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라는 감정.
나는 어렸을 적 혼자 다닐 때가 꽤 있었다. 소위 말하는 "학교폭력"이라는 것을 당한 것 같았다. '같았다.'라니, 무슨 소리지? 의문이 들 것이다. 그야 따돌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은근한 따돌림이었기에, 게다가 학교폭력 신고조차 하지 않고 시간도 많이 흘러서 흔적이 남지 않았다. 남은 흔적은 내 정신에 새겨진 두려움뿐이다. 모든 사람이 나를 싫어하고 불편해할 것이라는 두려움.
학생은 학교 내의 사회가 전부이다. 나에게 반 전체는 사회였고 그 사회가 나를 외면하고 피했다. 한번 겪은 배신은 정신에 낙인찍혀서 과대한 망상을 만들어낸다. '다들 나를 불편해하는건가?' 자의식 과잉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한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친구가 없어 위축되어 생활하던 그 시절의 기억과 감정이 튀어나와 나를 괴롭게 한다.
그럴 때에는 사람들을 관찰해 본다. 다들 나처럼 생각하며 살지는 않지만 사람이고 뇌가 있으니 사고를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보면 다들 인간관계가 속 편한 사람만 널려있진 않다. 어떤 사람과는 잘 지내다가도 어떤 사람과는 잘 못 지낸다. 아예 잘 지내려는 노력조차 안 하는 사람도 있고. 그러한 이중적인 면모에 환멸을 느끼다가도, 나 또한 그런 사람임을 계속 되돌아본다. 나도 좋게 지내고 싶은 사람과 엮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 지금 떠올려보면 엮이기 싫은 사람이 2명이나 된다. 나머지는 다 좋게 좋게 지내고 싶다.
하지만 때때로 내 감정이 무거울 때가 있다. 사람들을 관찰하고 어차피 다들 그저 그렇게 지내니 괜찮다며 다독일 수 있을 정도로 가볍게 넘길 수가 없는 그런 감정이 든다. 그럴 때마다 미친 듯이 생각하고 터질듯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잠을 청한다. 물론 잠이 제대로 올리가 없다.
이러한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른데, 보통 나를 포함한 내 친구들은 수다를 떨며 털어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딱히 이런 감정을 털어낼 친구가 많지도 않고, 소수밖에 안 되는 인원에게 이런 묵혀진 감정을 쏟아내고 버리느니 글로 깔끔하게 정리해 놓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마음에 안 드는 이런 쓰레기 같은 감정을 천천히, 천천히 분리수거하는 것이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분리된 감정은 나중에 돌아보면 우습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적은 글이 형편없어서 부끄러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실제로 모 블로그에 비밀글로 올려놨던 어린 시절의 중2병 돋는 글을 보면 오글거리고 창피하다. 덤으로 비밀글로 해놓길 잘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도 정리해서 올리기로 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나처럼 인간관계에 예민하고 사소한 것에 눈물 흘리는 사람이 분명히 이 세상에 존재하리라 믿는다. 나의 과대망상이 현실이라서 재학 중인 학교 내의 과 사람들 전체에게 미움을 받는 상황이라고 해도, 결국엔 나와 가치관이 맞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보고 공감하고 위로받으면 된다. 위로해 주는 그 대상이 내가 되기로 했다.
새벽 2시 반쯤 되는 시간에 10분도 안되어서 이렇게 글을 죽 써내려 왔다. 아직 내가 왜 이 글을 썼는지조차 설명하지 못했는데 이 정도로 할 말이 많았던 것을 보면 진작 할 걸 그랬다.
대학생활에서 인간관계가 좋지 못하다고 해서 학업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명제라고 하기엔 참 애매하긴 하지만 이 문장이 참이 되도록 증명하는 예시가 바로 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전공이 수학교육이고, 그러다 보니 매번 문제출제를 하거나 쪽지시험을 보곤 한다. 당연히 학년에서 1등을 먹었다. 복학 전 2학년때는 성적이 엉망이었는데, 막상 과탑 하겠다고 작정하고 공부하니 잘되었다. 뿌듯했지만 걱정과 불안이 함께했다. 그야 아무하고도 친해지지 못했으니까.
