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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Oct 21. 2023

중세 몽골 제국의 두 번째 수도, 카라코룸

몽골어디까지가봤니#5

꽥꽥 오리를 보러 갑니다

 어젯밤 너무 멋진 사진을 찍어서 행복한 내가 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며 뿌듯해하는 안나가 있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부모님들이 계신다.

 언제나처럼 아침 늦게 일어난 나는 스트레칭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이미 안으로 들어와 버린 벌레 무리들은 왠만해서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이상하게 밤에 더 극성맞게 움직였다. 하지만 잠의 마수에 빠진 나는 그러든가 말든가 상태가 되어 딥슬립에 빠졌었다. 안나는 나와 같은 엄청난 수면 파워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 나보다 더 늦게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새 연구소 밖으로 나가 주변을 산책했다. 태평하게 누워 있던 소가 바로 옆을 지나가는 나를 한번 슬쩍 보더니 눈을 껌뻑이며 고개를 돌렸고 저 멀리 있던 말들은 푸르릉 소리를 내며 풀을 먹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산책이라니 한국에서는 절대 하지 않는 짓이지만 밝지만 뜨겁지 않은 아침에 반짝이는 호수를 보고 있자니 이대로 드러누워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배 타러 가자."


 이곳의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을 절대 허투루 듣지 않는다. 정말 무서울 정도로.

 바로 어제 호수를 보며 저기서 배를 타면 정말 즐겁겠다는 말을 했었는데, 바로 오늘 언니가 우리에게 배를 타고 새를 보러 가자고 말했다. 나는 모자와 선글라스, 카메라를 챙겨 언니를 따라갔다. 그러자 배의 선장님과 누군지 모를 한 남자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명조끼를 입고 배에 올라타자 시끄러운 모터음과 함께 배가 호수를 가르며 나아갔다. 출발!

 저 멀리 있는 오리들을 보러 가는 거였는데, 10분 동안 호수를 가르며 달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반짝이는 호수를 보다 언니가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파란 호수 가운데 무슨 갈색 선이 보이더라. 선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섬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 꾸물거리면서 계속 모양이 변했다. 얼마나 오리가 많으면 저 멀리 있는 산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건지.

 우리는 오리들의 한가운데로 가로질러 들어갔다. 그러자 오리들이 순식간에 갈라졌다. 오리들을 따라가자 흩어진 무리들이 또 양쪽으로 쪼개져 흩어졌는데 뒤를 돌아보면 돌아와 다시 무리를 형성했다. 쫓고 쫓기는 관계. 무리를 해체해도 다시 모이는 무리. 선장님이 엔진을 껐다. 그러자 아까까지만 해도 들리지 않았던 오리들의 소리가 시끄럽게 주위를 울렸다. 꽥꽥꽥꽥. 더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고 우리를 주위로 둘러싸며 원을 그리는 오리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왜 앞으로 도망가지 않고 굳이 원을 그려 이 주위를 맴도는 걸까. 이 근처에 뭔가 맛있는 것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 구역에서 무리를 형성하자는 무리의 약속이 있는 것인지. 다음에 가게 되면 꼭 언니에게 물어봐야겠다.



 이제 슬슬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 됐다. 별 사진도 찍었겠다, 가까이에서 오리도 봤겠다, 심지어 안나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맛있는 볶음국수까지 먹었다. 흥얼거리면서 짐을 챙기고 있는데 갑자기 언니가 집 안으로 들어오더니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헐."


 언니의 손 안에는 작은 새 한 마리가 있었다. 모형도 아니었고 죽은 새도 아니었고 진짜 새였다. 날아다닐 수 있는 활기 있는 새. 어떻게 잡았냐고 몸짓으로 설명했다. 잠자리채로 잡은 거냐, 어떤 기계를 쓴 거냐, 아니면 그냥 손으로 잡은 거냐. 그러자 언니는 나머지 한 손으로 무언가를 잡는 시늉을 했다. 그냥 손으로 잡았다는 거다. 새 박사님이 되려면 새를 손으로 잡을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건가. 엄청나다. 새는 잡힌 것이 심통이 났는지 뾰로통한 얼굴을 하다가 간간히 푸드덕거렸다. 그런데 신기한 건 언니의 손을 부리로 쪼지는 않았다는 거였다. 내가 불만이 있으면 일단 쪼고 보는 애니메이션 속 새들에게 익숙해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언니가 보살펴주는 걸 새도 알고 있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덕분에 나는 새 사진을 실컷 찍을 수 있었는데, 언니는 내가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도록 요리조리 새를 움직이다가 새가 푸드덕거리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내 평생 새 머리를 쓰다듬는 건 정말 처음 본다.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건 정말 아쉬운 일이다. 모든 헤어짐에 아쉬움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언니와 헤어지는 건 좀 많이 아쉬웠다.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한 언니의 마음이 느껴져서일까. 이제야 언니와 친해졌는데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슬펐다. 안나 역시 하루만 더 있었다면 어제 사귄 친구들과 신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거라며 아쉬워했다. 나는 언니와 인스타그램을 교환하며 손짓발짓으로 아쉬움을 전했다. 언니가 나에게 무어라 말했다. "또 와." 나는 안나에게 방금 전에 배운 단어로 이야기했다. "또 올게."



