑에 생생하게 느껴지는 모래를 무시하며 농구장으로 도달하자 호텔 직원들이 농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슬쩍 그 옆에 끼어 나에게 패스를 달라는 신호를 줬다. 그러자 나를 흥미롭게 바라보던 직원이 나에게 공을 패스했고 그대로 클린샷.

 우리는 2대 2 게임을 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딱히 농구를 본격적으로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공이 있고 골대가 있고 나를 상대하는 사람이 있고 우리 팀이 있는데 어떻게 설렁설렁할 수 있겠냐고. 나는 나를 보러 온 현정님의 슬리퍼를 빌려 신었다.


 "이거 빌려줬는데 지면 안돼!"


 그냥 구경하러 왔는데 졸지에 이 울퉁불퉁한 곳에서 그냥 벗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얇은 슬리퍼를 신게 된 현정님이 말했다. 나는 절대 이긴다고 말하며 슬리퍼 위에 있는 끈을 조였다. 바닥을 굴러다니던 크고 작은 모래와 돌 알갱이들이 우리의 움직임에 따라 날리다 내 발을 지압하고 내 발목을 때렸다. 라인도 없고 그물도 없고 제대로 된 규칙도 없는 이 게임이 뭐가 그렇게 재밌다고 그렇게 했을까. 어느새 옆에 앉아 내가 골을 넣을 때마다 환호를 해줬던 누군지 모를 몽골인 분들, 감사합니다. 덕분에 엄청난 슈터가 된 것만 같은 착각 속에서 즐겁게 시합할 수 있었어요.



 시합에서 이겨 기분이 좋아진 나는 일행에게 달려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당당하게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잘난 척 일색이지만 이런 곳에서 하는 잘난 척 정도야 농구부 사람들도 봐주지 않을까.



몽골 투어를 마무리하며

 우리는 피자와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했다. 이번 여행에서 이렇게 여유 있게 서로의 삶에 대해 깊게 이야기한 것은 처음이었다. 첫날은 술을 마시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기 바빴고 나머지 이틀 동안은 지친 나머지 금방 잠에 들었기 때문일까.

 나는 누군가의 삶에 대한 이야기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누군지 모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가현님, 현정님, 나스티님의 이야기에는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여행을 하면서 내가 봤던 이 사람들의 모습과 행동과 말들이 내 안에 쌓여 있었기 때문일까,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힘듦이 있었는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또 어떤 삶을 지향하며 살고 있는지. 자신이 해왔던 일들을 말해주며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는 나스티님의 말이, 내가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진지하게 들어주던 가현님의 눈빛이, 하늘님 정도는 사줄 수 있다며 위스키 도전하고 싶으면 연락하라던 현정님의 제안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비록 4박 5일에 불과한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인연은 영원할 거라 믿는다. 그야, 우리는 이 힘든 사막여행을 함께 헤쳐나간 사람들이니까. 그리고 몽골 투어를 무사히 끝낼 수 있게 도와준 자약과 택쉐도 또 만날 수 있기를. 난 몽골에 또 올 거라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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