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싸한 기운이 콧등으로 우선 내려앉는 12월 주말. 오늘도 새벽을 밀어내고 일어나 부산하게 움직인다. 마당 한구석에 오래도록 앉아있는 시커먼 가마솥 위에 하얀 서리가, 밤새 담요 눌린 손에 놀라 화들짝 도망간다. 막내딸이 오기 전에 미리 좀 맹글어 놔야지. 마른 가지로 뭉근하게 불을 때며 솥안 가득 메주콩을 넣는다. 금새 김이 서리고 뜨거운 열기가 육중한 솥뚜껑 사이로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몇 년 전까지 지아비와 쑤던 메주. 평생 함께 메주를 만들었던 내 지아비는 저기 저 김처럼 날아가 선산에서 쉬고 있다. 미더운 햇살, 지아비는 잘 쉬어가 좋고, 나는 메주 쑤기 좋은 날이다.
막내가 어제 제 언니들과 같이 했다고 김장 김치와 수육을 갖고 와서 그걸로 점심을 먹고, 막내사위랑 일을 시작했다. 오늘 햇살처럼 미더운 사위는 허리 아픈 나를 대신해서 솥에 있던 메주콩을 다 퍼냈다. 사위와 다르게 누구는 설거지하고 나온다더니 함흥차사다. 사위 덕에 앉아서 편한 나보다, 더 편하게 안방에 누워 있을 막내딸을 크게 불렀다. 지하실로 내려온 막내한테 와 늦었노하고 물으니, "엄마가 부를까 봐 옷장에 숨어있었다!"라고 농을 던지기에 셋이서 한바탕 웃었다.
이제까지 누워있던 지각생이 이제야 서서 일을 시작한다. 솥에서 퍼온 뜨끈뜨끈한 메주콩을 사각틀에 넣고, 천과 비닐을 덮은 후에 그걸 발로 자근자근 뭉치며 모양을 잡는다. 여태 누워있던 사람치곤 곧잘 한다. 막내가 모양 잡은 것을 망태 속에 짚과 함께 넣는다. 사위가 안방에다 주렁주렁 널어놓으니 완성이다.
헤어질 때쯤 막내가 말한다.
"엄마, 앞으로 40년만 된장 더 부탁한데이."
막내 땜씨 지아비 옆에는 40년 뒤에 가게 생겼다.
"오냐. 내야 해줄 수 있으마 얼마든지 좋지."
막내는 돌아가고 오늘 미덥던 햇살도 서서히 져간다. 지아비랑 살던 안방에 메주가 나랑 같이 익고 있어, 지아비가 쉬고 있는 곳에는 아직은 못 가겠다. 당신도 알겠다는 듯 선산에서 바람이 분다.
# 8학년 국민일기 시리즈는 친정엄마의 시선으로 막내인 제가 써보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