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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Oct 20. 2023

새관측소, 호수, 나방, 게르, 푸른 잠자리, 새, 별

몽골어디까지가봤니#4

몽골에서 한국 음식 먹고 체한 한국인... 제발 시원한 거 먹게 해 주세요

 아침부터 일어나 황 냄새가 폴폴 풍기는 유니폼을 다시 입고 온천에 몸을 담그니 이제는 완전히 mogod 온천의 애용자가 되었다.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게 사람들을 잡아주고 나갈 수 있게 도와주고 그렇게 지내다 떠나야 할 순간이 왔다. 떠나야 할 순간인 것은, 그냥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잠깐 눈을 감았다 뜨니 내 주위에 널려져 있던 물건들이 전부 차 안으로 들어가 있고 내 짐들이 반대쪽 침대에 놓여 있을 때 알았다. 이건 마치 명절에 자고 일어나니 내 이불만 빼고 다 치워져 있고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런 상황.

 가방에 바리바리 물건들을 챙기고 황 냄새를 풍기며 말라가는 옷가지들을 비닐봉지에 봉인. 그렇게 대략 4시간을 이동해 두 번째 장소로 도착했다.

 그런데 몽골에 와서 나에게 처음으로 일어난 일이 있었으니, 바로 휴게소에서 고추장 삼겹살을 먹고 체한 것이다. 몽골에서 어떤 음식에도 적응했는데 한국음식을 먹고 체하다니. 애초에 기름기가 너무 가득했다는 점에서 이미 만족스러운 음식은 아니었지만, 몽골에 와서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는 일에 나는 당황했다. 그리고 제발 시원한 물을 먹게 해달라 빌었다.


 "안 돼. 기름진 거 먹고 찬 거 먹으면 기름이 굳어서 안 좋아. 뜨거운 물 마셔."


 한국에서 곱창 먹고 바로 빙수를 먹는 게 기본이었던 나다. 뭘 먹어도 이후에 시원한 초코라떼나 밀크티를 마시며 식후를 챙겼던 나다. 평소에 뜨거운 물을 마시라고 해도 싫은데 체한 상황에서, 더운 이곳에서 뜨거운 물이라니. 나는 거부했으나 나에게 거부권 따위는 없었다. 텀블러에 뜨거운 물은 반쯤 담아준 안나는 나에게 그걸 전부 먹으라 말했다. 먹기 싫어서 꾸물거리고 있었는데 안나의 어머니께서 들어오시고 그다음으로는 안나의 이모가 들어오셨다. 6개의 눈동자가 나에게 '이 물을 먹라.' 이야기하고 있었다. 압박에 못 이긴 나는 그 뜨거운 물을 다 마시고야 말았다. 정말 끔찍했지만, 결과적으로 내 속이 진정된 건 사실이라 뭐라 할 수는 없었다. 느끼한 걸 먹어서 체하면 뜨거운 걸 마셔야 하는구나.



우기강의 새 관측소


 Ugii Lake. 울란바토르 근처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호수로 많은 사람들이 텐트를 치고 휴양을 즐기는 곳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텐트를 치지는 않았다. 대신 호수 한 쪽에 있는 새 관측소, ugii wetland center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에 오게 된 과정은 아주 간단했다. 아버님이 이전에 친구의 소개로 이곳에서 묵은 적이 있는데, 그때 묵은 이후로 이 새 관측소의 박사님과 친구가 되었다는 거다. 이 엄청난 친화력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 덕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을 때 안전하게 지붕 있는 집 침대에서 잘 수 있는 거 아니겠나.

 새 관측소의 박사님(이제는 언니라고 부르지만)은 나와 안나에게 따로 떨어진 숙소를 하나 주었다. 무려 침대가 4개나 있는 방을! 아마도 대학생들이 이곳으로 견학을 올 때나 배우러 올 때 사용하는 방인 것 같았다. 언니는 오랜만에 사용해서 더럽다며 방을 청소해 줬고 우리는 mogod에서 묵었던 숙소의 침대보다는 훨씬 푹신한 그 침대에 이제는 너무 익숙한 침낭을 펼쳤다.

