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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여름 Jun 01. 2022

성적표 나온 날

중 2 이안이의 첫 중간고사가 끝났다. 몇 주 후, 시험 성적표가 나오는 날 아침 이안이가 말했다.


"엄마, 오늘 무슨 날이게요?"

"무슨 날인데?"

"성적표 나오는 날!"


누가 들으면 우리 아들 시험 엄청 잘 본 줄 알 것이다. 성적표 나오는 날을 이렇게 신나게 예고한다고?

시험을 치고 답안지와 점수 확인 및 조정 절차가 있는 동안 이안이는 매일같이 점수 이야기를 했다. 이건 이래서 틀렸고 저건 저래서 틀렸는데 내 친구는 얼마를 받았는데 어쩌고 저쩌고... 하도 이야기를 자주 하고 많이 해서 단순하지도 않은 점수를 내가 달달 외울 정도가 됐다.

이안이의 점수는 예상보다는 잘했고 기대보다는 아쉬웠다.  잘한 건 잘했는데 영어는 반만 맞았다. 이미 기출 시험지를 보고 시험 수준이 만만치 않은 것을 알았기에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엄마, 이제 선생님들의 경향을 다 파악했어요. 시험 어떻게 낼 지 감이 왔어요."

"엄마, 진짜 영어 개 어려웠어요. 아이 무슨 전부 서술형이야. ("내가 보기에도 어려워 보인다. 네가 그 어려운 시험을 반이나 맞은 것도 신기하다야.")

"엄마, 역사 00나라의 멸망 원인을 서술하라는 문제 있었는데 그거 제가 **왕조랑 헷갈려서 틀렸다고 됐거든요? 근데 선생님이 이런 이유도 조금은 있다면서 부분점수 주셨어요."

"엄마, 수학 문제는 시간이 부족했어요. 마지막 문제 9점 짜리였는데 시간 없어서 못 풀고 시험지 내고 나서 2분 만에 풀었어요. 개 아까워요. 인제 풀이과정 답지에 바로 적어야 될 것 같아요."


아이는 아쉽게 놓친 문제에 미련이 많이 남았는지 매일매일 시험 뒷얘기를 했다. 들어주기는 하는데 나도 참 힘들었다. 아이의 아쉬움이 나에게 증폭되어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래, 좀 신중하게 풀지. 그러길래 내가 수학 강의만 듣지 말고 문제집을 많이 풀어보라고 했잖아.' 할 말이 많았지만 모두 삼켰다. 내가 할 말들은 모두 아이가 스스로 깨달아야 할, 언젠가는 깨닫게 될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느껴야 할 감정들을 내가 훔쳐 버리면 아이는 그 감정들을 오롯이 느끼지 못한 채 엄마 '눈치'에 따라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게 될 것이다.

  

"엄마, 영어 53점이었는데 오늘 하나 감점돼서 52점 됐어요."

"하하, 53점이나 52점이나.. ㅋㅋ 오삼불고기에서 오이무침이 됐네."

"제 친구는 국어 100점이었는데 맞춤법 하나 틀려서 99점이 됐어요. 개 아깝겠죠."


그래, 100점에서 1점 깎이는 것보다 53점에서 1점 깎이는 게 덜 아프지. 그래도 틀린 것보다는 맞힌 게 더 많네. 어쩔 수 없다. 너는 영어를 늦게 시작했으니까 이 점수도 당연한 거다.


그래도 가장 큰 반전은 국어 시험이었다. 처음 아이의 점수는 92점이었다. 그 점수도 기적처럼 느껴지는데 아이는 틀린 문제로 영어보다 더 속앓이를 했다.


"아,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분명히 말했는데. 수업시간에 놀지 말고 더 열심히 들었어야 했어요."(국어 8점을 대가로 그 어려운 것을 깨닫다니)


아이가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듣다 보면 사실 내가 끼들 여지가 별로 없다. 내가 아는 것을,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아이는 이미 다 알고 있거나 알아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시험 얘기 좀 그만하라고 할 정도로 아이가 시험 점수에 집착하는 것을 보니 아이도 무척이나 잘하고 싶었나 보다. 그러던 국어 점수가 100점으로 상향 조정되었다. 뒤늦게 이안이의 답도 정답으로 인정되었나 보다. 아이의 입꼬리가 또 씰룩거렸다.(나는 아이의 그 표정을 너무 좋아한다.)


