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호흡기내과, 인턴 여섯달째
2023.08.11(금)
이렇게나 많이, 열심히 일했는데 아직 3주나 이 일을 더 해야 한다고?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주치의를 맡는게 두번째라 대충 어떤 일을 내가 해야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데. 병원 전산프로그램은 여전히 내가 모르는 비밀스러운 기능이 많은 것 같고, 환자들을 대할 땐 여전히 벌거벗은 기분이다.
우리 62병동으로 말할 것 같으면 단기병동으로 폐암이 의심되는 사람들이 빠르고, 정확하게 검사를 통해 암을 진단 받고 퇴원하는 곳이다. 짧게는 조직검사만 하고 결과는 외래에서 듣는 2박3일 코스, 조직검사와 병기 설정까지 모두 한 번에 해결하는 4박5일 코스 등이 준비되어있으며, 필요와 조건에 따라 입원일 수를 계약하고 들어오게 된다. 이 병동에서 주치의의 일은 계약된 기간내에 환자가 필요한 검사를 모두 받고 결과에 따라 향후 계획을 세우고, 급성 합병증 없이 퇴원하도록 하는 것. 이런 비유가 거북할수도 있겠으나, 실은 폐암을 진단하는 공장같은 곳이다. 하루종일 검사실에 전화를 돌려가며 불가능해보이는 일정을 꾸역꾸역 정해진 기간 안에 넣고 이걸 수십명의 환자 스케줄을 보며 반복하다보면, 환자들을 직접 만나 얼굴을 볼 시간도 없이 하루가 다 가버린다. 그러다보면 가장 중요한 나쁜소식전하기에는 마음을 쓸 여유가 없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암을 진단받는다는 것, 그것도 수명이 얼마되지 않는 폐암을 진단 받는다는 것, 그건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그 시험에 들어야 된다는 사실만으로 사람을 두렵게 만들고 힘들게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인생에서 몇 가지 이벤트를 꼽으라고 했을 때 빠지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중요한 순간을, 내가 너무 안부인사 전하듯 전하는 것은 아닐지.
환자 중 한 분이 간암의 기저력이 있는 분이라 폐의 병변이 간암의 전이암인지 별개의 폐암인지 감별해야되는 분이 있었다. 병리검사 결과 폐암이었다. 그런데 암의 전이가 있는지 보는 PET 검사에서 주위 림프절에 전이가 없이 깨끗했는데 뜬금없이 오른쪽 8번째, 9번째 갈비뼈에서 의심 소견이 관찰되었다. 외상으로 인한 병변인지 뼈에 전이가 된 것인지 추가적인 검사가 필요하다는 판독이었다. 만약 이 병변이 외상으로 인한 단순 염증이라면 깔끔한 1기가 되어 수술하고 완치될 수 있는 것이고, 만약 이 병변이 폐암의 전이든 간암의 전이든 전이된 암성 병변이 맞다면 4기가 되어 항암치료를 하게 되는 것이다.
환자분이 결과를 궁금해하신다고 몇 번이나 스테이션을 찾아오시길래,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다가가서 이 상황을 그대로 말씀드렸다. 마스크에 가려져 온전한 그의 표정을 읽을 순 없었지만, 확실히 그의 눈은 떨리고 있었다. 간암이 이제 겨우 다 나았다고 생각했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고 나조차도 생각하게 되는 순간에 그는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었을까. 여튼 내 설명을 다 듣고 난 후 그는 반사적으로, 혹은 필사적으로, 여기 오른쪽 갈비뼈가 아픈 이유는 간암 수술 때 관을 넣고 있었기 때문이고 이 자리는 폐에서 뭔가가 발견되기 훨씬 전부터 아팠던 곳이다, 그러니까 여기가 전이 된 것일리는 없잖아 안그래? 나에게 확답이라도 들으려는 듯 아니 나를 설득하려는 듯 다소 다급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왜 갈비뼈가 아프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나에겐 밀린 일이 많았지만 그가 했던 말을 또 계속해서 반복하는 이유를 왠지 알것 같아 그의 말을 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여전히 암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마치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될 볼드모트처럼 거부감부터 드는 그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그들 앞에서 꺼낼 자신이 없다. 감당해볼 수 없는 그들의 심정을 내가 과연 위로할 수 있을까? 그것도 몇 마디 말로? 이런 일은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이런 것을 알려줄 누군가는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