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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Oct 21. 2023

강 한가운데에서 차 시동이 꺼졌는데 말이 구하러 옴

몽골어디까지가봤니#6

친구들과의 마지막 하루

 내가 몽골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친구. 몽골어를 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항상 영어로 이야기하고, 친구들의 몽골어를 번역해 줬던 친구. 너밍의 생일이다.

 처음 생일파티를 하러 간다고 들었을 때만 해도 적당히 내가 알고 있는 친구들이 소소하게 모이는 모임이라고 생각했다. 맞긴 하지만, 내 예상보다 사람이 더 많았다. 안나와 함께 선물을 사고 레스토랑 앞으로 도착하니 멋지게 차려입은 친구들이 있었다. 오늘 파티에서 꼭 붙여야 하는 거라며 내 눈 옆에 반짝이 스티커를 붙여주는 어요카.

 파티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상 다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선물을 주는 자리였다. 나는 앞에 놓인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며 친구들이 서로 대화하는 장면을 지켜봤다. 너밍을 중심으로 만나서 그런지 서로 처음 보는 친구도 몇 명 있는 것 같았다.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에 친구들의 이름을 들었는데 정말 어려웠다. 애초에 한국 이름도 잘 못 외우는 내가 어떻게 그 어려운 몽골 이름들을 다 외우겠는가. 심지어 어떤 이름은 발음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내가 더듬거리자 한 친구는 자신의 이름을 간단하고 쉽게 줄여주곤 했는데, 그 당시에는 그렇게 전부 외워 나 자신이 굉장히 자랑스러웠으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다 소실된 상태다.

 선물교환을 하고 다 같이 수흐바타르 광장에서 웃고 떠들며 놀았다. 스쿠터를 가지고 온 친구의 뒤에 매달려 광장을 몇 바퀴 돌기도 하고 영어로 한 친구와 대학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 또 그냥 이것저것 하면서 놀았다.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친구도 있었는데 그건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다 함께 사진을 찍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입을 풀기 시작했다. 아아아. 오오오. 스카아. 이이이. 뭐지, 뭘 하려는 거지. 뭘 해야 하는 거지. 어리둥절하게 친구들을 보다가 일단 카메라를 봤는데 모두가 동시에 소리쳤다.


 "We love sky~"


 헤어질 시간이 되자, 너밍은 나에게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 할지라도 또 만나자고. 나도 만나고 싶다. 다시 몽골로 돌아가서, 한국에서, 혹은 다른 나라에서.




야 이러다가 차 멈추면 어떻게 해?

 말을 타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를 불러대길래 이틀 동안 실컷 타게 해주었건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아는 맛이라 더 먹고 싶다. 부모님과 여행을 가기도 훨씬 전부터 다시 테를지로 놀러 가자고 안나를 조른 나는 드디어 출국 이틀 전 오후, 차를 타고 테를지로 출발했다.

 사실 내가 아무런 생각 없이 테를지 가자고 한 건 아니다, 그때 친해진 우쮜와 현호가 또 놀러 오라고,  놀러 오면 술도 사주고 숙소도 마련해 준다며 내 귀를 혹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쮜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쩌다 한 번 받아 어디냐고 물어보면 우선 테를지에 도착한 다음에 연락하라는 말을 할 뿐이었는데, 몽골어를 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 말을 전해 듣고 답답할 따름이었다. 결국 우리는 도착한 이후로도 연락이 되지 않는 우쮜에 대해 열심히 뭐라 하며 테를지를 산책했다.

