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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Oct 19. 2023

나담 축제날에는 직접 만든 호쇼르

몽골어디까지가봤니#2

나담 축제날에는 직접 만든 호쇼르

 나담 축제.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매년 7월에 열리는 몽골 최대의 축제! 매년 7월 11일에서 13일 동안 벌어지는 이 축제 기간에는 부흐(씨름), 모리니 우랄단(말타기), 소르 하르와(활쏘기)라는 세 가지 종목이 열린다. 이 축제가 얼마나 거대하냐면, 몽골 어디를 가도 '곧 나담 축제구나.'를 느낄 수가 없다. 

 이를 테면 에르데네트 시골에서는 나담 축제를 준비하는 말들이 멋들어진 옷을 입고 운동을 하고 있었고 수흐바타르에서는 청소년들이 시범 경기를 하며 본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테를지에서도 나담 축제를 함께할 말들을 기르고 있었고 여행 중 나담 축제 때 입는 옷들을 미리 입고 행진을 하는 사람들도 만났다. 6월 중순부터 다들 나담 축제를 기대하며 준비하고 있던 거다. 그러고 보니 활쏘기와 관련된 건 목격하지 못했는데 그 부분은 조금 아쉽다.



 야생말을 보러 간 다음 날 집으로 돌아와 뒹굴거리다 잠들었다. 분명 늦게 잔 건 아님에도 이상하게 눈이 늦게 떠졌다. 역시나 내 옆에서 잘 자고 있는 안나를 넘어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맛있는 냄새가 났다. 오늘도 역시 "잘 잤어?"라는 말로 인사해 준 오빠 분이 나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호쇼르 먹어. 호쇼르."


 호쇼르. 몽골의 전통 튀김만두이자 내가 이곳에서 틈만 나면 먹었던 간식. 호떡 같은 비주얼에 바삭하고 안에는 고기가 들어있으니 내가 싫어할 수 없는 음식이다. 주방 한 구석에서는 안나 어머니가 능숙한 손길로 호쇼르를 만들고 계셨다. 반죽을 떼어 평평하게 만들고 그 안에 고기를 넣어 다시 동그랗게 만들고 밀대로 민 후에 끓는 기름 안에 투척한다. 충분한 시간 후에 꺼내면 호쇼르 완성. 나는 갓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호쇼르를 받아 호호 불며 먹었다. 그런데 이 엄청난 바삭함과 촉촉함이라니. 집에서 갓 만들어진 호쇼르는 겉바속촉의 진리였다. 기름진 음식이라 아침에 대량으로 먹기 힘듦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앉은자리에서 4개의 호쇼르를 해치웠다. 그 이후로는 밖에서 파는 어떤 호쇼르를 먹어도 이때의 감동을 얻을 수 없었는데, 그럴 줄 알았다면 배가 불러도 더 먹을 걸 그랬다.

 소파에 앉아 TV로 씨름을 구경하며 호쇼르를 먹고 있자니 닌쯩과 아이들이 들어와 만들어진 호쇼르를 들고 내 근처에 앉았다. 나담 축제를 보러 가고 싶다는 나의 말에 안나는 굉장히 복잡한 곳이고 어차피 가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거라고 말했다. 차라리 TV로 보는 게 더 나을 거라고. 나는 아무리 그래도 직접 가는 것과 집에서 TV로 보는 게 같냐고 말했지만 푹신한 소파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씨름을 보고 있자니 이 편이 훨씬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몽골 씨름, 진짜 무섭다. 내가 아는 씨름은 거칠었지만 적어도 모래라는 완충제가 있는 곳에서 사람을 집어던졌던 것 같은데 이 부흐라는 건 그냥 맨 땅에 사람을 던져버리는 거다. 큰 경기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경기를 펼치는데 어디 한 군데 부러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과격한 매다 꽂기를 본 나는 이제는 익숙해진 수테차를 들이켰다. 차마 저걸 해보고 싶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나담 축제를 가보고 싶다고 했던 내 말이 걸렸던 건지 만족스럽게 뒹굴거리고 있던 나에게 안나가 뒤늦게라도 가보자고 제안했다. 주변에 살고 있는 동생과 함께 차를 타고 경기장으로 가려고 하는데 안나의 부모님이 나를 불렀다. 사실 나는 아직 몽골 전통옷에 미련이 남아 있는 상태였는데, 그런 나를 위해 몽골 전통 옷을 주신 거다. 아무리 그래도 옷을 주실 줄은 몰랐던 나는 그렇다고 괜찮다는 말은 나오지 않아 옷을 꺼내는 안나를 보며 눈동자를 굴렸다. 맞을지 모르겠다는 안나의 말에 나는 무조건 맞을 거라, 정확히는 맞지 않아도 어떻게든 맞게 만들 거라 말하면서 옷을 입었다. 다행히도 옷은 나에게 딱 맞았고 심지어 디자인도 내가 원하던 것이라 나는 만족스럽게 옷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언니가 내 옷을 정리해 주며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웃기게도 이 말을 들은 나는 이 옷을 입고 다시 테를지에서 말을 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몽골옷을 입고 말을 타는 것만큼 낭만적인 일도 없지, 그럼.

