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 줄여서 케데헌의 인기가 핫합니다. 영화의 배경이 된 한국 장소들은 투어 상품으로 만들어질 기세입니다. 이미 낙산공원, 국립중앙박물관은 글로벌 사람들의 인생 버킷리스트가 됐고, 외국인들에게 생소한 목욕탕은 만남의 장소가 되고 있죠. K관광 플랫폼 ‘크리에이트립’에 따르면 ‘케데헌’ 공개 뒤 목욕탕 체험 상품 거래액이 84% 증가했다고 합니다.
숫자로 보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케데헌은 역대급 숫자들을 갱신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를 시작으로 빌보드차트를 넘어서 한국 관광을 책임지고, 이제는 소상공인 시장까지 캐리하고 있습니다. 구글 키워드 검색량에서는 한국 관련 주요 키워드들이 동시에 100을 기록하고 있을 만큼 전례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죠(구글은 특정 키워드의 검색량을 0~100 범위의 상대값으로 표시합니다)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인 ‘핫(Hot) 100’에서 1위 -> K팝 여성 아티스트(?)로는 최초(핫 100 1위에 오른 K팝 가수는 BTS와 BTS 멤버인 지민, 정국뿐입니다.)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톱(Top) 100’ 1위
여기서 주목할 점은 미국과 영국 두 나라에서 동시에 1등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왜 대단하냐고요? 우선 미국과 영국은 전통적으로 음악 소비자들의 취향이 다릅니다. 전설로 기억되는 영국의 퀸(Queen)이나 스웨덴의 아바(ABBA)도 미국과 영국 동시 장악은 못했습니다.
즉, 글로벌 모두를 아우를 수 있고, 지금 이 시대를 대표하는 아티스트 정도여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 일을 현실 속 가수도 아닌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속 '헌트리스'가 해냈습니다. 제가 여기서 느낀 건 두 가지입니다.
1) 콘텐츠는 문화권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인기 있는 노래를 넘어, 글로벌적인 몰입과 공감을 일으키는 방향으로 콘텐츠 산업이 발전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 IP를 기반으로 한 버추얼 산업의 성공가능성을 입증한 사례 -> 이를 계기로, 국내 엔터사들도 버추얼 아이돌 IP 개발에 적극적인 모습. SM은 '나이비스'의 신곡을 발표했고, 하이브재팬과 협력한 '플레이브'도 해외 활동을 시작했죠.
-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애니메이션 등극
- 넷플릭스 역대 영화 흥행 순위 4위 -> 누적 조회수 1억 5880만 회(누적 시청 시간 2억 6460만 시간)
목욕탕 체험 상품 거래액 84% 증가
콘서트 셔틀 예약 거래액은 133% 폭등, 대만 팬들의 예약 건수는 무려 1400% 증가
K팝 댄스 클래스 참여 폭등, 미국 팬이 400%, 대만 팬이 575% 증가
국립중앙박물관 방문객 수 전년 동기 대비 +64%(용산으로 이전한 이후 20년 만의 최고치)
국립중앙박물관 온라인 뮷즈샵 방문자 수는 일일 7,000명에서 60만 명으로 증가
중고 거래 플랫폼 번개장터, 글로벌 거래량 전년 동기 대비 +333% 증가
영어 -> 한국어, 언어의 흐름을 바꾸다
한때 K-POP은 한국어 가사 속에 영어를 섞어 넣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영어 한 줄이 곡의 ‘세련됨’을 더해준다는 믿음이 있었고,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했죠. 영어는 세계의 공용어였고, 한국 가수들과 팬들도 그 소리를 '동경'했습니다.
그런데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보고 느낀 것이 있습니다. 언어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인데. 이제는 영어권에서 한국어를 동경하고 있습니다. 영어 가사 속에 한국어 한 줄이 등장하면, 그것이 오히려 곡의 포인트가 되고, 독특함과 매력을 더합니다. 예전의 K-POP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개인적으로 이러한 형식이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신선했고, 쌓여있는 영어 가사 속 미세하게 들리는 한국어를 찾기위해 몇번씩 노래를 되감기하기도 했죠(제가 한국 사람이여서 그럴수도…ㅎㅎ). 저는 앞으로 이런 형식의 노래가 많아질 것 같습니다. 아니 많아지길 바랍니다.
이는 단순히 케데헌을 일본 제작사+미국 플랫폼에서 만들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문화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으며, 한국어는 이제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메인 요리로써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반가움과 함께 찾아온 불안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보여준 성과는 그 자체로는 반가운 일입니다. K-POP이 가진 서사와 매력이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증거이죠.
하지만 들여다보면, 조금 복잡한 감정이 듭니다. 케데헌 제작사는 일본이고 플랫폼은 미국이었습니다.
즉, 한국은 반사적 이익을 얻었지만, K-POP을 소재로 한 성공적인 콘텐츠에서 주인공은 아니었습니다. 한국 엔터사나 콘텐츠 기업이 아니라, 해외 자본과 제작 역량이 결합해 K-POP이라는 브랜드를 활용했고, 그 결과는 보시다시피 글로벌적인 흥행이었습니다.
이전 글에서, K-POP 산업은 '현지 아티스트들이 현지어로 노래하는' 페이즈 3에 들어서고 있고, 페이즈 4가 시작된다면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케데헌의 흥행은 페이즈 4의 경고로 느껴졌습니다.
https://brunch.co.kr/@dkwnsdnjs/163
K-POP 시스템을 직접 구축하지 않아도, 해외 제작사와 플랫폼들은 K-POP 스타일의 문법을 차용해 현지 IP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K-POP과 한국의 상징성은 확산될 수 있지만, 경제적 이득은 한국이 아닌 다른 국가가 가져갈 수 있죠.
문화와 시장 자체를 확장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IP와 K-POP 제작 주도권을 어느 순간 놓친다면 K-POP은 그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브랜드'로만 남을 수도 있습니다. 커지는 시장만큼 경쟁이 심화됩니다. 케데헌으로 높아진 K-컬처를 우리가 어떤 구조로, 어떻게 주도권을 잡고 수익화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무리
글로벌적인 케데헌의 인기는 숫자로 증명되고 있고, 우리의 실생활에도 스며들고 있습니다.
현실세계에 실제하지 않는 아이돌 그룹이 Queen과 ABBA도 하지 못한 일을 했고(미국과 영국 차트 동시 1위), 서구권은 이제 한글을 동경하고 있습니다. 문화의 힘. 글로벌을 아우를 수 있는 것은 콘텐츠의 힘이라는 것을 다시 느낍니다. 그와 동시에 한국이 K-POP의 주도권을 어떤 방식으로 가져올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