그렇게 과목별로 세세한 내용까지 입이 닳도록 알려 주고도 시험 성적표 나오는 것 또 다른 느낌인가 보다. 성적표 나오는 날을 몇 번이나 예고했더랬다. 퇴근하는 길, 집에서 먼저 아이를 만난 남편이 나에게 전화로 시험 점수를 또 알려 왔다. 나는 아이의 기분을 생각해 보았다. 아이는 왜 이렇게 오늘을 기다렸을까. 국어를 빼고는 90점을 넘은 것도 없다. 심지어 주요 과목인 영어는 50점을 겨우 넘었다. 그럼에도 성적표를 받아 들고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 나는 이 아이에게 어떤 반응을 해 주어야 할까.


아이가 시험을 준비하던 시간들 떠올려 봤다.

태어나서 '시험 범위'라는 말을 처음 들어봤다며 황당(?)해 하고, 시험 부정행위 처리규 안내장을 보며 왜 이런 것을 봐야 하냐며 분개하고, 온라인 강의 2개씩 듣는 게 힘겨워 보여 주말에는 조금 쉬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가 '엄마는 알지도 못하면서 간섭' 한다며 대들고(원래 반대 상황에서 대들어야 하는 거 아님?) 시험공부해야 된다면서 주일예배는 온라인으로 대체하면서 시험 첫날 마치고는 기분 안 좋다고 다음 날 시험 남았는데도 줄넘기 학원은 출석했었다. 시험 앞두고도 휴대폰에 빠져 있는 것을 보며 '생각이 있니 없니?' 따지고 싶었지만 딴에는 시험기간 동안 게임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튜브 보는 거랑 게임하는 거랑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으나 아이는 게임을 참은 자신을 뿌듯해했다.  엄마 눈에는 한없이 부족해 보여도 생애 첫 어려운 시험 앞에 선 아이는 그 막막함과 두려움, 공부하기 싫은 마음, 실수할 것 같은 불안감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버텨내며 혼자 외로운 싸움을 했을 것이다. 후회가 왜 없을까, 아쉬움이 왜 없을까. 그럼에도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낯선 길을 자신만의 걸음으로 걸어 나갔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빵집에 들러 케이크를 샀다. 아이의 평균 점수에 맞게 숫자 초를 사고 국어 100점 기념 초도 샀다. 잘했든 못했든 아이는 생애 첫 시험이라는 관문을 통과했으니 내가 선택한 부모의 역할은 '축하'와 '격려'이다. 부족하면 어떻고 아쉬우면 또 어떤가, 아이가 그 문을 자신의 힘으로 넘어왔다는 것이 중요하다. 100점이어도 30점이어도 나는 케이크를 준비했을 것이다. 수고했다고, 잘했다고, 잘 치르고 잘 버텨냈다고.


집에 와서 조촐하게 시험 기념 파티를 했다. 생각보다 아이는 너무 좋아했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 카메라 앞에서 그렇게 다양하게 표정 짓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누가 보면 전교 1등 한 줄 알 것이다. 하지만 전교 1등도 오늘 우리의 저녁만큼 행복하지는 못할 것 같다.


케이크를 먹고 티비를 보고 있는데 이안이가 와서 농담처럼 말했다.


"엄마, 10년 뒤에 하버드 대학 졸업장을 갖다 드릴게요."

"오~ 멋진데!"


허세, 허세... 아들의 특징이 이런 허세란다. 그래도 귀엽지 않은가.


근데 뒷 말이 더 웃기다.


"아.. 비록 지금은 영어가 52점이지만."


이안이의 말에 빵 터져서 웃었다.





다음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이번 성적이 최하 지점이 아니라 최고점일 수도 있지 않을까? 왜 우리는 너무도 당연히 다음 시험을 더 잘 볼 거라고 기대하지?

그렇다면 더 파티를 하길 잘했네. 잘했어. 우리 삶에서 이 순간이 최고의 순간일 수도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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