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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셀러레이터(AC)로써의 365일, 최근 생각들

스타트업, 투자, AC, 고민

by 준원

AC로써 일한 지 어느덧 1년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는데요. 스타트업 대표님들과 함께하다 보면 시간이 좀 더 빠르게 흐르는 것 같습니다. 아마 창업씬의 시간 밀도가 높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1년 전쯤 AC로써의 고민거리들에 관한 글을 작성했습니다. 1년 전의 저와 지금의 저는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까요? 지난 1년을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호기심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어쩌면 가장?

1년 전 저는 어떤 사람이 AC에 잘 맞을지 고민했었고, 그중 하나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호기심이 없다면 무언가에 깊게 빠질 수 없을 것 같았죠.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이 생각은 유효합니다. 오히려 호기심의 중요성은 더 커졌죠.


AC는 정말 많은 분야의 사람들을 만납니다. 특정 분야에 전문성이 있고, 특정 분야만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하우스에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분들은 아마 해당되지 않으실 겁니다. 즉, base가 없는 상태에서 스타트업 대표님과 대화를 통해서 사업의 깊은 부분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질문'이고, 질문은 결국 '호기심'에서 출발합니다.

알토스벤처스 인턴 채용 공고

저의 생각이 알토스벤처스 채용 공고에 너무 잘 명시되어 있어서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많은 분야(새로운 분야)를 자기만의 질문으로 쪼개고 탐구해야 합니다. 이때 호기심이 없다면, 날이 없는 도끼를 휘두르는 상황이 됩니다. 호기심은 질문의 퀄리티도 좌우합니다. 일분일초가 소중한 대표님들의 시간을 호기심 없는 질문으로 뺏는 것은 실례이죠.


호기심을 무시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면 간혹 호기심을 무시할 때도 있었습니다. 투자 검토뿐만 아니라, 용역 사업, TIPS, 포트사 관리까지 하다 보니 기업 IR을 보고 생겨난 호기심을 억누른 적도 있었죠. 핑계라고 하면 핑계일탠데... 바쁜 경우 피어나는 호기심을 꺼트린 적이 많았습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 개선하려고 합니다. 호기심이 생긴 스타트업과 대화하며 탐구할 때, 저의 역량이 가장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꺠달았기 때문이죠.

피곤함이 호기심을 이길떄가 많죠...

호기심의 범위를 넓이는 노력

호기심을 느끼는 범위 자체를 넓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관심사를 늘려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관심사를 넓힌다는 것은, 많은 스터디가 필요하고 저의 시간을 그만큼 투입해야 하죠. 요즘 춤을 배우고 있는데, 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바운스와 스텝 등 기본기가 늘어날수록, 출 수 있는 춤의 범위가 늘어납니다.


보육 프로그램, 진짜 의미가 있을까요?

AC에서 보육 프로그램은 빼놓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1년 전 뮤렉스파트너스 최지인 심사역님께서 댓글로도 의견을 남겨주셨었는데요. 저는 '현금흐름 유지 측면'과 '지방의 특수성'에 대한 관점을 말씀드렸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다양한 보육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하면서, 저의 생각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1년 전에 작성한 'AC의 보육프로그램이 진짜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의견


보육 프로그램(용역사업)은 AC입장에서는 '전략적 자산'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순수하게 기업들을 진심으로 '보육'하겠다는 의미보다는 자체 브랜딩과 사업 모델의 일부로 바라보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비교적 작은 펀드규모로 인한 적은 관리보수와 Exit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AC의 특성이 '진정한 보육'이라는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습니다. 물론 자금과 인프라가 탄탄한 하우스라면, 정말 진정성 있는 보육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을 것입니다(프라이머, 스파크랩 등)


보육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하다 보면 불필요한 과업이 정말 많습니다... 스타트업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오히려 발목을 잡는 경우도 있죠.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1) 과도하게 많은 멘토링 2) 네트워킹 행사인 것 같습니다. 멘토링의 경우 기업 수요를 정확히 파악하고, 정말 그에 fit이 맞는 전문가를 매칭해 준다면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횟수가 너무 많은 것이죠. 거의 모든 보육프로그램에는 멘토링이 필수 KPI로 들어가 있고, 횟수도 굉장히 많습니다.

너무 과한 멘토링은 스타트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특히 투자유치를 위한 투자사와의 멘토링 매칭은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관련 펀드를 보유한 곳, 구체적으로 만나고 싶은 하우스와 심사역을 매칭해 준 경우 등 다양한 게 스타트업과 심사역님들을 연결해 드렸지만 실제 성과와 연결된 경우는 희박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궁금한데, 실제 멘토링을 진행해 주신 심사역분들의 솔직한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육 프로그램은 지역 하우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 같습니다. 지역 산·학·연과의 네트워킹이 중요한데, 이를 유지하고 단단하게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보육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운영 요청도 많고요.


제가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것은...

