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nks to my mother

by 지구 사는 까만별




철부지 학창 시절에 만난 오랜 친구 중 한 명이 꽤 늦은 나이에 첼로로 음대에 편입하더니 결국 대학원까지 졸업해 냈다.

이 친구는 무슨 일이든 성실히 해내서 늘 좋은 자극을 주는 사람이다. 6월의 장미가 여느 담벼락을 타고 향기를 뿜어대던 나른한 봄날에, 친구는 작은 연주회를 열게 됐다며 내게 초대장을 주었다. 집에서 공연장까지의 거리가 멀었기에 처음에는 가겠다는 확답을 못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며칠 뒤에 연주회 포스터를 받았다. 포스터 안에서 친구는 첼로와 함께 있었고 블랙 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선녀처럼 고왔다. 그러다 사진 옆에 쓰여있던 글 중 제일 마지막 문장이 선명하게 날아와 내 눈에 때려 박혔다. 이 문구를 읽은 후 거리라는 고민은 옅어지고 가고 싶은 마음이 선명해졌다.


'Thanks to my mother.'

이 문구에는 연주회를 열게 된 계기가 담겨있다. 시골에 홀로 계신 노모께서 딸이 연주하는 걸 한번 보고 싶다고 하신 것이 소공연 준비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안 하면 언젠가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덕분에 나의 봄날 끝자락은 소중한 연주회를 찾아가는 특별한 외출이 되었다.

공연장을 찾아가니 하늘하늘 핑크빛으로 물든 천의무봉 드레스를 입고 연주하는 친구를 볼 수 있었다. 혼자 지독하게 연습하며 감내했을 외로움과 고단함이, 곱지만 웅장한 첼로의 선율을 타고 어두운 공연장을 넘실넘실 채워주었다. 계속 듣고 있으니 어느새 내 속은 안개처럼 자욱해지며 물방울로 맺히었다.

공연 막바지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울컥하는 친구 모습은 작년에 아버지를 잃은 내 처지와 닮아있었다. 물방울이 맺혀있던 내 속은 결국엔 눈물로 떨어지면서 들숨날숨 목이 메었다.


공연 중 흐뭇하게 딸을 바라보시던 친구 어머니의 뒷모습은 여전히 기억속 선연한 자태로 꼿꼿이 앉아계셨다. 당신의 바람대로 딸의 연주를 바라보고 계신 것을 나는 멀리서 바라보았고, 이는 내게 진풍경으로 남아있다. 추억의 서랍장에 클래식하게 넣어두련다.


사랑의 밀도를 촘촘하게 높인 아름다운 공연에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고 나는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돌아오는 기차안에서 나는 다짐을 했다.

이 기차에서 내리면 이제 나도 기나긴 겨울잠에서 깨어나겠다. 그래서 나도 엄마 살아생전에 책 한 권 꼭 완성하리라. 한 권을 완성하기 위해 꾹꾹 눌러가며 쓰다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감사와 사랑을 꽉꽉 담은 필체로 나의 친구처럼 이 문장을 쓸 것이다.

"Thanks to my mother!"


철캉철캉, 집으로 달려가주는 고마운 기차소리는 경쾌하기만 하다. 마치 내가 가고자 하는 길 위의 행진곡처럼.



2021년 초여름에 쓰다.








시간이 지나 지금 여기.

내 글의 시작과 결말을 다시금 살펴봅니다. 내가 꾸었던 것들을 하나씩 써 내려가지만, 엄마는 나보다 더 깊은 꿈속을 헤매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엄마의 호전에 언제나 청신호만이 비춰지지 않을수도, 내 글을 엄마께 들려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처음과 결말에 연연하지 않고 나는 오늘도 씁니다. 살면서 만나온 인연과 생각들을,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물감으로 칠하고자 합니다. 나의 작은 신호를 보고 찾아올 또다른 별들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