몽골의 전 수도, 카라코룸

 몽골 여행은 첫날과 마지막 날이 가장 힘들다. 땅덩어리가 넓은 몽골의 특성상 많은 거리를 이동해야 하기 때문인데, 그래서 나는 어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우기 호수에서 바라본 밤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안나를 통해서)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창문 밖을 멍하니 보면 여러 동물들이 지나간다. 그중에서는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낙타도 있고 혼자 고고히 앉아 있는 독수리도 있었다. 사실 독수리인지 매인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큰 녀석이었다는 건 확실하다. 그런데 이 녀석이 앉아 있는 곳이 그냥 돌이 아니었던 거다.


 "뭐야, 저거 다 쓰레기야?"


 엄청난 양의 쓰레기들이 몽골 초원 한복판에 깔려 있었다. 차로 타고 감에도 끝없이 나오는 쓰레기들의 산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넓은 몽골 땅에 이 정도 면적의 쓰레기산은 분명 보이지도 않을 테지만 멀리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바로 눈앞에서 발견하는 것은 느낌이 달랐다. 쭉 깔려 있는 도로 양 옆에 있는 쓰레기산은 아마도 울란바토르에서 만들어진 쓰레기를 버리는 곳인 것 같았다. 아마도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던진 쓰레기들도 함께 있는 거겠지. 평화 그 자체였던 아름다운 평야만 보다 이런 장면을 마주하게 되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카라코룸. 중세 몽골 제국의 두 번째 수도인 이곳은 울란바토르에서 서쪽으로 약 4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존재한다. 400km라는 거리는 객관적으로 보면 상당하지만 몽골에서는 그리 먼 거리도 아니다. 또 포장도로가 깔려 있었기 때문에 많은 몽골인들이 이곳으로 오는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가니 에르덴조 사원이 있었다. 1586년에 세워진 티베트 불교 사원인데 사실 어떤 것이 정확히 에르덴조 사원인지는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대충 이런 것들이 있구나 하며 구경했지.

 그러다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는 구간이 있었는데, 다들 입장료를 받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 나를 보며 꺄르륵 웃는 거다. 뭐지 싶었지만 일단 가만히 있었더니 그게 정답이었다. 카라코룸은 몽골인보다 외국인의 입장료를 더 받는데 다들 내가 몽골인이라고 이야기했던 거다. 내 어리둥절한 표정을 본 티켓 관리자 분은 당연히 미심쩍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뭐 별 수 있나. 나는 무사히 몽골인으로서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당연하지만 몽골어로 설명이 되어 있었는데, 각 절 안에서 한 안내원이 이곳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말을 듣고 한국어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어눌하지만 확실한 한국어에 놀랐다. 그전까지는 안나가 듣고 나에게 해석을 해줬는데, 왜 안나가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는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모르는 단어들이 너무 많았다. 하긴, 한국어로 불교에 대해 설명해도 어려운데.



 그렇게 사원을 돌아보고 난 다음에는 다시 울란바토르로 달렸다. 그런데 어쩐지 점점 어두워지는 창 밖. 간간히 떠 있던 흰 구름은 어느새 모여 어두운 색을 자랑하고 있었다. 울란바토르 쪽으로 갈수록 눈에 띄게 빗방울이 두꺼워졌다. 사막에서는 한 번도 비를 본 적이 없는데 어째 요즘 비를 많이 맞이하는 기분이다. 나는 안나 아버지께서 빠르게 집으로 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이 열심히 창밖 구름들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저건 싸우는 호랑이와 용, 저건 뱀, 저건 으르렁거리는 강아지, 저건 그냥 도넛. 평소에 하늘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취미는 없었는데 이상하게 몽골에 오고 난 부터는 유독 하늘과 인연이 깊어진 기분이다.



 짐을 챙겨 올라가고 잘 준비를 마쳤다. 안나와 함께 나란히 누워 잠을 자자니 여행에서 했던 것들이 생각났다. 야생말을 발견하고 평생 가본 적 없던 찐 자연 온천에서 황 냄새를 가득 묻히고 멀리서 쌍안경으로 백조와 새들을 지켜보고 바둥거리는 염소를 안아 올리고 깜깜한 풀숲에서 은하수를 보고 맑은 호수를 가르며 배도 탔다. 그동안 내가 먹은 것도 수두룩하다. 삼촌 집에서 먹은 말린 고기 국수부터 시작해서 감자를 넣은 허르헉, 고기볶음국수, 나를 위해 만들어준 짜파게티, 양고기, 꼬치구이, 볶음밥,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반탄까지.


 "반탄?"


 하도 반탄을 먹을 때마다 맛있다고 난리를 쳐서 그런지 안나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가 되면 나에게 물었다. 그럼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내 모습의 어떤 점이 웃겼던 건지 모든 사람들이 웃곤 했다.

 새소리, 말소리, 소소리, 양소리, 염소소리, 벌레소리, 그리고 밥 먹으라는 소리. 말린 고기를 먹기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그 이후부터는 그냥 고기만 만들어 먹는 이 가족들. 발전기를 통해 전기를 충전하는 게 너무 신기해 눈을 동그랗게 뜨는 나를 보고 반응이 재밌다고 하는 이 가족들.

 너무 완벽하고 행복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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