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기록

3월 종양내과, 인턴 첫달째

by 안나

2023.03.20(월)


"선생님 사망 환자 있어서 지금 병동와서 히크만 좀 빼주세요." 예상밖의 콜이라 듣고 네 라는 대답을 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것 같다. 아직 나는 사망 환자를 본 적이 없었다. 병원에서 일하니 언젠가 사망한 사람을 마주할 일이 있겠지 했는데 생각보다 이르게, 생각하지 못한 순간에 마주하게 된 것이다.

병실 문을 열자 쾌쾌한 냄새가 KF94를 뚫고 들어왔다. 그 냄새가 어떤 나의 과거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는지 명확하진 않지만 여튼 그 냄새는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죽은 사람의 신체를 마주하는 건 생각보다 더 용기가 필요했다. 침대로 다가가자 환자는 평온하다기엔 다소 불편해보이는 표정과 자세로 누워있었다. 그래도 이생에 있던 모습을 한 번도 뵌적이 없는 분이라 그랬을까 나는 서둘러 할 일을 시작했다.


히크만은 채혈, 약물주입 등을 위해 큰 정맥에 넣어놓은 긴 관이다. 피부밑을 관통해서 넣어놓기 때문에 우리 병원에서 인턴이 절대 빼서는 안되는 중심 정맥관 중에 하나다. 단, 사망환자를 제외하고. 그래서 히크만을 빼는 것도 처음이었다. 바래진 입술색과 대조적으로 히크만을 빼려고 누른 쇄골 밑 피부는 아직 따뜻했다. 원래 일반적인 환자들은 수술방이나 혈관조영실에 내려가서 피부를 박리해가며 제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웬만큼 힘을 줘도 빠지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모습이길래 이렇게 안나오지. 손가락에 닿는 여전한 그의 체온 때문에 왠지 모르게 나는 더 센 힘을 가하는 것이 망설여졌다. 계속 힘을 줘보라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에 이두에 좀 더 힘을 실어 당겼더니 막힌 수로가 뚫리듯 관이 뽑혔다. 관이 뽑힌 구멍에선 바로 피가 왈칵 흘러나왔고 얼른 거즈로 눌러 지혈을 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본인이 마무리를 할테니 나가보라길래 누르고 있던 거즈를 넘겨주고 랩가운과 장갑을 벗고 병실을 나왔다. 낯선 냄새와 촉감, 그리고 그가 떠난지 얼마되지 않았음을 알려준 그의 온도를 나도 모르게 빨리 떨쳐버리고 싶어서였을까, 병실 문을 나오자마자 벽에 붙어있던 알코올 소독제를 짜서 손을 비볐다. 그러던 와중에 병실 문 앞에 뻘쭘히 혹은 어찌할 바를 모르며 두리번 거리고 서있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이 살짝 붉었나 기억이 나진 않는다. 그는 나를 보고 눈동자를 틀어 내가 나온 병실을 바라봤다. 순간 소독하던 손을 감춰야할 것 같았다. 혹시 기분이 나쁘셨을까 마음이 살짝 쓰였지만 이내 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