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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소리 Nov 12. 2024

영화 밀양의 죽음과 용서의 의미 따라가보기

영화감상

이창동 감독의 철학이 진하게 묻어나는 영화 밀양은 한 여성이 상실과 구원 사이를 오가며 겪는 내적 갈등과 재탄생을 그려냅니다. 특히 이 영화는 기독교적 주제와 종교적 색채를 현실감 있게 다루며, 주인공의 심리적 변화와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큰 찬사를 받았습니다.


 몇일전 우연히 대화 중 영화 밀양에 대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여러가지 의미있는 의견을 나누는 자리가 되어 다시 영화를 다루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영화 밀양에서 죽음과 용서의 부분을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영화 정보

 영화 밀양은 아들의 죽음을 겪은 한 여성이 상실과 치유를 겪는 여정을 그립니다.

주인공 신애(전도연 분)는 남편이 남긴 유산을 찾기 위해 아들과 함께 밀양이라는 작은 도시에 정착하지만, 예기치 못한 비극으로 아들을 잃게 됩니다. 이후 그녀는 아들의 죽음에 대해 신에게 구원을 구하며 종교에 의지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마저도 위안이 되지 않음을 깨닫고 깊은 심리적 갈등에 빠집니다. 이 영화는 신과 인간 사이의 복잡한 감정을 묘사하며,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밀양’이라는 영화 제목은 이야기의 배경인 도시 이름을 따왔습니다.
'밀양'은 Secret Sunshine 즉,
 ‘감춰진 빛’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신애가 경험하는 구원과 절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상실 속에서 방황하던 신애가 결국 내면에 감춰져 있던 고통과 직면하며,
영화는 도시 밀양을 그녀의 내적 세계를 비추는 거울로 활용합니다.



이창동 감독과 그의 철학

 밀양은 한국 영화의 거장 이창동 감독의 작품으로, 감독 특유의 깊이 있는 시선과 삶에 대한 철학적 통찰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이창동 감독은 초록 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같은 작품에서 현실적이고 예술성이 돋보이는 작품을 제작해 왔으며, 인간 본연의 고통과 치유를 꾸준히 탐구해 왔습니다.

 특히, 밀양에서는 기독교적 가치관을 통해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심리적으로 탐구하는데요. 그는 주인공 신애의 구원을 향한 절박함과 신에 대한 배신감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종교와 인간의 삶을 보다 복합적으로 풀어내고자 했습니다.

 밀양은 여러 영화제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전도연은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계의 저력을 입증했으며, 이창동 감독 또한 다양한 영화제에서 주목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예술적 완성도와 심리적 깊이를 인정받으며, 깊이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기독교에서도 일각에서는 반기독교적이라고 논란도 있었고, 새로운 성찰이라는 의미에서 다양한 반응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주인공의 심리적 변화 

 영화 밀양에서 신애의 심리적 변화는 그녀가 겪는 상실과 종교에 의존하려는 욕망을 통해 점진적으로 드러납니다.

 신애는 처음에는 신앙을 통해 상처를 치유받고자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신에 대한 의심과 배신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종교 모임에 참석하며 "신이 나를 구원해 줄 것이다"라는 믿음으로 버티지만, 결국 종교마저 자신의 깊은 상처를 치유해 주지 않음을 깨닫게 되죠. 종교에서 얻는 위안이 무력해지는 순간, 신애는 극심한 내적 갈등에 빠지고, 이는 다시 신에 대한 분노로 이어집니다.

 종교적 신념이 흔들린 신애는 절망 속에서 자신에게 닥친 상처를 오롯이 감당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마주합니다. 이때부터 신애는 스스로가 외부의 도움 없이 자신의 고통과 싸워야 한다는 인식에 도달하게 되며, 그녀의 고통이 개인의 내적 문제로 재해석됩니다. 이처럼 신애의 심리적 여정은 신에 대한 믿음과 상처를 넘어 스스로의 삶과 감정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나아갑니다.


토론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마지막 장면에서 신애가 머리를 자르는 장면을 가장 많이 언급했습니다. 이 장면은 그녀의 심리적 변화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로 매우 상징적입니다


저는 크게 네가지로 분석해 보았습니다.


1. 과거와의 단절

   신애가 머리를 자르는 행동은 고통스러운 과거, 특히 아들의 죽음과 이후에 겪은 혼란과 고뇌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입니다. 고통과 배신감, 절망이 가득했던 시간을 떨쳐내기 위한 하나의 의식처럼 보이죠. 그녀는 과거와의 단절을 통해 다시 일어설 힘을 찾으려 합니다.


2. 자신을 내려놓는 ‘비움’의 의미

   영화 속에서 신애는 종교와 신앙을 통해 상처를 극복하려 했지만, 결국 신마저도 그녀에게 완전한 위안을 주지 못했습니다. 머리를 자르는 행위는 마치 종교나 외부의 구원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고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를 나타냅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기 위한 상징적인 ‘비움’의 과정인 셈입니다.