 차를 타고 가는데 가는 도중에 경기가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이없는 상황이 웃겼지만 그래도 그 주변을 돌며 어떤 분위기인지 보고 싶어 끝까지 경기장으로 갔다. 큰 경기가 있는 한국 경기장 주변과 똑같았던 풍경.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파는 것들이 조금 달랐다. 분식 대신 호쇼르, 한국 전통 옷 대신 몽골 전통 옷. 그러던 중 길 한가운데에 그림을 그려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여행에서 조차 절대 하지 않았던 그것. 하지만 날이 너무 좋았고, 몽골 옷을 선물 받았고, 그전에 먹은 아이스크림이 너무 맛있었던 탓에 나는 그만 자리에 앉아 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 있는 나를 한 번 쳐다보며 지나갔다. 안나는 내 옷을 든 채 가만히 있는 나를 보다가,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 나를 기다렸는데, 마치 보호자의 모습을 연상캐 하는 그 모습에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나는 그림을 그려주는 분에게 내 이름을 말했다. '탱그르'라고 써달라고. 그러자 그 분이 눈을 조금 크게 뜨시더니 웃으면서 몽골어로 무어라 말했다. 그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이름에 대한 칭찬이었음을 직감적으로 안 나는 고맙다고 말했다.




대가족이 함께하는 명절날

 명절이라고 한다면 대가족이 함께 모이는 날이 아니던가. 물론 나는 그 가족의 일원이 아니지만 어느새 가족의 일원처럼 생각하고 살고 있던 나는 아침밥을 먹은 후 나가자는 말에 간단히 짐을 챙겼다. 이제 갑작스러운 외출 준비에도 익숙해진 나.

 우리가 가는 곳은 울란바토르에서도 외곽에 위치한 게르촌(이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이었다. 이곳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고 계시고 모든 가족들이 모였다고 했다. 참고로 이 게르라는 곳은 비에는 상당히 취약하기 때문에 내가 고비 사막으로 떠나고 울란바토르에 엄청난 비가 내린 그 주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자신의 집으로 왔다고 안나는 이야기했다.

 아무튼 이곳에는 두 개의 게르와 큰 집이 하나 있었는데, 큰 집에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한 게르 안에서는 맛있는 허르헉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누군가 그렇게 말하며 나를 바라봤다. 안나 아버지의 동생분이었다. 그분은 틈날 때마다 나에게 '안녕하세요'를 말했는데, 처음에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이것저것 말을 붙였으나 이내 이 분의 한국어가 나의 몽골어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분은 나를 부르고 싶을 때마다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외쳤고, 한 번은 내 손을 잡고 한 게르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저런 몽골 음식을 나에게 쥐어주고 먹어보라 하거나 허르헉이 만들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아무런 설명 없이 먹을 것을 주는 것은 먹으면 그만이었지만 허르헉을 가리키면서 나를 바라보자 대체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얘 웬만한 건 다 알아요."


 그때 의문 가득한 내 얼굴을 보고 나를 따라온 안나가 그렇게 말했다. 아마도 동생분은 나에게 몽골의 많은 것들을 보여주고자 이렇게 데리고 다녔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봤던 사람이고. 그러자 이 무언의 '몽골 전통 보여주기' 이벤트는 마무리가 되었다.