 이 새 연구소라는 곳은 정말 말 그대로 새를 관찰하고 연구하는 곳이었는데, 그 외에 다른 생물들의 사진들도 볼 수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파란 잠자리였다. 여행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때려치운 지 오래인 나를 부른 안나는 나를 한 풀숲으로 데려갔는데 그곳에는 무수히 많은 파란 잠자리들이 풀숲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한 번 파란 잠자리의 모습이 보이니 주변의 모든 잠자리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안타까운 점은 내 캐논의 기본 렌즈로는 이 잠자리의 자세한 모습을 잡아낼 수 없었다는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눈에는 그 모습이 아주 잘 보였다. 이 잠자리들은 심지어 내가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치지 않았는데, 한 마리가 도망쳐도 바로 그 자리에 다른 잠자리가 날아와 앉았다.

 우기 호수에는 잠자리와 새뿐만 아니라 벌레도 엄청나게 많았다. 어느 정도냐 하면, 호숫가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다 같이 호수로 갔을 때 모든 사람의 옷이 아주 작은 벌레로 뒤덮일 정도였다. 털어내도 털어내도 금 다시 생기는 벌레 무늬에 지친 나는 그냥 아이들이 내 옷에 달라붙도록 놔는데, 호수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길에 옷이 하애졌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그건 우리가 잘 때도 문제였다. 인간은 왜 실수를 반복하는가. 고비 사막에서 한 번 나방 떼에게 집을 앗겼으면 이제 그 정도는 알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나는 또 아주 잠시 문을, 정확히는 창문을 열어두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고 우리가 호숫가에서 아주 작은 벌레들을 털어내고 돌아왔을 무렵 방 안을 가득 채운 여러 종류의 벌레들을 발견해버렸다. 고비에서는 그리 수도 많지 않았고 굳이 내 자리를 침범하거나 소리를 내지 않았기에 잘 수 있었다지만 이 아이들은 좀 더 독했다. 일단 소리를 끊임없이 냈고 방심하면 아래로 내려와 우리를 괴롭혔으며 그 수도 정말 많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건지 핸드폰을 보고 있던 안나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옷을 잡고 벌레들을 잡기 시작했다. 물론 그게 황으로 점칠된 내 유니폼이었다는 점이 굉장히 거슬렸지만, 어쨌든 안나는 광인과도 같은 희번뜩한 눈빛으로 유니폼을 어깨에 걸친 채 방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나는 그런 안나의 모습을 반쯤은 기대, 반쯤은 불안으로 찬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왜냐면 이 안나라는 사람은, 함께 자고 있다가 갑자기 나에게 자기 주변을 날아다니고 있던 두 마리의 나방을 잡았으니 밖으로 보내는 걸 도와달라고 하는 엄청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잡아도 신기할텐데 어떻게 날아다니는 나방 두 마리를 손으로 잡은 것인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허나 안나도 이 무수히 많은 벌레들을 다 잡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결국 벌레들이 얼굴로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잠에 들었다. 정확히는 너무나도 졸려 잠에 내 모든 것을 맡긴 나 혼자 침낭 안으로 깊게 들어가 벌레들이 주변에서 윙윙거리든 말든 잠들어 버린 것이지만. 그런 나를 보며 안나는 어떻게 자는 것인지 신기했다고 한다. 몽골인도 인정하는 나의 수면 욕구란.




아름다운 우기 호수


 어젯밤에는 비가 내렸다. 밖에 텐트를 친 사람들의 안위가 걱정될 정도로 격한 비바람이 불어 꼼짝없이 집 안에 있었던 우리는 안나의 부모님이 해주시는 맛있는 밥을 먹으며 순조롭게 살이 찌고 있었다. 그래도 몽골에서 정말 별을 잘 볼 수 있는 우기강에서 별을 보지 못했다는 슬픔은 남아 있었으니, 다행히도 언니는 오늘은 날이 맑아서 별을 볼 수 있을 거라 말했다.

 그럼 그때까지 무얼 하냐. 오늘은 드디어, 드디어, 장장 나흘 만에 씻으러 갑니다.