 먼저 우리는 전에 우리가 묵었던 숙소로 향했다. 비가 쏟아지는데 굳이 말을 타겠다고 하는 나를 걱정해 우비를 주신 사장님이 운영하는 숙소였다. 안나는 천사 같은 사장님이 혹시 화를 내면 어떻게 해야 하냐며 덜덜 떨었다. 이유는 바로 그때 빌렸던 우비를 잃어버렸기 때문인데, 하필 잃어버린 그 우비가 한국에서 산 거라 굉장히 좋았다는 점이 우리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어쨌든 내가 사용했고, 마지막에 확인하지 않은 건 내 잘못이다. 나는 반갑게 맞이해 주는 사장님에게 안나가 사용했던 우비를 돌려주며 조심스럽게 우비를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사장님은 한국어를 능숙하게 할 줄 아셨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괜찮다며, 다른 우비를 돌려줘서 고맙다며 웃어주셨다. 사장님, 등 뒤에서 후광이 비춰요.


 "여기서 살아요?"


 분명 몇 주 전에 봤던 한국인이 오늘도 테를지로 왔다는 사실에 사장님은 조금 놀라신 듯했다. 나는 한 달 정도 여행 중이라며 정정하고는 사장님과 대화를 나눴다. 저번에 먹고 완전 반해버린 고기 볶음 국수를 먹고 나니 안나가 말했다. 드디어 애들과 연락이 닿았다고.


 우쮜를 보면 알아듣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한국어로 무어라 말하려고 했던 나는 당황했다. 말을 타고 당당하게 나타난 우쮜가 내려오자마자 다리를 저는 거다. 일을 하다가 다친 거라고 했다. 아니 걷지도 못하는 다리로 어떻게 말을 타고 온건지. 다행히 현호는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오늘 정말 바빴다며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하긴 우리가 명확한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시골에서 바쁘지 않은 날을 갑자기 만들어낼 수 있겠어.

 우리가 가려는 숙소는 강 건너에 있었다. 내가 사막으로 떠난 사이 테를지에는 엄청난 비와 함께 홍수가 났었는데, 실제로 불어난 강에 빠진 사람들을 우쮜와 현호가 구하기도 했다고 들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으니 강은 물론이고 근처에는 많은 물웅덩이가 있었다. 우리는 거기를 건너가야만 했다.

 우선 강 한구석에 차를 대고 다른 차에 올라탔다. 푸르공이라고 하기에는 좀 작고 일반 차라고 하기에는 투박한 이 차는 푸르공과 마찬가지로 강을 막 건너갔다. 얼마나 막 건너갔냐면, 진짜 막 건너갔다.


 "앞자리에 앉을래?"


 나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는 안나가 앞자리를 가리켰고 나는 그 자리에 앉았는데, 무슨 3D 게임하는 줄 알았다. 이미 흙탕물로 뿌연 앞자리 창문은 창문의 기능을 거의 반쯤 상실했으나 이 차에 와이퍼가 있을 리가. 어두워서 보이는 거라고는 전방 2m 앞에 무언가가 있는지 여부일 뿐인 이 상황에서 오른쪽에 있는 창문을 열어둔 나는 한바탕 물벼락을 맞고는 바로 문을 닫았다. 놀이동산 왜 가나? 이 미친 상황이 더 재밌는데. 심지어 현호의 사촌은 이 앞이 갈 수 있는지 없는지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막 달려갔는데 그중 하나가 강 한가운데였다.


 "야 이러다가 차 멈추면 어떻게 해?"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지. 신나게 외치고 난 후 정확히 1분이 지나자, 차의 시동이 꺼졌다. 강 한가운데에서 차 시동이 꺼진 거다. 다행히 깊은 부분은 아니라 조금만 더 가면 육지였으나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차 시동이 꺼졌다니까? 현호의 사촌은 문을 열고 창문을 밟으며 앞으로 건너갔다. 그러더니 발로 몸을 지탱한 채 차 뚜껑을 열어서 정비를 하기 시작했다. 나도 창문을 열고 몸을 지탱한 채로 플래시를 비춰주며 구경했다.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한참을 무언가 끼릭거리던 사촌은 다시 자리로 들어와 시동을 켜보려 했는데, 안타깝게도 한 번 꺼진 시동은 다시 켜지지 않았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 일단 그냥 기다린다. 무얼 기다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기다렸다. 그냥 다리는 건 좀 심심하니까 아까 산 맥주를 마시는 건 어때?