3. 자아의 재탄생과 정화

   신애가 머리를 자르는 장면은 새로운 자신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자아의 ‘재탄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녀는 종교, 인간관계, 그리고 삶에 대한 신념을 모두 흔들리며 자신을 다시 찾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머리를 자름으로써 그동안의 고통과 상처를 씻어내고 스스로를 정화하려는 의지, 새로운 출발에 대한 결심을 담고 있죠.


4. 무력함을 수용하고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이려는 태도

   마지막 장면에서 신애는 더 이상 과거의 상처에 기대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을 보여줍니다. 신앙에 의지하고 신에게 위안을 구하려 했던 초기의 신애와는 달리, 마지막 장면의 신애는 외부의 위로가 아닌 자신의 내면에서 평안을 찾으려는 결단을 내립니다. 머리를 자르는 행위는 이러한 현실을 수용하려는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결국, 신애가 머리를 자르는 장면은 자기 자신을 새롭게 수용하고, 고통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내적 전환’을 의미합니다. 이 마지막 장면을 통해 영화는 구원이 단순히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수용과 치유에서 비롯된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남깁니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이 장면에서 그녀는 정말 하나님을 믿었는가에 대해 의문이 든다는 의견을 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신애는 종교적인 행위를 통해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고 했고 그것을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신앙관은 환경에 따라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사건의 계기 - 저주가 된 말의 힘

 저는 개인적으로 사건의 큰 계기가 된 사건은 말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권사는 신애에게 계속 전도를 합니다. 그러다 “당신처럼 불행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는 신애에게 불쾌감과 반발심을 일으켰고, 내면에 상처를 다시 상기시키는 동시에, 권사의 말이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립니다. 그리고 그녀로 하여금 “나는 불행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시키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신애는 밀양이라는 새로운 지역에서 인정받고 싶고이방인으로서 지역사회에 주눅 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을 겁니다. “불행한 사람”이라는 딱지가 씌워질 때마다 텃세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심리와 스스로 강하다는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허세가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약국 권사의 말이 도화선이 되었던 것입니다.


 권사가 진정으로 신애를 위로하고자 했다기보다는 종교적인 열심에서 비롯된 행동으로 보여집니다.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말이었으니깐요. 권사의 말과 행동은 단순한 위로와 격려가 아니라, 신애에게 ‘종교적 해결책’을 권하는 방식이었고, 이는 오히려 신애의 고통과 개인적 감정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채 신앙을 강요하는 듯한 태도로 비칠 수 있습니다. 종교적 열심이 종종 사람을 위로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상처를 줄 수 있듯이, 권사의 접근 방식은 신애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고, 스스로 약해지지 않으려는 허세와 자존심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했을 겁니다. 사랑이 없는 말은 울리는 꽹과리였던 것입니다.


 권사는 신애에게 종교적 구원을 권하면서 “예수님을 만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이는 상실감과 고통에 빠져 있던 신애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들의 죽음이라는 극심한 상처 속에서 절박한 구원을 찾고 있던 신애에게 권사의 말은 일종의 ‘구원의 약속’처럼 들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권사의 말은 신애가 절대적인 신앙을 통해 상처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만들었고, 그녀가 종교에 의존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신애는 권사의 말에 고무되어 자신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고, 스스로 용서하고 강해졌다고 믿기 시작했죠. 그 믿음이 과장되면서, 신애는 실제로 용서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기도 전에 ‘모든 것을 이겨냈다’는 허세를 부리게 됩니다. 권사의 말은 단순한 위로였을 수 있지만, 신애는 그것을 절대적인 진리처럼 받아들였고, 아픔을 마치 완전히 극복한 사람처럼 행동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신애가 겪은 고통의 깊이와 그녀가 바랐던 위로의 절실함을 감안할 때, 권사의 말은 신애에게 너무 단순하고 절대적인 해결책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진정으로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앙만으로 모든 상처가 치유될 것이라는 허상에 기대어 자신이 용서할 수 있다고 믿으려 했던 것이죠. 이로 인해 신애는 실제 자신의 감정 상태를 무시하고 강한 척, 용서할 수 있는 척하며 허세를 부리게 된 것입니다.


영화에서의 죽음

 ‘죽음’은 삶의 의미와 구원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로 작용합니다.

신애가 아들을 잃는 사건은 단순한 상실을 넘어, 그동안 스스로 믿어왔던 삶의 가치가 무너지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구원을 찾아 절박하게 신에게 매달리지만, 결국 종교조차도 그녀의 상처를 온전히 치유해 주지 못합니다.


1. 삶의 불완전함과 무력함에 대한 자각

   신애의 아들 죽음은 그녀에게 삶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인식시키며,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함을 드러냅니다. 이창동 감독은 이러한 사건을 통해 삶이 얼마나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한지를 보여줍니다. 신애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무력하고 불완전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죠.


2. 종교와 구원의 한계에 대한 메시지

   죽음을 경험하며 신애는 종교를 통해 구원받기를 원했지만, 오히려 신에게 배신당한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종교가 우리에게 위안을 줄 수 있지만, 그 힘이 절대적이거나 완벽하지 않음을 신애의 심리적 여정을 통해 보여줍니다.