창업가 출신도 아니고, 특정 도메인의 경력직도 아닌 제가 이 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최근 가장 고민이 많은 부분입니다. 벤처업계에서는 투자를 하는 쪽을 Buy-side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직접 투자를 하는 쪽을 의미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투자 대상을 평가하고 심사해야 합니다. AC는 Sell-side와 Buy-side가 모두 있지만, 바이사이드를 위해서는 스타트업과 특정 도메인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창업가 출신이 아니기에, 스타트업의 생태계를 간접적으로 밖에 알 수 없습니다. 스터디를 한다고 해도 생태계에서 굴러보지 않았기에, 그 안에 존재하는 '깊은 인사이트'를 캐치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특정 산업에 오랜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평가하는 스타트업 산업에 발도 담가보지 않았는데, 그곳에 수영하러 가는 느낌입니다. 산업 실무 없이 섹터 전문가가 되기에는 한계를 많이 느꼈고, 인사이트 있는 부분을 꿰둟기 어려웠습니다. 이 부분은 진지하게 더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앞으로 제가 준비할 것들

1년의 경험을 기반으로 앞으로 어떤 역량을 키우면 좋을지, 이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 봤습니다.


1. 나만의 관점과 주장이 뚜렷하고, 이를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역량

벤처투자는 기본적으로 불확실성에 배팅하는 곳입니다. 특히 Seed 라운드에 집중하는 AC는 불확실성이 더 크죠. 그만큼 저만의 관점과 주장이 뚜렷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해당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 제가 하려고 하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1) 브런치 글 작성: 기존에는 무언가를 요약하고 정리하는 글 위주로 작성했다면, 이제부터는 좀 더 저만의 관점과 주장을 담아보려고 합니다.


2) 일상을 관찰하는 습관: 무심하게 흘러가는 일상에 저만의 시선을 담아보는 연습을 하려고 합니다. 어제 본 OTT, 최근 재밌게 본 책, 좋아하는 장소 등 일상의 순간을 되돌아보고, 관찰하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습관을 키우려고 합니다.


3) 몰입할 수 있는 취미 찾기: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입니다. 그리고 몰입은 호기심으로부터 시작하죠. 무언가에 미친 듯이 몰입한 경험은 저만의 깊은 인사이트를 키워주는데 좋을 것 같습니다. 최근 춤을 배우고 있는데, 한 곡의 안무를 배우는 2주간은 정말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이 동작은 이렇게 할 때 더 잘되는구나, 이런 박자에는 이런 기본기가 잘 어울리는구나' 하는 저만의 인사이트가 생기는 경험을 했습니다.

춤… 재밌지만 어렵습니다…


2. 스타트업 투자 자체에 대한 이해

주식의 종류(보통주, 우선주, RCPS, CB 등), 투자계약서 구성 요소들(Tag Along, Drag Along, ROFR 등), 벤처투자촉진에 관한 법률, 조합의 형태 등 벤처투자의 기본기를 계속 배워가면서 fundamental을 단단하게 다지려고 합니다. 투자계약서 작성, 조합 운용, TIPS 등으로 어느 정도 경험했지만, 아직 경험해야 할 새로운 Case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기반을 좀 더 다질 생각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벤처 Scene을 사랑합니다

아마 이 문장이 그동안의 시간을 가장 잘 설명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왜 이곳에 매력을 느꼈을까 깊이 고민해 봤습니다. 명확하게 결론 낼 수는 없었지만 두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1. 결핍과 갈망이 많은 곳

스타트업 대표님들은 대부분 학벌도 좋으시고, 사회에서 이미 높은 위치에 있으신 분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확률이 말도 안 되게 낮은 스타트업을 시작하죠(통계상 절반은 3년 내에 망하고, 5년 뒤엔 생존확률이 30%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원동력이 무엇일지 생각해 봤을 때, 현재의 나의 모습에 만족하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결핍과 끊임없는 갈망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의 지난날을 돌아보면 '적당히'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놀고. 하지만 이곳에 있는 분들은 그렇지 않았죠. 여기서 적당히라는 단어는 '도태된다'를 의미합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죠. 그렇기에 저는 모든 대표님들을 존경합니다. 결핍과 갈망이 많은 곳. 이것이 제가 이곳을 사랑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2. 친절함과 배려

무엇보다 이곳은 친절함과 배려가 넘칩니다.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의 중심. 끊임없이 돈을 갈망하는 곳이기에 차갑고 무서운 느낌이 들 수 있지만, 제가 경험한 것은 따뜻함이었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비즈니스 상황에서, 서로가 예민해질 수 있는 일들이 많을 텐데, 많은 분들이 항상 친절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된다'라는 말이 딱 어울릴 것 같네요(물론 네트워크가 중요한 업계인 만큼 조심해야하기 떄문일수도 있습니다) 저도 운이 좋게 정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친절함과 배려가 있는 이곳. 제가 사랑하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마무리

제가 AC로써 1년 동안 경험한 이야기를 적어봤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경험했고 보고 느꼈습니다. 부족한 점도 많았고, 후회로 가득 찬 밤도 많이 보냈지만 여전히 시도할 일들이 많습니다. 다음 목적지를 향해 내가 걸어온 길을 잠시 뒤돌아보는 순간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지난 1년은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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