 몽골에서 싸게 파는 미지근한 드래프트 비어를 꺼내 마셨다. 컵이 부족하니 콜라를 다 먹고 그 아래를 잘라서 컵을 만들었다.


 "몽고쓰 컵"


 그렇게 나는 무얼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강 한가운데 놓인 차에서 맥주를 마셨다. 문을 열고 다리를 내민 채 맥주를 마시자니, 개인적으로 이게 내가 겪은 불확실한 경험 중 제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웃긴 건 친구들의 반응이었다. 나는 무슨 대책이라고 있는 줄 알았는데 편안하게 차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이 세 사람 모두 아무런 대책이 없는 거다. 내가 이제 어떻게 하냐고 묻자 모두가 "글쎄?"라고 대답했다. 안나는 나랑 비슷한 처지니까 그렇다 치는데 이놈들은 대체 뭐람. 하지만 이미 몽골인이 다 된 나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인드손에 있는 맥주를 마셨다. 글쎄? 그래 뭐 여기서 밤새자! 정 안되면 우쮜가 말 타고 우리를 데리러 오겠지.



 근데 그게 정답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고 다리를 대롱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찰박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 사이로 말머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우리가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자 우쮜가 우리를 데리러 온 것이다! 우쮜! 연락 안 받는다고 뭐라 해서 미안해!

 안나는 우쮜 뒤에 올라탔고 차에 있는 많은 짐들을 가지고 갔다. 그럼 이제 말이 안나를 데려다주고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싶었는데 갑자기 현호가 차에서 내렸다. 이게 뭔 일인가 파악하기도 전에 내 자리로 온 현호는 나에게 업히라고 말했다. 현호는 나를 업은 채로 강을 건너 나를 반대편에 놓아주었다. 그리고는 차로 다시 돌아가 짐을 챙겨 돌아왔다. 대부분의 짐은 우쮜와 안나가 말을 타고 가지고 갔고 나는 친구들과 숙소로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다시 돌아온 우쮜가 현호의 사촌과 나의 짐을 모두 데리고 가니 아주 홀가분해졌다. 내가 멍하니 있는 사이 진도가 착착 진행됐다. 태평했던 이유가 있었던 거다. 어떻게든 일이 흘러가게 되어 있으니까. 나야 그냥 열심히 해주는 대로 흘러가면 그만이었다.

 나는 현호와 함께 깜깜한 길을 걸었다. 나는 당장 앞은 물론이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는데 현호는 앞을 가리키며 저기 있는 집으로 갈 거라고 말했다. 진심으로, 집이고 뭐고 아무것도 보이진 않았는데 대체 뭐가 보인다는 걸까. 이상한 방향으로 가려는 나를 잡아준 현호는 한쪽으로 나아가다가 무언가를 보고는 방향을 조정했는데, 그렇게 가다 보니 정말로 게르가 나왔다. 이건 정말 경험해 봐야 안다. 얼마나 대단한지.


나를 구하러 온 말님



몽골옷을 입고 배낭을 메고

 야심 차게 몽골옷까지 입고 왔는데, 말을  탈 수는 없지. 아침에 일어나서 하고 싶은 건 하나뿐이었다. 말을 타야겠다. 안타깝게도 이 게르에는 핸드폰을 충전할 수 있는 시설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가만히 침대에 앉아 있다가 핸드폰을 수거하러, 정확히는 충전을 해주기 위해 들어온 한 남자아이에게 핸드폰을 맡겼다. 핸드폰도 없고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우리는 말을 타게 됐다.