엄연히 나는 복학생이니까 선배이다. 사실 선배라고 선배취급을 해주기 바라는 것은 아니고, 딱히 동기나 후배취급을 해주기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사람취급을 해주길 바랐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그냥 염불처럼 줄줄이 외웠다. "나에 대해 별 생각이 없을 것이다."라고. 그러다 어느 날 ppt를 제작했던 내가 아닌 발표담당인 사람에게만 ppt에 대해 항의를 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자세히 설명하면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이걸 읽고 눈치를 챌까? 하지만 적어도 거기 있던 사람들은 브런치를 구독하고 읽으며 독서하는 것에 취미는 없을 것 같다. 발표를 하는 수업에서 ppt를 제작했고 이를 교수님이 만들었던 밴드에 올렸다. 그런 원칙의 수업이었다. 하지만 그 ppt가 아이패드에선 제대로 열리지 않았는데, 그래서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발표담당에게 뭐라 말하고 있었다.
처음엔 내가 ppt담당인걸 모르나? 했었다. 두 번 정도 말했음에도 그러니까 이상했다. "제가 만들었어요." 하지만 읽기 전용으로만 열리는 ppt는 pdf로 전환되지도 않았고, "수정되지 않으니까 전에 올린 pdf 쓰세요!! 내용에 별 차이 없어요!"라고 외쳤지만 다른 친구가 pdf로 전환한다는데요? 하고 받아쳐졌다. 그리곤 눈앞의 나를 제외하고 옆에 사람에게 말을 걸며 왜 안 열리냐고 투정을 부렸다. 이건... 눈치 없는 사람도 눈치챌 정도로 확실하게 무시당하고 있음을 느꼈다. 게다가 강의실의 컴퓨터에서도 전환이 안되던걸 어떻게 전활 할 수가 있는지, 전활 할 수가 없을 테니 알려준 것인데 그런 반박에 대놓고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기 시작했다.
당황스럽고 화가 날 법도 했지만 그냥 그 상황을 넘겨버리고 수업에 집중했다. 집중도 못할 정도로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런 애구나, 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엮이지 말아야겠다며.
그럼에도 나는 왜 이러한 글을 쓰고 있을까?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답을 찾은 것 같다. 나는... 외로운 것 같다. 그 친구들이 너무 싫다. 게다가 글로 써놓고 보니 치졸해 보인다. 사실 그 친구는 정말, 정말로 별 생각이 없었던 것이고 싸가지가 좀 없을 뿐이었는데 내가 과장해서 해석했나 계속 생각하게 된다. 다들 나를 싫어하고 피하는 것만 같아서,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학창 시절에도 이러한 무시를 당했었는데 그 기억이 살아난다. 정말, 지나고 보면 별것도 아닌 것인데 그걸 알면서도 눈물이 났다. 펑펑 울고 진정된 채로 글을 적으니 조금 나은 것 같다.
글로 풀어쓰면 이런 감정들이 해소되는가? 전혀 아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분노로 심장이 요동치는 것만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새벽 3시 다 되어가도록 글을 써재끼고 있을 리가 없다. 심지어 나는 아침형 인간이라 8시만 되면 눈이 떠지는 인간인데 이런 쓰레기 같은 감정 하나 때문에 수면도 못 취하고 생활패턴이 망가졌다. 그래서인지 날 무시했던 그 친구가 끔찍하게도 싫다.
사실은 나의 가치관이 문제가 되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람마다 가치관은 다 다르고 생각하는 게 다 다른데, 그래서 그 친구는 이해득실 관계를 따져가며 인간관계를 맺는 친구인데 나는 그렇지 않아서 상처를 받은 것일 수도 있다. 나는 공부를 좀 잘 하지만 사실 그 친구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이 많지 않을 테니까. 그에 반해 나는 다 같이 잘 지낼 수만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가치관이 있어서, 이러한 모든 관계를 어그러뜨리는 돌연변이 같은 친구를 견딜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치관을 고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사람은 다양하고 복잡하니까 모두 다 잘 지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게 참 안된다. 이런 감정들로 인해 힘들어서 안 그래도 없는 용돈을 털어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상담사님은 내가 지금 위치해 있는 위치를 생각하고, 가장 중요한 것을 생각하라고 했다. 그러다 보면 그것에 몰두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셨고 도움이 됐었다. 하지만 이런 멘털 흔들리는 사건이 생기면 이렇게 노력해도 한순간에 정신이 무너지는 것 같다.
한껏 감정을 글로 풀어내고 나니 졸음이 밀려온다. 요 며칠 시험준비를 한답시고 잠을 자지 못했다. 이번 시험은 1등을 하지 못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한 사람의 사소한 행동에 상처를 받고 어그러진 게 굉장히 속상하지만,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것이다. 내가 결국에 좋은 성적을 거두고, 그 친구가 배 아파한다면 더더욱 좋을 것 같다. 증오하는 감정은 안 좋아 보여서 피하려 했지만 결국 내가 이런 사람임을 받아들이고 나면 소화가 조금씩 되는 것 같다.
이 글을 읽어준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남기며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