이로써 영화는 종교적 구원의 한계와, 구원이 외부에서 온전히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결국 주인공은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고 고통을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구원을 찾아 나가려고 합니다.


4. 삶과 죽음의 본질적인 관계에 대한 질문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삶의 일부라는 철학적 관점을 영화는 드러냅니다.

밀양은 삶의 고통과 죽음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인간의 존재와 구원의 본질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결국 죽음과 고통의 직면을 통해 삶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밀양에서 죽음은 단순한 비극적 사건을 넘어서, 구원에 대한 인간의 기대와 한계를 심리적이고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매개체로 작용합니다.


사건의 절정 - 용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

 영화 밀양에서 가해자가 신애에게 “나는 이미 용서받았다”고 말하며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는 모습은, 기독교의 용서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그가 보여주는 자기 중심적 용서는 단지 종교적 관점의 문제를 넘어서, 진정한 용서와 그 윤리적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이 장면에서 가해자는 자신의 죄를 신에게 고백하고 신의 용서를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피해자인 신애에게 직접적인 사과나 화해를 시도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자기 중심적 용서’의 한계를 보여주며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합니다:


1. 용서의 이중성: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의 용서  

   기독교에서 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인간관계에서도 용서를 구하고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가해자는 신의 용서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모든 책임을 면제받았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적 교리에서도 신의 용서와 인간의 화해는 별개로 취급되며, 진정한 용서는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그들의 감정을 존중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가해자의 태도는 이를 간과하며, 자신만의 구원에만 만족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2. 용서와 화해의 차이점

   용서는 내면의 평안을 위한 선택일 수 있지만, 화해는 관계 회복을 위한 양방향적 과정입니다.

가해자가 용서를 받았다고 믿고 피해자와의 화해를 무시하는 것은, 용서의 본질을 오해한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용서는 피해자의 고통을 공감하고 자신의 잘못을 책임지며, 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을 포함해야만 온전해집니다. 가해자가 신애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자신의 용서를 주장하는 것은, 용서의 이기적인 사용이자 관계를 무시한 자기중심적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3. 용서의 윤리적 책임

   용서란 가해자의 행위로 상처받은 피해자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피해자의 감정과 회복을 고려하는 것이 윤리적 책임입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신의 용서에만 의존하는 것은, 진정한 회복이 아닌 도피에 가깝습니다. 영화에서 가해자는 신애의 상처와 고통에 무관심하며, 신의 용서를 단순한 면죄부로 해석하는데, 이는 용서의 본질을 왜곡한 자기중심적인 태도입니다.


4. 내면의 성찰이 결여된 용서

   진정한 용서가 되려면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신의 용서를 받았다고 해서 모든 죄를 덮을 수 있다는 생각은, 진심 어린 반성과 회개가 결여된 것입니다. 가해자가 신애에게 진정한 사과 없이 신의 용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용서를 단순한 절차로 생각한 것이며, 내면의 반성과 성찰이 없는 용서는 진정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5. 자기 중심적 용서의 한계

   결국, 가해자의 태도는 종교를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여, 신과의 관계만을 강조하고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배제하는 한계를 드러냅니다. 이는 진정한 용서가 아닌 ‘용서받았다’는 위안 속에 빠져 자기 기만에 머무는 것이며,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줄 뿐입니다. 용서는 가해자 혼자 이루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상호적 과정이어야 합니다.


 밀양에서 가해자의 자기 중심적 용서는 진정한 용서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용서는 피해자의 고통을 공감하고 그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포함해야 합니다. 자기중심적 용서는 본질적으로 타인의 고통을 고려하지 않는 한계를 지니며, 진정한 화해와 용서의 의미를 왜곡하게 됩니다.

 신애 스스로도 자신은 충분히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용서는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결국 그것으로 인해 인간의 연약함을 다시 한번 보여줍니다.

영화는 이를 통해 용서의 윤리적 책임과 진정한 용서가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마치며

 신애는 자신의 상처를 종교를 통해 치유받으려 했지만, 가해자가 자신보다 먼저 구원받았다고 느끼며 큰 좌절을 겪게 됩니다. 이 장면은 기독교적 구원의 진리에 대한 오해와 더불어, 인간이 종교를 현실 속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갈등을 잘 드러냅니다.

 기독교에서의 용서와 구원은 개인적인 신앙과 신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며, 타인의 구원과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신애는 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흔들립니다. 이러한 혼란을 통해 영화는 종교의 진리와 현실 사이에서 일반인이 겪을 수 있는 복잡한 감정을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밀양은 종교가 인간에게 언제나 무조건적인 위로가 되지 않을 때도 있음을 진지하게 그려내며, 종교적 신념이 때로는 우리 삶에서 얼마나 어렵고 복합적인 요소로 작용하는지 탐구합니다. 이는 종교 자체에 대한 부정이라기보다는, 종교적 진리가 현실에서 어떻게 마주하는가에 대한 성찰을 담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밀양은 볼 때마다 새로운 해석을 불러일으키는 명작입니다. 삶과 고통, 그리고 구원에 대해 끝없이 질문을 던지며, 보는 이에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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