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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설 Dec 03. 2021

20살, 중국으로의 첫걸음

2011년, 나의 아주 특별했던 중국 대학 시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20살
나는 남들과는 다르게 중국으로 갔다.


누군가에겐 설레는 대학 생활이 기다려 있고, 다른 누군가에겐 사회생활의 첫 스타트가 되는 나이인 만큼 나에게 20살은 처음으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의 시작을 알리는 삶의 지점이 되어있었다.

어느 지역을 가도 한국어, 한국 식당, 한국 제품, K-POP을 쉽게 볼 수 있는 지금의 중국의 모습과는 다르게 2011년의 중국은 정말 외국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만큼 나에게 도전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학교 내에서 선생님들의 추천을 받아 중국 대학으로 진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가 처음으로 도입이 되었다.

당시, 난 원하는 대학교에 합격하지 못했고 3 지망으로 적었던 학교를 갈까? 중국 대학으로 갈까? 고민을 하던 중, 남들과는 조금 차별화를 두고 싶어 중국어 하나만큼은 정말 잘해서 돌아올 수 있다는 부푼 꿈과 함께 중국 대학을 선택하게 되었다.

중국 대학을 갈 수 있는 제도가 도입이 된 지 얼마 안 된 만큼 주변의 시선은 좋지 않았다. 갓 20살이 된 만큼, 사회에 혼자 나간다는 건 대부분이 걱정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래도 나는 꿈을 위해서 중국 대학을 거리낌 없이 선택했다.
(사실 지금에 와선 가끔 후회하지만, 지금 내가 그때의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혼자가 아닌 같은 고등학교 친구 두 명과 함께 간다는 점이었다.

비록, 그 두 명은 처음 보는 사이었지만 타지에 한국인 혼자가 아닌 3명이라는 건 무언가 말할 수 없는 든든함이 있었다.

중국 대학 입시를 합격하고, 어느덧 중국으로 떠나게 될 날이 다가왔다. 그동안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19년 동안 함께 지냈고 처음으로 떨어지는 만큼 어색해하고 걱정하는 가족을 보니 정말 슬펐다.

하지만 죽으러 가는 게 아닌 나의 첫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왜 이런 말이 있지 않는가?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즐기자!


공항에서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비행기를 탔다.비행기를 타고 중국을 가서도 한 동안 계속 슬플 줄 알았는데 생애 첫 비행기를 타보는 설렘이 나의 슬픔을 잠재워주었다. (슬픔은 웬만하면 빠르게 극복하는 게 좋은 만큼 당시 나에게 정말 칭찬한다^^ 그리고 이때 처음으로 승무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ㅎㅎ)

가는 날이 장날일까? 비행기가 연착이 많이 되어 원래 예정되어 있던 시간을 훌쩍 넘겨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항저우 공항에 도착하였다.
(지금 항저우 공항을 가면 단순히 외국이네 싶다면, 그 당시는 진짜 한국에서 맡아볼 수 없는 이국적인 냄새가 나의 코 끝을 찌릿하게 만들었다.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


친구들과 함께 밖으로 나와보니 우릴 마중 나와주기로 한 유학생 담당 선생님이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유학생 담당 선생님과의 첫 만남, 성함은 '류 라오스'

그 강렬한 첫인상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사막을 뚫고 달려온 것 같은 무너져가는 스타렉스 운전대엔  3월의 추위를 견디기엔 역부족으로 보이는 얇은 코트를 입은 빼빼 마른 류 라오스 선생님이 우리에게 어서 타라며 손짓하였다.

(그 스타렉스 같은 중국차는 面包车 黑车 라고 불리는 차라고 한다.)

타지도 처음이고 차도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만큼 우리 셋은 암묵적으로 서로를 위로하였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 셋이서 저 선생님 한분 정도는 가뿐할 것 같으니 아무 일도 없겠지라 생각하며 그 스타렉스에 올라탔다.

面包车 黑车 라고 불리는 차

학교로 가는 중 선생님은 처음인 만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친해지고자 노력했지만 선생님의 빠른 입담을 이해하기엔 당시 우리 셋의 말하기 실력은 너무나도 기초 중국어 수준이었다. 그마저도 말하기보단 독해에 무척 강했던 나는 그의 말을 알아들을 방법이 없었다.
(이게 바로 자격증 위주 공부의 폐해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계속해서 들으며 점점 커지는 불안감을 어색한 웃음으로 달래며 달리고 달리다 어느덧 앞으로 우리가 다니게 될 학교에 무사히 도착하게 되었다.


도착하자마자, 선생님은 비행기 연착으로 기내식 밖에 먹지 못한 우리에게 밥을 사주겠다며 가장 먼저 학교 식당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식당도 너무 새롭고 그 흔한 식판 조차 너무 이질적인 느낌이 나는 상태로 겨우 반찬과 밥을 담고 긴장감 속에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밥을 씹는데 뭔가가 오드득 오드득 씹힌다.... 뱉어보니 돌...? 小石头..?!

밥에 돌이 있었다.. 첫날부터 밥에 돌이 씹히다니 운이 정말 안 좋네 생각하던 중 옆에 친구들도 똑같이 밥을 뱉고 있었다. 아..... 이럴 수가... 우리 셋 모두 밥에 돌이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앞을 보는데 너무나 평온하고 당연스럽게 뼈를 발라내듯 돌을 뱉으며 먹는 선생님이 보였다. 선생님은 해맑은 얼굴로 '김치가 없어서 밥이 잘 안 들어가요?' 물어보는데 돌이 씹히고 맛도 없어서 못 먹겠다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어찌어찌 겨우 밥을 먹고, 선생님은 슈퍼에서 긴 나무 장작을 우리에게 하나씩 선물해줬는데 그게 바로 甘蔗 [gān zhè] 사탕수수 나무였다.

중국어로 甘蔗 [gān zhè]
甘蔗 [gān zhè] : 슈퍼 앞이나 길거리에서 나무를 그 자리에서 깎아서 판매한다.
저 나무를 빨아먹으면 달달한 맛이 나서 기분이 좋다.


식사도 하고 사탕수수 나무까지 먹다 보니 어느덧 밤이 늦어졌다.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우리를 기숙사로 안내해주며 내일 만나자는 인사를 하고 떠나셨다.

가족과 작별인사를 하고,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도착하여 처음 보는 선생님의 차를 타고 이국적인 식사를 하는 등 정말 많은 일이 하루에 몰아서 생기다 보니 셋 다 너무 지쳐있었다.

우리는 지친 몸을 뉘이며 몇 시간 뒤면 다가올 내일의 불안을 안고 제발... 내일이 오지 않길 바라며 중국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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