 새 관측소는 물을 우기강 아래에서부터 끌어다 쓰는데, 화장실 역시 보관해둔 물을 부어서 즉석으로 내려야만 했다. 그런 곳에서 어떻게 씻겠는가. 우리는 우기 강 근처에 있다는 샤워장으로 향했다. 드디어 씻을 수 있다! 아무리 내 상태를 무시하고 살고 있었다지만 씻고 싶냐는 말에는 단연코 예스였던 나는 기쁘게 짐을 챙겨 차에 올라탔다. 도착한 곳은 야외 샤워 시설이었는데 따뜻한 물이 졸졸 흐르는 곳이었고 시설이 엄청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씻을 수 있다는 것에 기뻤던 나는 그 졸졸 흐르는 물에 의지해 열심히 몸을 씻었다.


지나가다 본 평화로운 소들


 우기 호수에 머무르면서 우리는 다양한 음식을 먹었는데, 그 중에서는 허르헉도 있었다. 미니 허르헉을 만들어주겠다는 말에 나는 '감자!'라고 외쳤다. 허르헉에서 가장 맛있었던 게 감자였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고기도 맛있었지만 감자와 함께 먹는 고기는 입에 넣었을 때 느낌부터 달랐다. 우리는 우기 호수 근처에 있는 아주 작은 방 한칸 마트에서 감자를 샀는데, 나중에 듣기로는 감자 없이 만들려고 했다가 내가 한 말을 듣고 감자를 찾으러 간 거라고 했다. 세상에.

 그렇게 먹게 된 허르헉은 정말 맛있었다. 허르헉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바로 허르헉용 돌인데, 이 따뜻해진 돌을 만지면 건강이 좋아진다고 한다. 비록 고기와 함께 쪄진 돌이라 고기가 덕지덕지 묻어있었지만 이제 여기까지 온 이상 그건 나에게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다. 우리는 돌을 만지작거리다 조금 뜨겁다 싶으면 이리 저리 던지면서 놀았다. 참고로 안나의 아버지가 뜯어준 허르헉은 정말 끝장나게 맛있었다.


  우기 호수는 강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넓었는데 아름답기도 정말 아름다웠다. 청량한 호수가 하늘을 그대로 반사하는 모습에 신발을 벗고 호수 안으로 들어갔다. 시원한 물과 함께 호수에서 놀고 있던 작은 물고기들이 내 발을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첨벙거리며 움직이면 순식간에 흩어졌던 물고기들은 내가 가만히 있을 때면 다시금 내 다리 근처를 헤엄쳤다. 바닥이 훤히 보이는 것이 신기해 손을 집어넣어 동그란 돌을 꺼냈다. 왜 사람들은 물에 돌을 던지는 걸까. 나는 들고 있던 돌을 힘껏 던졌다. 딱히 물수제비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그냥 막연하게 저 넒은 호수에 파동을 일으키고 싶었던 것 같았다. 저 깊은 곳으로 들어가려면 모든 옷이 젖을 각오를 해야 했었으니. 몇몇 사람들은 호수 안으로 들어가 낚시를 했다. 배를 탄 것도 아니었고 수영복을 입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그 상태로 들어가서 낚시를 했다. 여기서 뭐가 잡힐까 생각했는데, 후에 그들이 잡은 물고기를 보고 나니 엄청 커다랗더라. 기회가 된다면 저 사람들처럼 바지가 다 젖을 정도로 깊게 들어가 낚시를 하고 싶다.




새 관측소에서 별을 보다


 저녁을 먹고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겼다. 드디어 고대하던 순간이다. 바로 별을 찍으러 가는 순간! 우리는 언니의 안내를 받아 새 연구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정확히는 안나가 운전하고 나는 뒤에서 노을을 감상하며 감탄을 했지만. 아무튼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두 개의 게르가 있었고 기다란 테이블에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이곳이 바로 사람들이 숙박을 하며 새를 연구하는 곳이었다. 한 친구가 커다란 망원경을 들고 전망대로 올라갔다. 우리는 그 뒤를 따라 높은 전망대 위를 올라갔다. 한 눈에 봐도 성능이 좋고 비싸보이는 망원경을 설치한 친구는 나에게 손짓했다. 나는 그대로 눈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보이는 목성. 저 멀리서 꽥꽥거리고 있는 개리, Swan goose들이었다. 처음에 'swan goose'를 백조와 오리가 함께 있다는 것으로 알아들었던 나는 대체 백조가 어디에 있다는 것인지 한참을 눈을 빠져라 봤었다. 그게 학명이라는 걸 알고 난 후에는 무지가 얼마나 몸을 힘들게 하는지 몸소 깨달았다지.