 이전에 우리가 탔던 말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말을 더럽게 안 듣는다는 거였다. 나는 우선 핸드폰을 되찾기 위해 한 친구와 말을 타고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를 한 게르 앞으로 갔다. 그런데 갑자기 이 친구가 나에게 말 한 마리를 추가로 맡기고 기다리라고 하는 거다. 아니, 나한테? 말 타기 경력 약 12시간인 나에게? 나의 대체 어떤 부분이 신뢰를 주었는지 전혀 모르겠으나 내민 것을 뿌리치고 안된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 나는 그대로 말고삐를 받아들였다. 근데 내가 타고 있는 말이 자꾸만 다른 말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냥 애정행각을 하는 건가 싶었는데 상대의 몸이 밀릴 정도로 밀고 있으니 두 개의 고삐를 잡고 있는 나는 난감했다. 일단 내가 타고 있는 말고삐를 짧게 잡아 못 움직이게 하고는 다른 쪽 고삐를 천천히 잡아당겨 말을 원위치시켰다. 만약 둘 중 한 마리가 뛰기 시작하면 어떻게 하지. 한 마리가 뛰고 있는데 한 마리는 뛰지 않는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뛰고 있는 한 마리를 제어하거나, 뛰지 않는 한 마리를 뛰게 만드는 거였다. 그게 아니면 그냥 말에서 떨어지거나.


 '얘가 뛰면 그냥 이 고삐는 놔버려야겠다.'


 나는 행여나 고삐를 헷갈릴 까봐 열심히 '이 말이 뛰면 이 고삐, 저 말이 뛰면 저 고삐'를 되새기고 간신히 부딪히는 두 마리의 말을 제어하며 제발 이 아이가 빨리 와주기를 빌었다.


 말을 잘 듣지 않는 말을 오래 타다 보면 점점 느는 것이 있다. 바로 엉덩이를 때리기 위해 몸을 비트는 기술과 발을 구르는 힘이다. 경쾌한 '추'소리도 필요하다. 떠나야 할 시간이 되어 배낭을 메고 옷을 챙긴 채 말 위에 올라탔다. 물론 말을 타고 달리지는 않았다. 배낭을 멘 채로 말이 달리는 순간 어깨가 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짐을 메고 말을 타며 여행을 떠나는 것에 대해 로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건 그냥 로망으로만 남겨둬야겠다.

 다만 이 말은 이상하게 물을 싫어했는데, 조금이라도 물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하면 방향을 틀어버리거나 그냥 멈춰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온 힘을 다해 말의 엉덩이를 때리고 "추!"라고 외치며 발로 말의 옆구리를 차는 것뿐이었다. 이렇게 말하니 내가 말을 학대하는 것 같지만 그게 말을 타는 법이었다.

 사실 나는 이때 굉장히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건 바로 어젯밤에 보드카를 들이켜고 쓰다는 이유로 맥주를 마시는, 지금 생각해도 정신이 나가버린 행동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분위기에 취해 보드카를 마시고 싶었지만 보드카 한 잔을 원샷하면 너무 맛없어서 싫었기 때문이라고 변명해 본다. 아무튼 그러다 보니 말이 강을 건너고 싶지 않아 멈춰 있을 때 말을 힘 있게 이끌 힘이 없었다. 그러자 옆에 지나가고 있던 멋진 모자를 쓴 한 분이 다가와 내 말을 이끌어주셨다. 정말 신기했던 건 이 분이 바로 안나와 내가 우쮜를 만나기 전, 산책을 하다가 본 사람이었다는 거다. 현호랑 비슷한 옷을 입고 있어서 착각했었는데 그런 분이 지금 내 말고삐를 이끌어주고 있으니 테를지가 굉장히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무사히 강을 건넜다. 오는 길에 우리가 어젯밤 버려둔 차도 발견했고 몸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힘을 내어 말을 탔다. 아침 일찍부터 일을 하러 나간 현호와는 작별인사를 하지 못했지만 우리를 데려다준 우쮜와는 할 수 있었다. 우쮜는 나에게 다음에 한국에 가게 되면 밥을 사달라고 말했다.


 "아, 당연하지."


 또 볼 수 있기를, 친구들. 진짜 한국 오면 밥 사줄게.


자동차 정비중인 사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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