감자 진짜 맛있어 보인다


 대가족이 모이는 명절날이면 으레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몽골은 유독 아이들이 많았다. 초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고 아예 혼자서 움직이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어느 정도 자신의 주관이 있는 나이대의 아이들은 다들 나를 신기하게 보곤 했다. 가족끼리 만나는 자리에 몽골어도 못하고 뭔지 모르겠는 언어로 이야기하는 낯선 사람이 있다면 나라도 그랬을 것 같긴 하다.

 아무튼 나는 그다지 아이를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굳이 아이에게 다가가 나를 봐달라고 이야기하거나 손을 잡고 흔들거나 저 멀리 있는 아이에게 굳이 굳이 달려가서 냄새를 맡는다거나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보고 싶다고 궁상떨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정말 유감스럽게도 몽골에 있을 때의 내가 그랬고, 지금도 열심히 궁상을 떨고 있는 중이지만.

 안나 오빠의 딸, 그러니까 안나의 조카는 아직 일어서서 걷지도 못하고 할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는 나이인데, 그렇기 때문에 항상 누군가가 옆에 있어줘야 하고 중간에 우는 일이 허다했다. 아이에게 빠지지 않는다는 거지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감정은 있던 나는 조카의 손을 잡고 놀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그러다 안나가 나에게 말했다.


 "얘 걷는 거 보여줄게."


 기는 것도 못하는 애가 걷는다고? 말이 되지 않는 소리에 기대감 없이 안나가 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러자 안나가 아이를 안전하게 들어올리더니 바닥쪽으로 내렸다. 정말 애가 걷는 건가 싶었는데, 다른 한 손으로 조카의 엉덩이 부분을 받친 안나가 걸어가면서 손을 움직여 조카의 엉덩이를 움직이게 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의 두 다리가 허공을 가르는 걸 보는 조카의 표정은 정말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렇다. 나는 이렇게 이 작은 아이에게 빠지고 만 거다.

 틈만 나면 조카가 어디 있나 기웃거리고 굳이 기저귀를 갈고 있는 조카 옆에 누워 딸랑이를 흔들던 나를 보던 안나가 그냥 한국에 갈 때 데리고 가라고 말했다. 나는 집과 재력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납치했을 거라고 말하며 조카의 옹알이에 대답을 해줬다. 당장이 아니더라도 나는 몽골로 다시 떠날 건데, 그때 이 조카는 당연하지만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 또다시 만났을 때는 내 이름을 알려줘야겠다. 그때쯤이면 훌쩍 커버린 조카가 말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원체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큰 집에서 어디론가 가고 있는 개를 막연하게 따라간 적이 있었다. 어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고 이미 만들어준 음식도 배부를 만큼 먹었고 보드 게임을 하기에는 룰을 이해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던 내가 차마 잘 자고 있는 조카를 깨울 수는 없어 선택한 길이었다. 다리를 다친 개와 나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걸어갔다. 근처에 흐르고 있던 냇가에서 물을 마시기도 하고 이곳에 놀러온 것 같은 다수의 몽골인들을 관찰하기도 하고 돌담을 오르기도 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이제 이 아이가 가는 길을 내가 따라가고 내가 가는 길을 이 아이도 따라오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개와 나의 모험! 그런 생각이 드는 찰나에 개가 풀이 아주 길게 난 곳으로 들어갔다. 얇은 긴바지를 입고 있었기에 조금 따가웠지만 이 또한 개가 원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한 손에는 감자를 들고 따라갔다. 그런데 이 아이가 잠깐 멈추고 두리번거리나 싶더니, 내 코에 아주 익숙한 냄새가 맡아졌다.

 어쩌면 이 아이는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라 그저 볼일을 볼 공간을 찾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아마 그게 맞을 거다. 나는 급하게 자리를 피해 근처에 있는 돌담에 걸터앉았다. 내가 화장실을 가고 싶은데 누군가가 졸졸 따라다니고 있다면 굉장히 민망하고 당황스럽겠지, 음.


이제는 익숙해진 수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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