 개리들은 일정한 방향으로 일제히 움직였는데 그러다가 방향을 틀어 동그랗게 움직이곤 했다. 별다를 거 없어보이는 움직임에도 나는 이렇게 자세히 이 무리가 보인다는 것이 신기해 한참을 망원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밤하늘의 별


 시간이 점점 지남에 따라 해가 한 쪽으로 기울었다. 새를 실컷 구경하고 내려온 우리는 탁자에 앉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모든 빛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1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고 주변에 뭐가 있는지 비춰봐야 알 즈음, 머리 위의 별이 뚜렷해졌다. 별이 쏟아질 것처럼 반짝이는 별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봤다. 간신히 다운 받은 별자리 앱을 이용해 하늘 위 별자리들을 관찰하고 있자니 언니가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언니에게 앱 화면을 보여주면서 이런 별자리가 있음을 알려줬다.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음!', '오!', '음음.'이라는 세 가지 단어로 소통했는데 순서대로 '이거 봐요!', '우와!', '그렇지.' 정도가 되겠다.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아 자리만 알고 있던 나는 어느새 천칭자리, 백조자리, 페가수스 자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앱을 보지 않고도 알 수 있게 됐다. 그게 신기해 잘 대화하고 있는 안나에게 굳이 다가가 별을 가리키며 저게 어떤 자리인지 설명하곤 했다.

 그러다 문득, 달이 뜨기 전에 반드시 해야할 일이 생각났다. 몽골에서 반드시 해야하는 것 중 하나, 바로 별 사진 찍기. 이제는 캐논 카메라로 어떻게 찍는지도 알았고, 삼각대도 있으니 이제 진짜 제대로 할 수 있다.

 나는 우선 탁자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과 멀리 떨어지기로 했다. 그야 이들은 불빛으로 앞에 놓여진 술과 음식을 찾고 있었으니 당연하다. 언니가 나의 길에 동참해줬다. 나는 우선 저 멋진 전망대와 별을 함께 찍기 위해 이동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으므로 발을 크게 위로 올려 움직여야 했다. 그러다 멈춰서 삼각대를 최대로 늘리고 카메라 초점을 멀리 있는 불빛을 이용해서 수동으로 맞춘 뒤 셔터 스피드를 최대한으로 늘렸다. 3초 타이머를 잰 후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다가 '찰칵'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카메라를 확인한다.


 "오?!"


 동시에 멋진 탄성이 터져나왔다. 내 눈에 보이는 이 아름다운 은하수가 사진 속에서도 보였다. 나는 신이 나 각도를 이리저리 바꾸며 사진을 찍었다. 너무 어둡기 때문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내가 어떤 각도로 찍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게르 근처로 가 사진을 찍었고, 게르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핸드폰 불빛으로 게르를 비췄다. 이때 언니에게 불을 비춰줄 것을 부탁했는데, 대략 30초 가량 아무 말도 미동도 없이 불빛을 비추고 있는 언니를 보다 이건 아닌 것 같아 타이머를 맞추고 내가 불을 들었다. 그렇게 완성한 사진은 몽골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게르와 별. 이게 몽골이지.

 이곳에서 수도 없이 많은 별과 은하수를 봤을 친구들이 내 사진을 보고 감탄했다. 감탄을 한 건지 감탄을 해주는 건지는 알 수 없다. 아쉬움 가득한 작별을 고하고 다시 차에 올라타 숙소로 돌아왔다. 당시에는 내가 엄청난 사진을 찍었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하늘을 뚫고 치솟았는데, 집에 돌아와 큰 화면으로 보니 굉장히 많은 별들이 흔들린 상태로 찍혔더라. 삼각대도 설치했고 멀리 떨어진 상태로 미동도 하지 않았는데 대체 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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